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02] 다 니잘못일거야
양평에 사니 어떻냐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왜 양평이었는지부터 답하려 한다. 나는 어린이집부터 학원, 초중고, 심지어 대학교까지 양평에서 다녔다. 양평을 떠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은 차 없이 못 산다'라는 말은 양평을 비껴가지 않는다. 한 시간에 한두 대 있는 버스로는 시내까지만 갈 수 있다. 다른 '면'으로 이동하려면 시내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데, 그 버스도 한 시간에 한두 대가 있다. 차로는 20분이면 갈 거리를 칼환승이 안 될 경우 1시간 30분,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간다 해도 돌아오는 막차는 9시다. 우리 동네까지 가는 막차는 양평에서 늦게까지 있는 편에 속한다.
이런 교통 인프라에선 알바도 구할 수 없다. 사무직 알바를 구하는 건 공공일자리가 아니곤 불가능하니 서빙 알바를 해야 하는데, 환승 시간을 고려하여 출퇴근할 수 있는 곳을 구하는 건 참 고역이다. 그런 이유로, 대학교 휴학 생활을 성남의 아빠 집에서 보내게 됐다. 성남의 한 '구'의 알바 구인 공고 수는 양평'군'의 구인 공고 수의 15배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성남에 사셨고, 나는 양평에서 할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살았다. 그게 취업 시기에 아주 큰 분산 투자 효과로 돌아왔다. 알바를 하기 위해 월세를 내야 하고, 보증금을 구해야 했더라면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다. 도시에 지낼 방 한 칸이 없었더라면, 휴학과 갭이어는 모두 고민할 여지도 없었을 테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갖지 못한 기회들이 얼마나 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성남에서 갈 수 있는 일자리는 차고 넘쳤다. 오직 사무직 알바만 하겠다는 일념으로 한 달에 50개 넘는 이력서를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양평에서는 1년에 5곳도 쓰기 힘들었을 텐데. 몇 번의 알바는 도보로 다니기도 했다. 그 사실이 너무 사치스러워서 점심시간마다 집에 뛰어갔다.
하지만 일자리가 많다는 건 사람도 많다는 뜻이었다. 9to6로 일할 때마다 삶이 너무 괴로웠다. 겨울이면 지하철에 타기 전에 패딩을 벗어 꾸겨야 했고, 에어컨이 나오길 기도해야 했다. 하루종일 시간 때우며 월루했어도, 퇴근만 하면 모든 진이 빠졌다. '남들은 이걸 견디면서 산다고?' 나는 그렇게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 21살, 출근하던 분당선에서 나는 탈서울*을 결심했다. 그렇게 만 28살, 양평으로의 독립으로 꿈을 이뤘다.
*탈서울 : 성남과 인천에서 살았으나 생활반경이 서울이었으므로 서울살이라고 퉁친다. 서울 중심의 생활반경을 벗어나는 것을 탈서울이라 명명한다.
24년 9월, 대학 졸업과 함께 떠났던 양평에 다시 돌아왔다. 직장은 그만뒀고, 집은 넓어졌다. 대학원 전공을 '로컬 디자인'으로 정한 덕에 과감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 28세의 귀촌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되었다. "어때?" 묻는 말에 여러 생각을 압축해 "좋아"라고 답하지만, 압축 해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마음으로 [양평 사람 최승선]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