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파는 사람들

by 굿대디

“광고라는 걸 잘 모르는데, 괜찮을까요?”

“영상 툴은 배우긴 했는데, 편집 감이라든지 영상 디자인, 시각 디자인적인 부분은 제가 많이 부족하거든요.”

“아니, 제가 진짜 들어가도 되는 거예요?”



선생님 앞에서 혼나기 전에 잘못을 이야기하는 학생처럼,

고해성사를 하는 천주교 신자처럼, 나는 나의 부족한 점을 술술 이야기하고 있었다.

졸업 전, 괜찮은 조건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양심이라는 녀석은 눈치 없이 ‘과연 내가 합당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너 서른도 넘었어 이놈아!'라는 또 다른 자아는 양심의 강력한 초크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멍청한 뇌는 자기 혼자 간직하면 되는 의문점들을 입 밖으로 마구 던져대고 있었다. 그것도 날 채용하겠다고 찾아오신 광고대행사 대표님께.

우물쭈물 머리만 긁적이던 나에게,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제가 케어해줄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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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회사를 다니셨던 대표님은 좀 더 나은 광고 제작 환경을 만들고자 창업을 하셨다고 한다. 주 4일 근무제로 직원들에게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주는 회사. 영화, 전시회 등을 지원해주는 회사. 여러 가지 꿈과 계획을 가지고 회사를 창업했지만, 최근 큰 어려움이 생겨 함께 할 직원이 필요하시다는 말씀. 나 외에도 다른 직원들을 더 찾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광고회사에서의 CD(Creative Director)라는 직책에 대해, 광고의 시작과 끝에 대해 광고대행사 대표님은 친절히 설명해줬다. 알고 보니 대표님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겸임교수였고, 몇 권의 광고 관련 서적도 집필하신 분이셨다. 결국 그렇게 나는 광고대행사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광고업계는 처음이지만, 이전 회사 경력이나 포트폴리오를 좋게 봐주셔서 신입이 아닌 대리로 직급도 인정해주셨다. 어차피 전공과 다른 스타트업을 5년이나 다니고 나올 때, 이미 나의 커리어는 혼수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꽤나 좋은 조건으로 손을 내밀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광고업계로의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맨 땅에 헤딩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전 스타트업 시절 전문성이 결여된 작업 방식과 회사의 시스템에 힘겨워했던 내게 대표님의 전문성과 경력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모자란 부분은 내가 열심히 메꿔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짧은 광고회사 경력이라 광고업계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기엔 민망하지만, 내가 경험한 광고회사의 생리는 이렇다. 광고주가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알리거나 제품을 팔고 싶어 한다. 광고주는 자신의 브랜드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광고회사를 찾기 위해 경쟁 PT를 연다. 경쟁 PT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면, 광고회사는 그때부터 PT 준비를 들어간다. 우리는 이것을 종종 ‘광고를 판다’라고 표현 했다.

광고회사의 핵심적인 직무는 크게 기획파트의 AE(광고기획자), 제작파트의 CW(카피라이터), AD(아트디렉터)가 있다. 그리고 제작파트의 컨트롤 타워인 CD는 제작에 관련된 전반적인 것을 통제하고 이끌어간다.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광고를 팔기 위해 AE는 광고주의 니즈를 파악하고, 어떤 컨셉과 주제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전략을 짠다. 광고주, 제작 파트의 담당자들과 회의와 소통을 통해 전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제작 파트의 CW는 AE가 설정한 광고전략을 기반으로 브랜드의 가치, 제품의 속성, 핵심 메시지들을 담은 인사이트를 제안하고 카피를 제작한다. AD는 배너, 웹페이지, 이벤트 페이지, 옥외 광고 디자인 등 필요한 제작물을 제작한다. CD는 전반적인 제작의 흐름과 결과물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방향성을 지시하고, 결과물을 디벨롭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광고주에게 광고 제안을 한다. (매체를 다루는 랩사나 프리, 포스트 프로덕션과의 업무는 생략하였다.) 이렇게 해서 광고주의 간택을 받으면 실행에 들어간다. 광고주에게 제안, 약속한 내용을 결과물로 만들기 위해 협력사들과의 긴밀한 회의와 촬영, 후반 작업 등을 거쳐 광고물(CF, 포스터, 바이럴 영상 등)을 만들고, 정해진 기간 동안, 해당 광고물을 게재한다. 그리고 광고물을 통해 유입된 정보(접속자 수, 판매량 등)들을 정리하여 광고주에게 보고한다. 이를 통해 광고주는 광고회사의 광고전략이 잘 통했는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은 짧게는 한 달, 길면 연간의 단위로 진행된다. 광고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비딩(경쟁 PT)에 참여하고, 비딩을 따내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운영된다.

그렇기에 광고회사는 기회가 되는 대로 비딩에 참여한다.


광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자주 했던 말은 두 가지다. 바쁘다와 죽겠다.

비딩이 시작되면 퇴근은 없다. 밤 11시에 회의를 시작하자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대표부터 말단까지새벽 3,4시에 퇴근한다. 비딩을 따면 실행을 해야 한다. 기존의 업무는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실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에 새로 따온 일들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몇 개의 프로젝트들이 동시에 진행된다. 매달 지출결의서의 택시비와 저녁 식사비를 보면 여러 복잡한 마음이 올라온다. 광고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본의 광고회사 직원이 왜 과로로 죽었는지 모르는 친구들은 “세상에서 니가 제일 바쁘지.”라고 비아냥 거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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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SNS에 올렸던 직원 소개 콘텐츠


그래도 버틸 수 있던 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대표님은 물론, 모든 직원들이 모두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나름 독기와 끈기가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이들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혼자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홀로 야근을 자주 했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의 허한 감정을 더 이상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 처음으로 스튜디오에도 가보고, 촬영차 바다에도 가고, 녹음실도 가보는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무엇보다 컨텐츠를 만드는 과정과 경험들은 나에게 매우 유익했다. 어떤 프로세스와 흐름을 통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지, 내가 낸 아이디어가 어떤 점이 좋고 안 좋은지 배울 수 있는 장이 되었다. 그리고 틈틈이 대표님이 준비하신 다양한 워크샵을 통해 직원 간의 관계도 날로 좋아졌고 단단해졌다. 퇴사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로 형, 동생 하며 행복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 인생 중 가장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날 합정동 놀이터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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