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하루 전, 한통의 전화

by 굿대디

띠띠띠띠, 띠로리

철컥

철퍼덕


새벽 3시 반. 퇴근을 했다. 회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신촌의 작은 반지하 원룸 방. 본가는 파주지만 지독한 업무량과 야근을 못 이겨 결국 회사 근처에 작은 자취방을 얻었다. 피 같은 출퇴근길 3시간을 잠으로 바꾸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나는 한 달 뒤, 결혼을 한다. 한 달에 20일은 이렇게 퇴근하는데... 나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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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추석 명절 동안 괜찮은 일러스트 알바 있는데 한 번해보실래요?”

“당연하지. 얼만데?”

“백만 원이요.”

“콜!”


대학생 시절 추석 명절을 쇠기 위해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번 달 월세를 어떻게 갚을까 고민과 푸념 섞인 기도를 하던 중 같이 자취하던 동생의 전화가 왔다. 명절 나흘에 백만 원짜리 알바. 당장 월세 걱정을 하던 나는 기도응답이 이뤄졌다며 기뻐할 새도 없이 하겠노라 말했다. 후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명절을 앞두고 프로젝트의 이전 작업자들이(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이...) 잠수를 타는 일이 발생했다. 마감이 코 앞이었던, 광고대행사 대표님은 명절 하루 전이라 ‘대학생’이 아니면 일을 받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 판단했고, 막내 인턴이던 내 룸메의 동기에게 수소문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인연이 닿고 닿아 나에게까지 전화가 온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이번 달 월세도 세이브'를 속으로 외치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다음날 광고대행사의 대표님과 가벼운 미팅을 가졌다. 나는 이전에 삽화 작업했던 여행 서적을 몇 권 챙겨 대표님께 선물로 드렸다. 화기애애하게 미팅이 진행됐다.


작업은 이대역 에스컬레이터 외벽에 맵핑을 하는데, 거기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이었다. 이전 작업자들이 작업하던 일러스트를 완성시키고, 수정하는 일을 맡아달라고 했다. 작업 일정과 비용을 이야기하고, 기분 좋게 미팅을 마쳤다. 그리고 이전까지 작업이 진행됐던 파일을 공유받았다. 그날 저녁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제가 많은 프로젝트였다. 우선 이대역 에스컬레이터 외벽의 길이는 우리나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중 일곱 번째로 긴 40m였다. (제일 긴 에스컬레이터는 당산역으로 48m다) 문제는 이걸 실제 크기로 포토샵으로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3 등분해서 작업하고 있었긴 했지만... 참고로 이대역 에스컬레이터 외벽의 높이는 20m이다. 왜 이전 작업자들이 잠수를 탔는지 마음이 헤아려지는 순간이었다.


‘포토샵이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보통 대형 인쇄를 할 경우에는 해상도 높은 사진을 가지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장점은 벡터 방식이다. 디자인 요소들을 좌표값으로 계산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출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크기와 상관없이 양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반면 포토샵은 하나의 작은 픽셀에 색 정보가 입혀지는 비트맵 방식이다. 쉽게 표현하면 커다란 벽면을 면봉에 물감을 묻혀 찍어 표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작업 방식인 것이다.


이런 황당한 작업을 하기 위해 명동의 광고대행사 사무실 마우스를 잡게 되었다. 3등분으로 나눈 각 이미지 파일의 크기가 15GB였다. 내 당시 내 노트북으로는 파일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사무실에 있는 당시 최고 사양 맥 프로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명절 연휴 기간 동안 사무실에 갇혀 작업하는 신세가 되었다. ‘갇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렇다. 당시 그 회사의 사무실은 다른 회사들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소호사무실이었다. 소호사무실의 현관은 지문 인식으로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자동 미닫이문이었다. 광고대행사의 직원들이 퇴근하면, 나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그런 구조였던 것이다. 나는 현관을 나가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올 수 없다. 명절이라 소호사무실에는 나 말고 다른 회사 사람들 몇 명 밖에 없었다. 최대 문제는 화장실이 현관문 밖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광고회사 직원들이 퇴근하고 무의식적으로 화장실에 갔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려 했으나 융통성 없는 기계는 내 손가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관 앞에서 우물쭈물 못 들어오는 나를 본 다른 회사 직원이 구원의 손가락을 내밀어 나를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게 해 줬다. 하아. 일적으로나 생리적으로나 암울하고 복잡한 프로젝트였다.


여차저차 해서 며칠 밤샘으로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곧이어 온갖 수정사항이 난무했다. 이를 악물고 수정을 진행했다. 최종 마무리된 파일의 용량은 45GB였다. 당시 최고 사양 맥 프로로 파일을 돌려도 저장할 때면, 30분짜리 단편 영화 렌더링 하는 것만큼 시간이 소요됐다. 나는 그저 월세를 벌려고 왔는데... 수정만 하면 되는 작업이라고 해서 왔는데... 복잡한 마음이 분노와 함께 용솟음쳤다. 하지만 그 용솟음도, 분노도, 월세를 내야 하는 가난한 대학생의 간절함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몇 번의 수정을 더 진행했다. 명절이 다 지나가고, 최종 수정의 수정의 수정 작업 파일은 인쇄소로 넘어갔다. 결국 광고대행사의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자를 챙겨 오길 잘했다는 마음과 다시는 광고 쪽 일은 받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내 의지는 그렇게 굳지 않았나 보다.


이대역.jpg 눈물의 이대역 에스컬레이터 벽면 40M 대형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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