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못 나왔다...”
“여보. 나도 문젠데 여보도 문제다...”
본가와 처가댁에 걸려있는 결혼식 가족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다. 결혼식 때 정신이 없어서 긴장을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에는 경련이, 가슴은 왜 이렇게 앞으로 내밀고 찍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친구가 가슴에서 미사일 나오는 줄 알고 도망갈 준비하고 있었다며 나를 놀렸다. 나도 나지만 아내의 신부 화장도.. 하.. 말을 잇지 못하겠다... 아내의 쌩얼이 훨씬 예뻤을 것 같다. 그때 돈 좀 더 쓸 걸....
그렇게 결혼식을 올렸다. 아주 작고 소박하게.
“와... 눈 엄청 오네...”
“운전 조심히 해, 오빠”
“알았어. 근데 우리 신혼여행 때 생각나네. 눈 오는 날 운전하니까.”
결혼식을 준비하는 우리는 과감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결혼 준비 항목에서 제외시켰다. 당시 둘 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터라, 신혼여행으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주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방학 기간에 결혼하자고 결론을 내렸고, 결혼 비수기인 2월로 예식장을 예약했다. 비수기다 보니 여러 가지 할인 이벤트가 많았다. 추운 겨울에 하객을 초대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성수기에 결혼식이 겹쳐 초대하지 못하는 것보단 괜찮은 것 같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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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나는 결혼 자금을 모아놓은 것이 한 푼도 없었다. 내 통장 잔고를 알기에 결혼은 몇 년 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모은 돈이 없다면 데이트 비용으로 자잘한 돈 쓰지 말고, 결혼하고 모으자고. 멋진 여자다. 그래서 결혼 관련 비용을 대폭 줄이기 시작했다. 욕심을 부리면 바로 빚이 되는 상황이었기에. 스튜디오 촬영 생략, 드레스는 식장의 기본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도 간단하게 식장에서 메이크업을 받기로 했다. 여자에게 “스드메”는 결혼의 꽃이고, 로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내려놓게 만든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아내는 “다른 건 몰라도 청첩장은 오빠가 만들어줘.”라고 말했다. 그럼, 백장도 더 그려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아내와 내가 자전거를 타고 결혼하러 가는 길을 그림으로 그렸다. 내 다리 길이와 뱃살이 적당히 미화된 그런 그림이었다. 그리고 식전영상도 직접 만들었다. 예물은 안 쪽에 결혼기념일이 각인되어있는 은반지와 아내의 드레스에 어울리느 인조 다이아몬드(큐빅) 반지가 전부였다. 그렇게 큰 소리 없이 소소하게 결혼을 준비했다.
신혼집은 월세 30만원에 12평짜리 투룸으로 구했다. 빨간 벽돌의 다가구 옛날 집이었다. 혼수는 이케아와 인터넷 쇼핑으로 소박하게 집 안을 채웠다. 본가에서는 경제적으로 결혼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처가댁에 죄송한 마음이 컸다. 작고 낡은 집이지만, 조금이라도 예쁘게 집을 꾸미고자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퇴사 후 2주 동안 집의 문, 벽과 천장을 하얀 페인트로 칠하고, 문고리, 콘센트 커버, 스위치 커버를 교체했고 저렴한 식탁 등도 달았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작은 집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지식을 얻었다. 집의 도면을 짜고, 딱 맞는 가구를 찾아 구매했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우리만의 행복한 신혼집을 만들었다. 아직도 가끔씩 신혼집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다. 내가 제주도를 한 번도 못 가보기도 했고, 해외로 나갈 경우 비용적인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대신 이제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열흘간 제주도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열흘이면 제주도 다 보고 오겠다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제주도에 이례적인 폭설이 내렸다. 41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 지역 주민들도 이런 적이 없었다며 놀랐던 그 시기에 우리는 제주도에 있었다. 새하얀 눈이 섬 전체를 뒤덮었다. 나름 이색적인 경험이라고 아내에게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돌아다닐 수도 없고... 동남아라도 갈 걸 그랬나’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리는 눈발이 좀 잠잠해질 때면, 차를 끌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제설작업이 덜 된 도로에서는 스노 체인을 채우고도 차가 미끄러지기도 했다. 길가에 세워둔 차들은 눈에 뒤덮여서 커다란 솜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신혼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비록 꿈꾸고 예상했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니 어딜 가도 즐겁고 웃음이 가득했다.
얼마 전 겨울, 눈이 펑펑 내렸던 날 아내와 교회를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도로 언저리와 나무에 쌓인 눈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신혼여행 때 긴장하며 핸들을 꽉 쥐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엔 날씨가 원망스러웠는데, 눈 내리는 도로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깊게 각인되었나 보다.
이제는 매 년 겨울, 눈이 내리면 신혼여행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추운 겨울 소복이 눈이 내리면, 우리 부부는 다시 신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