알록달록 서랍을 당근으로 보내며...
엄마가 대학생 첫 자취방에 내게 사준 서랍장을, 최근 동생이 당근마켓에 팔았다. 엄마를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며칠간 쓰라렸다. 그리고 오늘, 엄마를 울린 날이 문득 떠올랐다.
대학교 3학년 때 기숙사를 나와 처음 자취를 하게 되면서 나는 로망에 부풀어 있었다. 자취방을 구하려고 돌아다니는 내내 엄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방이 넓은 곳은 건물이 심하게 낡았고(특히 화장실), 건물이 신식이면 4평 정도로 너무 비좁았다. 결국 우리는 월세를 7만 원쯤 올려 학교 앞에 6평짜리 신식 원룸을 구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기차에 올라타던 엄마의 지친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릎이 벽에 닿을까 조마조마한 미니 화장실이었지만, 깨끗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첫 자취에 신나 이것저것 가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방에는 에어컨, 냉장고, 신발장만 포함되어 있었고, 책상과 침대, 행거는 따로 구입해야 했다. 특히 나는 침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공주풍 침대를 갖고 싶었던 나는 이케아를 비롯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침대 프레임 쇼핑에 빠져 있었다. 고심 끝에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엄마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그냥 매트리스만 사자고 했다. 나는 눈치도 없이 싫다고, 꼭 살 거라고 버텼다.
짜증을 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딸, 엄마도 사주고 싶지."
엄마는 엉엉 울었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 엄마가 우는 걸 봤다. 그리고 그 순간, 평생 잊지 못할 불효의 장면임을 직감했다. 눈치 없던 딸은 그제야 충격을 받고 침대 프레임을 포기했다. 보증금과 예상보다 높아진 월세만으로도 부모님이 버겁다는 사실을, 그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톤다운된 스타일의 이불도 바꿀 계획이었는데, 님프만에서 엄마가 사준 핑크색 이불을 계속 쓰게 됐고, 동그란 패턴의 포인트 벽지도 주인의 허락을 받고 페인트칠을 하려 했는데, 그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게 됐다. 그래도 철부지 딸은, 용돈 받은 걸로 방꾸미기 로망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침대 아래 회색 러그도 깔고, 화분도 여러 개 사면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밤마다 포인트 벽지를 바라보며 저 벽 전체를 가릴 수 있는 천을 동대문에서 떼올까 고민했지만, 다행히(?) 게으름이 앞서 실현되진 않았다.
나는 정말 별났던 게, 집에서 살 때도 마음대로 거실 벽지에 나무 스티커를 붙였고(작업은 동생들이 했다), 이사할 때면 엄마와 인테리어 업체에 같이 가서 도배지를 직접 고르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성에 안 차서 내 방 붙박이장에 가짜 어항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밤마다 고민했던 적도 있다. 물을 가둬둘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결국 포기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내 공간’을 내가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꾸미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서울에 올라왔다. 내가 수업에 간 사이, 옷을 정리할 서랍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근처 다용도점에서 플라스틱 서랍장을 하나 사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 방 안에서 나를 반긴 건 핑크, 노랑, 연두색 뚜껑의 서랍장이었다. 오마이갓. 정말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항암 치료 중인 몸으로 먼지 쌓인 방을 치우고 무거운 서랍장까지 사들고 왔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부터 앞섰다. 그리고 그 서랍장은 엄마의 판단대로 내 방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였다.
다음 이사 때도, 그다음 이사 때도, 그리고 자취방을 나와 결혼할 때까지도 그 알록달록 서랍장은 내 방에 있었다. 그 서랍장은 엄마 같았다. 비밀이 있기는 하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그 뒤로는 패턴 있는 천을 사서 입구 부분을 가려두곤 했다.^^ 그러다 결혼하고는 동생이 쓰겠다고 해서 줬고, 최근 동생이 이사하며 당근에 내놓은 것이다.
1층에 놓인 서랍장을 보며 이제는 엄마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우리 집에 있는 엄마의 베이지색 패딩이 떠올랐다. 내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엄마의 물건이다. 한 무당은 엄마 물건을 다 태워야 좋은 데로 간다며 싹 없애버리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고도 미련한 딸은 그 옷을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보고 싶을 때마다 그 옷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데, 어찌 버리겠는가.
요즘 딸아이에게 패딩을 사주고, 예쁜 코트도 사주고 싶어 당근을 뒤적이다가 문득, 그때 엄마의 마음을 떠올린다. 엄마는 얼마나 나에게 예쁜 침대를 사주고 싶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리다. 그래서일까, 요즘 따라 더 열심히 돈을 벌고 싶다. 정말 딸에게 다 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