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나가는 커리어,
심리상담 대학원에 지원하다

by 굿대디

우당탕탕.

“야! 너 왜 반칙해!”

“어쩌라고~ 너나 잘해~”

“야! 너 진짜! 그래 가지고 성공할 수 있겠니!”

8, 9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허리에 손을 야무지게 얹으며 한 말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합정동 놀이터에 앉아 멍하니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물론 나의 어린 시절. 그때도 저렇게 야무진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아이들은


“너 그렇게 하면 착한 아이 아니야! 나쁜 아이야!”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놀이터의 놀이문화에서도 성공을 운운하는 시대가 됐구나.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으로 방금 전 여자 아이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저 아이에게 성공은 무엇일까? 그보다 성공이란 말은 어디서 들었을까. 부모님이 자주 이야기했을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말들을 듣고 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 합정동 놀이터에서 그 여자 아이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 실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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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소녀의 성공 이야기는 결국 내 졸업전시 주제가 되었다.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부모. 부모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동화라는 컨텐츠를 떠올렸다. 결국 졸업 작품으로 동화를 통해 부모와 아이가 소통할 수 있는 제품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와 아이의 환경, 부모의 역할에 대한 것들에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졸업전시를 무사히 마치고, 졸업을 몇 달 앞둔 겨울이었다. 부모, 가족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 또 하나 생겼다. 그 해 겨울, 교회 청년부에서 선교 봉사로 태국에 가게 되었다. 그 해는 한국교회가 태국에 선교사를 파송한 지 60주년 되는 해였다. 그래서 태국에서 관련 행사가 있었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행사기간 동안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기 위해 태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유치원생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정서였다. 같은 지역, 같은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이라도, 그 아이들의 정서가 확연히 달랐다. 밝고, 예의 바르고, 처음 보는 또래 아이들과 구김 없이 잘 지내는 아이가 있는 반면, 행사 기간 동안 정신 사납게 두 손, 두 발로 뛰어다니는 아이, 부모와의 분리 불안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 선생님에게 더 사랑을 받으려 안 떨어지는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이 낯선 땅에 온 아이들이다. 비슷한 조건임에도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


청소년의 경우 대부분 날씨, 언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현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고,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비싼 등록금 때문에 부모로부터 더 높은 학업성취를 기대받는다고 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태국에 온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교사인 부모의 결정으로 태국으로 오게 됐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떤 아이는 밝고, 어떤 아이는 어둡다면, 분명 부모의 양육방식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가설을 세워보았다. 선교 봉사를 마치고 태국에서의 마지막 밤, 청년부 담당 목사님께 내 불편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목사님께서는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며, 당신이 재학 중인 심리상담 관련 대학원에 진학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하셨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게 되면, 왜 아이들이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었는지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대학교를 9년 동안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과 조교가 후배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친하게 지냈던 교수님은 ‘너는 그냥 형이라고 해라.’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학과 내에서는 살아있는 화석이었다. 그래서 나는 졸업만 기다렸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기에. 그리고 더 이상 공부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때는 졸업하지 못한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나를 발목 잡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목사님의 권유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아이들의 행동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어떤 경험에 특별한 감정이 생겼다면, 그것에는 뜻이 있을 것이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자고 했다. 결국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학원 진학을 마음먹었다. 귀국 후 회사에 출근하여 대표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대표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다만 광고디자인 쪽이 아닌 심리상담이라는 것에 갸우뚱하시긴 했지만... 회사는 어치피 주 4일 근무제였으니, 주중에 하루, 주말에 하루 가는 시간표로 짜면 회사 업무에 지장도 안 가고 괜찮겠다 싶었다. 대학원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 준비를 했다. 순간순간 주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너무 충동적인 것 아닌가.


하지만 이미 막 나가기 시작한 커리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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