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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Jun 27. 2022

귀찮은데 하찮으면 안 되는

나의 정신건강이야기 3.

상담 후 검사했던 자각된 스트레스 검사와 567문항의 MMPI-2(다면적 인성검사)


Y가 추천해준 정신건강의학과 예약문의처로 몇 번의 신호음을 끝에 연결이 되었다. 

그래도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대하는 병원이니 타 진료과보다 나긋하고 친절할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특별히 그렇지는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당일 접수는 당연히 어렵고, 심지어 그 주 예약이 이미 꽉 찼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내가 망설이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먼저 예약을 잡았구나'의 놀라움이 아니었다. 정신건강전문의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그런데 사람 마음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그렇게 많은 생각과 용기 끝에 결정한 상담예약이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마치 당장이라도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Y가 추천해준 병원을 포기하고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웃기지만 그 와중에 병원 내부 인테리어도 보고, 진료실 분위기도 살펴봤다. 비숫해 보이는 몇 군데 중 촉이 이끄는 곳으로 정한 'R정신건강의학과'


깨끗한 건물 2층 복도 끝에 위치한 병원 유리문을 열자 나지막이 클래식이 흐르고 있었고, 조용한 병원 중앙에 널찍한 소파가 4개 놓여있었다. 거기엔 대기를 기다리는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대각석으로 각자의 시선을 놓은 채 앉아있었는데, 나는 어리숙한 표정으로 접수를 한 뒤 데스크가 잘 보이는 쪽 소파로 가 앉아 분위기를 살폈다. 한쪽 벽면에는 원장의 이력이 나열되어 있었고, 또 다른 벽면에는 심리, 뇌과학, 정신병리 등 관련 서적들이 벽장 안에 가득했다. 소파 앞 낮은 테이블에는 대형 디퓨져가 놓여 있었는데,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이 병원을 설명하는 듯 차분하게 느껴졌다. 대기 중인 여자는 간호사의 호명에 따라 진료실로 들어가고, 남자는 처방약과 다음 방문일자를 예약한 후 병원 밖으로 퇴장했다. 이제 대기실 소파에는 오직 나만 남아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발표를 앞둔 기분 학생처럼 초조하고 떨렸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잠시후 들어가면 의사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 진료실에 들어갔던 여자가 밖으로 나왔고, 간호사는 좀 전에 그 여자에게 그랬듯 이번엔 내 이름을 호명했다. 




원장실 문이 열리고 내 눈에 진료실 풍경이 들어왔다. 문 옆으로 두 세 걸을 걸어가면 커다란 테이블 위로 보이는 모니터와 키보드, 그 앞으로 깔끔한 모습의 의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장님 자리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는 기다란 소파와 테이블도 거실처럼 편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상담하는 사람은 드라마에서처럼 최면같은 걸 하는 건가 순간 궁금해졌다. 나는 천천히 상담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는데, 그때까지도 심장이 두근거렸기 때문에 내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뒀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을 거 같다. 


나를 마주한 의사의 첫마디는 '어서 와요 **씨, 어디가 불편하셨어요?'였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교무실에 불려 간 학생처럼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선생님, 저 왜 이렇게 떨리죠? 후...' 내가 애써 호흡을 가다듬자 의사는 다시 '이런, 떨리세요? 괜찮아요'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대단한 문장도 아닌 그 한 마디에 나는 마치 가득 찬 물컵 위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이내 주르륵 흘러넘치듯이 억눌렸던 눈물이 쏟아져버렸다. 의사는 내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정된 듯 보일 때 다시 말을 건냈다. '요즘 어때요?' 나는 최근 느껴지는 자각 증상을 말하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 그대로의 내 상황들을 설명했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의사는 '그중 가장 먼저 다스리고 싶은 상태는 어떤 거예요?'라고 다시 물었고, 나는.... 


"다른 것보다 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제 모든 얘기를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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