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
사랑하는 아내

by 굿대디

“자기는 생활비 어떻게 사용해?”

“뭐... 이것저것 사용하지... 나는 돈 관리 잘해~”

“음... 말로만 이야기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나중에 내가 믿고 재정을 맡겨도 되는 거지?”


연애할 때 아내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나는 아내가 한 달 생활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했다. 결혼 후 재정 관리를 맡겨도 될지 의심 섞인 질문을 하는 나에게 아내는 행동으로 대답해줬다. 그날 이후 아내는 가계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 후인 지금까지도 4년 동안 한 달도 빼먹지 않고 수기로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다. 지출 내역에는 아이스크림 한 개 사 먹은 내용도 적혀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월 말이 되면, 수입과 지출에 대한 항목을 정리한다. 결혼 후 나는 아내를 가정 재정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나는 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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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건 이미 스무 살, 입시 실패로 뼈저리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일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하고 경계하며, 신중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철저하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스타일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계획했던 그림에 큰 변수가 생겼다.


일하기로 한 NGO에서의 일과 급여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처음 대표님과 이야기했던 조건이 이사회에서의 문제 제기로 인해 수정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최종적으로 주 2일 출근하는 조건으로 급여가 조정되었다. 또 다른 변수는 퇴사하기 전 나에게 개인적으로 업무를 주겠노라고 말했던 단체에서 앞으로 컨텐츠 제작할 계획이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불과 몇 주전만 해도, ‘우리 안 볼 사이 아니잖아요, 앞으로 계속 같이 일 해야죠.’라고 통화했었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생각해봤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호기롭게 퇴사하고 나왔는데... 그렇게 3월을 시작했다. 아내는 평안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어차피 지금 대학원 기간이니까 공부에 더 신경 쓰는 게 어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에너지를 공부로 바꾸는 거야. 그리고 학교 과제하고 발제 준비하다 보면, 외주를 너무 많이 받아도 못할 수 있으니까 일이 안 들어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자. 정 안되면 나도 일자리 알아보면 되는데, 왜 걱정해~” 요목조목 맞는 말이었다. 아내는 재정적으로 불안했던 이 시기에 한 번도 나를 채근한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믿어주고, 지지해줬다.


3월 첫째 주 어느 날, 연말정산 환급금이 입금됐다. 작년보다 많은 금액이 환급됐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퇴직한 회사를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간단한 외주 작업이 몇 건 들어왔다. 결혼 후 첫 달 아내와 가계부 정산을 했다. 약간의 적자였지만,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각자 개인적으로 그동안 후원해왔던 사회복지단체에 후원을 멈추기로 했다. 그리고 내 용돈도 줄이기로 했다. 다음 달 용돈은 줄이지 말지...


아내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나에겐 홀로 걱정거리가 있었다. 바로 다음 달 초, 아내의 생일이 있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얼마 없었다. 연애 때는 이벤트도 잘해줬는데... 결혼하고 첫 생일을 초라하게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간단한 외주라도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아내의 생일날이 왔다. 그 날은 아내의 대학원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이라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었다. 내 지갑엔 5만 원이 전부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내에게 미안하고, 내 처지가 민망하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무작정 밖으로 나가 무슨 선물을 할 수 있을지 찾기 시작했다. 30분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꽃집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꽃집에 들어가 꽃다발을 주문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찐한 파란색의 아네모네를 선택했다. 꽃다발이 준비되는 동안 다이소에 들려 고깔모자 두 개와 생일 축하 가렌다, 꽃볼 장식과 와인 잔을 샀다. 그리고 작은 케이크와 마트에서 저렴한 와인과 와인 오프너를 샀다. 준비된 꽃다발을 받아 들고, 근처 문구점에서 천 원짜리 풍선 세트를 두 개 와 작은 반짇고리도 샀다. 나는 서둘러 아내가 집에 오기 전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풍선을 불어 바닥에 뿌리고, 생일 축하 가렌다를 설치하고, 꽃볼 장식을 펼쳐 천장에 매달았다. 케이크와 고깔모자, 와인과 와인잔을 세팅했다. 5만 원치 고는 괜찮은 파티 준비가 완성됐다. 그리고 아네모네의 꽃말을 검색했다. 꽃말 중에 기다림이 있었다. 이미 나의 감수성은 최대치를 채우고도 남은 상황이었기에 단숨에 아내를 위한 시를 적었다. <푸른 아네모네>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같이 잠들고, 춤출 수 있는 오늘을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리고 이제 기다림은 끝났고,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한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잔잔한 음악과 따뜻한 색감의 식탁 등만 켜 놓고, 아내를 마중 나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나갔다.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저녁을 안 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아, 뭐라도 사가야 한다.’ 이미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근처 저렴한 치킨집에서 양념 치킨을 한 마리 샀다. 같이 집에 돌아오는 길, 내가 마중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착한 아내. 차가운 손을 어루만지며 걸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아내를 앞장 세웠다. 현관문을 연 아내는 바로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집안 곳곳에 작지만 구색은 갖춘 장식들과 생일 케이크, 꽃다발을 보고 너무 예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 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서로를 쓰다듬고 토닥거리며. 조금 진정이 됐을 때 아내에게 준비한 시를 읽어줬다. 그리고 아내와 다시 한번 포옹을 했다. 잔잔한 음악에 마음을 달래며, 함께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며칠간 전전긍긍했던 이야기. 그래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마음도.


차분하고 분위기 있게 와인 오프너와 와인병을 집었다. ‘아내와 멋지게 ‘짠’해야지’ 생각하면서 와인의 뚜껑 포장을 뜯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와인을 제대로 따 본 적이 없다. 그날도 그랬다. 힘 조절을 잘못한 건지, 방법이 잘못된 건지 조악한 와인 오프너가 망가졌다. 당황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오프너를 사 오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전속력으로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서 너 군데쯤 편의점을 돌고 나니 겨우 오프너를 찾을 수 있었다. 다시 전속력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태연하게 다시 와인을 오픈하려 했다. 결국 그날 우리는 식은 치킨을 먹었다. 코르크 마개를 병 속에 밀어 넣고, 채에 코르크 잔해를 걸러 와인 잔을 채웠다.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시간만큼이나 와인병과 사투를 벌인 것 같다. 그래도 행복했다. 아내는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기뻤다.


손에 가진 것보다 마음에 가진 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된 감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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