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 돈 나기 전에 꼭 입금이 됐네.”
“그러니까... 어떻게 이렇게 되지?”
“감사하다.”
매 달 가계부를 정산하면서 나눴던 이야기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가계부를 살펴보아도 여전히 신기하고 감사하다. 연말정산 환급금부터 생일 용돈, 알음알음으로 연결된 외주들, 카페 벽화까지 어떻게든 아슬아슬하게 생활비를 맞출 수 있었다. 괜찮은 건수의 외주가 들어오면 딱 그만큼의 피치 못할 추가 지출이 있었다. 놀라움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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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의 대표님께서 아내를 행정 담당 직원으로 채용하셨다. 아내는 결혼 전 대학원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2년 간 대학원 봉사센터의 조교를 했었다. 평소의 성실함과 조교 경력을 인정해주시고, 불안정한 우리 가정의 경제상황에 도움을 주시고자 채용을 해주셨다. 그래서 한 주에 이틀은 같이 회사로 출근을 했다. 덕분에 더 즐거운 신혼생활이 되었다. 그리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따라 내가 추가로 일해야 하는 날에는 그것에 맞게 추가 급여를 더 챙겨주셨다. 광고회사 기획자였던 친구의 도움으로 꿀 홍차 업체의 홍보영상 편집과 SNS 콘텐츠, 타일 업체 로고와 명함, 컨설팅업체 일러스트 제작 등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예전 스타트업 때 대표였던 형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됐다고, 재밌는 일들을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건 모바일 메신저의 이모티콘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아이디어를 내어 기획하고, 제작까지 진행하면 메신저 회사의 승인 여부를 떠나 우선적으로 비용을 정산받는 조건이었다. 승인이 되면 일정 비율로 형의 회사와 내가 수익을 나누게 되는 나에게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챙겨주지 못하고 고생만 시켰던 것 같다며 이제 내가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같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형의 말에 지난 5년의 과정들을 이렇게 보상받는구나 싶었다. 때로는 아내의 지인들을 통해서 일이 들어왔다. 사회 복지 단체에서 일하는 대학원 동기의 도움으로 단체의 제안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셨다. 내가 살아온 삶의 모양과 상관없이 커다란 은혜를 안겨주었다. 덕분에 나의 가정이 건강하게 지켜질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 초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적금도 한 번도 미납되지 않고 잘 모을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 당시에 아내가 적은 가계부를 들쳐봤다. 볼수록 신기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차분하고 따뜻한,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부족한 나에게 기회를 주고, 애정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기회와 애정을 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