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퇴사가 답이다

by 굿대디

유아기의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를 위한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 도널드 우즈 위니캇 (Donald Woods Winnicott, 1896-1971)


대학원 공부 중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위니캇은 자녀가 유아기일 때,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를 위한 환경, 즉 어머니가 아기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닌 ‘되어주는 것’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단순히 경제적 활동을 통해 안 굶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정서적인 부분도 채워주는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결혼을 앞둔 나의 마음에서 종이 되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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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청바지 공장을 운영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아내는 어린 시절 미싱 소리와 공장을 가득 채우는 트로트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했다. 장인어른, 장모님은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마감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셨다. 그로 인해 아내는 동생을 돌보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부엌 찻장의 그릇들을 꺼내어 닦고, 시꺼멓게 때 낀 바닥 장판을 수세미로 닦았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면, 늦은 밤 돌아오신 장모님이 아내를 껴안고 고맙다고, 효녀라고 칭찬하셨다. 아내는 그 칭찬을 받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집에서 밤늦게 가족을 기다리는 게 많이 우울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했었다. 마음에 울려 퍼진 종소리는 결혼 전 나눴던 아내의 이야기가 되어, 내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매일 늦은 귀가를 할 수밖에 없는 광고인들의 삶. 대표님도 매일 새벽에 퇴근하시는 회사. 대표님의 큰 딸은 출근하는 대표님에게 “아빠, 집에 또 놀러 와”라고 인사했다고 했다. 씁쓸한 웃음으로 이야기하는 대표님이 안쓰러웠다. 체력이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 광고업이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업무를 할수록 쌓이는 클라이언트들의 자잘한 수정사항들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무조건 크고 잘 보이게, 빨간색으로.’ 내가 디자인을 잘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내가 왜 이걸 만들고 있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회사 단톡 메시지. “이따 11시에 OOO비딩 건 아이디어 회의하시죠.” 메시지가 온 시간은 10시 30분(22시 30분)이었다. 출근과 함께 마시는 박카스병과 졸음이 올 때마다 마시는 커피잔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갔다. 피로가 쌓이고 쌓여 감정적으로도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회사의 일들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만 다가왔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고, 그 분노의 화살은 대표님께 향하게 되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미래의 내가 궁금하다면, 직장 상사를 봐라. 그게 너의 10년 뒤 미래다.’

문득 회사 한편 접이식 침대에서 쪽잠을 주무시는 대표님의 모습에 나의 미래가 오버랩됐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 결혼하면, 아내가 우울증에 걸리는 건 불 보듯 뻔하다. 학교에서 접하는 사례집에 나의 아내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어린 시절의 외로움으로 인한 상처를 다시 주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타이밍은 결혼식 전으로 맞췄다. 남들은 결혼을 앞두고 퇴사한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만은 이해해줬다. 잠잠히 때를 기다렸다. 때마침 회사의 클라이언트였던 단체가 개인적으로 나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그리고 나에게 대학원을 추천해주신 목사님께서 작은 NGO의 대표가 되시면서, 나에게 함께 할 수 있겠냐고 제안해주셨다. 규모가 크지않은 NGO였기에 높은 연봉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외주를 받으면 충분히 생활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퇴사하기 몇 달 전, 대표님께 퇴사의 뜻을 말씀드렸다. 대표님은 처음 채용할 때 했던 약속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간 함께 고생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마음은 아프지만, 나는 미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다음 달엔 결혼식이, 아직 대학원 1년이 남은 시점에 나는 그렇게 퇴사를 했다.


*혹시 광고를 사랑하고, 광고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심기가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나와 광고업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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