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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Jun 27. 2022

귀찮은데 하찮아지면 안되는

나의 정신건강이야기 2.


5월의 시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지독했던 4월에서 별 기대없는 5월로 겨우 달력 한 페이지 넘겼을 뿐인데, 기분은 완전히 달랐다.

우리 능력으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신의 영역, 우주의 영역이 특정하지 않은 존재로 우리 삶 곳곳에 맴돌고 있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환경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하늘의 시그널이었나?' 할 정도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 기분이 그리 길지 못했다는 건 차차 알게 되었지만.


우선 아침마다 약속한 듯이 5시 30분이면 눈이 번쩍 떠지고, 꾸물꾸물 이불을 뭉개지 않고도 침대 밖으로 홀가분하게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낮보다 새벽에 더 말똥거렸던 두 눈도 자정이 가까워지면 자연스럽게 'close'.. 눈꺼풀 셔터가 내려졌다. 초능력과 우주의 힘을 빌어 이곳과 내가 기운이 잘 맞는다고 믿기 시작했다. 

딱 그렇게 14일. 이후 다시 내게 찾아온 심장불편증과 수면장애가 나아졌다고 믿던 내게 다시 원점이라는 실망이 찾아왔고, 실망은 서서히 불신과 우울로 변해갔다. 회사를 관뒀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한 나는 나는 지금까지도 프리랜서로 단기 일을 받으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당시 맡아서 하던 일은 낯선 사람을 대하고 그를 취재하고, 일정을 부탁해야하는 번거로운 일들이었다. 안 그래도 대인 기피 비슷한 심리 상태에 심지어 가끔은 숨 쉬는 것도 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일들은 나의 불안과 우울을 더 가중시켰고, 그나마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파트너는 심하게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그를 맞춰주는 일은 더 어렵고 벅찼다. 

이 일이 아니어도 나는 내게 주어진 빈 시간동안 계획했던 리스트들을 하나씩 지워가야 하는데, 매일 더 버거워지는 일을 병행하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즈음 오랜 친구이자 최근 다른 일을 함께 하고 있던 Y와 대화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내 상태를 언급했고, 과거 이혼 경험으로 심한 공황장애를 앓았던 Y는 단번에 공황장애 초기증상 같다며 자가진단 링크를 보내며 내게 당장 테스트해보라고 재촉했다. 사실 이미 자가진단으로 중증 우울이 나왔던 나는 그야말로 자가진단이니까 그날의 기분에 따라 결과가 좋게도 나쁘게도 나올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래도 걱정되서 해보라니까 몇 가지 물음에 체크를 했고, 역시나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결과로 마침표가 찍혔다. 결국 Y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는 게 요즘은 별 일도 아니라며, 본인도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황까지는 아니어도 유사한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그럴 때 병원을 찾아가 처방약을 먹으면 한결 낫더라며 다니고 있는 병원을 추천해주기까지 했다.


정신과 의사를 꿈꿨던 나였기에 정신상담의학과를 찾아가는데 마음의 걸림돌은 없었지만, 그 당시 나는 내가 정신상태를 진단받고 진료받고 처방약을 먹을 정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나는 오히려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듬었던 사람이라는 강한 착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Y에게 받은 병원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하루 이틀 망설였다. 괜히 확대해석하는 건아닌가.. 울적한 기분일 뿐인데 괜히 엄살부리는 건 아닌가.. 정신과 처방약을 먹는 게 오히려 위험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고도 하던데... 오만가지 생각 끝에 또 하루가 지났다. 그날도 밤과 새벽과 아침의 경계가 모호했던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으로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고, 좋은 글을 쓰려면 실제와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그 생각은 곧 용기로 바뀌었고, 사이트에 연결된 예약번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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