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사람 최승선 043] 선생님으로 써야 할 일곱 장의 편지
중학교 첫 담임 선생님은 상냥하고, 다정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옳은 것과 틀린 것이 분명해 보였고, 숙제를 해오지 않는 일에 엄격했다. 선생님의 룰을 잘 따르기만 한다면 될 일이었고,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 룰을 따르고 싶게 만드는 선생님이었다. 그건 아마도 선생님이 선생님의 과목을 아주 잘 가르치는 교사였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우리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주는 '담임교사'였기 때문이었을 테다.
중학교 매 해 도덕 수업의 마지막 시간은 롤링페이퍼를 쓰는 시간이었다. 그때, 도덕 선생님은 꼭 담임 선생님의 몫을 챙겨주셨다. A4용지 한 장에 33명이 공간을 나눠 써야 하니 내 몫은 3 문장쯤 됐으려나? "선생님의 카리스마가 너무 멋있어요"를 세 문장으로 늘려 썼던 것 같다. 진부한 말 한 문장은 구체적인 사례가 덧붙여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그건 내 1년의 소감이었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내 이름이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가 집에 도착했다. 누가 봐도 크리스마스 카드인 빨간 봉투. 카드라 부르기엔 요즘 다이소에서 파는 웬만한 편지지보다 큰 그 카드는 담임 선생님의 답장이었다. 중학생들의 롤링페이퍼는 고작 2~4 문장이었을 테고, '일 년동안 감사했습니다'가 평균일 내용이었을 텐데 선생님은 33통의 카드를 쓰신 것이었다. 이미 큰 감동이었다.
그중 내 앞으로 어떤 문장이 있을지, 잔뜩 부푼 기대감으로 카드를 열었다. 손바닥의 1.5배쯤 되는 카드 가득 일기장에서 보던 선생님의 볼펜 글씨가 빼곡했다. 15년도 지난 그 편지의 하이라이트는 '너는 내가 카리스마 있다고 했지만, 나는 네가 정말 카리스마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였다. 모둠활동 중이었던 33명 중 한 명에 그치는 나에 대한 감상으로 근거를 제시한 탄탄한 하이라이트였다.
슬로건은 결핍을 드러낸다 했다. 내가 선생님의 많은 모습을 '카리스마'로 압축한 건, 그것이 나의 추구미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상냥하고,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소리 지르지 않고, 화내지 않아도 말에 무게감이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넌 이미 그런 사람이야' 말했으니, 그 감동은 쉬이 지워질 수 없다. '내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는 부장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지역 신문에 실렸다. 단 한 번도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나는 문과 학생이고 선생님은 과학 교사인데 그 편지의 수신인으로 분명 내가 있음이 의심스럽지 않았다. "내 이쁜 녀석들" 수학여행에서 나란히 걸으며 들었던 말이었고, 선생님이 소중히 생각하는 수업 시간을 할애해 해 주셨던 말이었다.
학생들에게 상처를 받아서 더 이상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너희가 활짝 웃으면서 다가오고 계속 말 걸어줘도 절대 사랑하지 않으려고 다짐했는데, '아이라인만 길게 그렸다 뿐이지 착한 애들이더라.. 교복만 줄였다 뿐이지 착한 애들이더라.. 그런 애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하던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깔깔 웃었지만 선생님의 눈은 진심이었다. 그 눈과 말줄임표로 마무리되는 "내 이쁜 녀석들.." 그 말과 글도 내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내가.. 이쁜 녀석이야..??'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에는 대학교 교수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번 플랫폼은 페이스북이었다. 교수님의 임용과 우리의 입학이 한 학기 차이였고, 유난히 교수님에게 격을 지워버린 나의 동기들 덕에 우리는 친밀했다. 차 없이는 메뉴의 한계가 있는 학교였으니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교수님 점심 드셨는지 물어볼까?' 하고는 더치페이할 테니 같이 가주기만 해 달라 사정하고, 귀찮아!!!!! 하면서도 농구장 앞에서 기다리라며 교수님이 차 끌고 나타나는 그런 사이였다.
ENTP의 전형인 교수님은 우리 졸업식에서 인사말을 하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우리 담임 교수님도 아니었고, 학과장도 아니었고, 그냥 전공 교수님이었는데. 그런 교수님이 눈물을 흘리니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을 들었다. 우린 그런 사이였다. 너무 '우리 같은' 모습에 어처구니없던 교수님은 말을 줄였고, 못다 한 말을 페이스북에 남기셨다.
"진심이 아니면 안 된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는 햇병아리 같은 제자들에게 걱정과 응원과 교훈을 압축시킨 문장이었다. 우리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문장으로 고른 "진심이 아니면 안 된다". 교수님도 우리에게 늘 진심이고 싶으셨구나, 느끼게 하는 문장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마음 가지 않는 것에 마음을 가게 하는 문장이었다.
30을 목전에 둔 지금, 나는 진심이 아니면 안 된다고 가르쳐준 교수님과 함께 10대 대상 북클럽 호스트를 하고 있다. 나에게 여러 칭찬을 해주는 아이들에게 그 칭찬의 원형을 발견하고 있고, 내가 시니컬하게 굴어도 "있잖아요 선생님~" 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아이들을 향한 진심을 상기시키며. 양평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엇비슷한 양평의 선생님이 돼줄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벌써 두 번의 편지를 받았다. 첫 시즌 쫑파티 때, 스쳐 지나가며 말한 생일 때. 짧지만 진심이 아닌 말은 없는 문장들을 보며 부채감이 한가득이다. 어떤 말로, 어떤 것으로 받은 마음을 돌려줘야 할지.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걱정까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을 느끼며, 선생님들의 편지를 다시 생각한다. 내 마음 한 켠씩 단단히 자리 잡은 문장들을 받는 일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