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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Oct 24. 2022

어떻게 성격까지 사랑하겠어, 가족이니까 이해하는 거지

유전자로 지독하게 얽힌 관계. 이상하지만 웃기고 어떻게 보면 또 귀여운 구석이 있는 성격을 가진 우리 가족의 역사는 엄마와 아빠가 사랑했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둘은 사내 커플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명을 바꾸고 역사를 숨긴 제법 큰 회사에서 만났다네요. 직장 동료와 어떻게 연애를 할 수 있을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만, 둘은 1991년 대구 어느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경기도 소도시에 작은 신혼집을 차렸습니다. 얼마 후 나를 임신했고 곧 이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내놓았죠.


엄마는 나를 낳느라 13시간 동안 진통을 겪었습니다. 초산에 난산이었어요. 결국에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죠. 왜 그렇게 오랫동안 버텼냐 물어보니, 의사가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애를 낳는 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죠. 나는 엄마의 피부, 피하지방, 근막, 근육, 복막, 포궁, 양수 총 7겹을 절개한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엄마 배꼽 아래는 세로로 진한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선 양 옆에는 바늘이 휘집고 지나간 자국들이 선명한 점으로 남아있어요.



너무 오래 낑겨있던 탓이었을까요? 내 머리는 땅콩 껍질 모양 같았답니다. 양쪽 관자놀이 부근이 푹패여있었대요. 큰이모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너무 놀라 수술을 끝내고 나온 엄마에게 아무 말도 못 했대요. 그저 애처로운 마음을 속으로 숨겨야만 했답니다. 며칠 뒤 다시 팽팽하게 차오른 머리통 옆구리를 보고는 안심했다며 웃으며 고백했어요.


얼떨결에 장녀로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던 나는 1살 때 대구 할머니 집으로 유배를 떠납니다. 남동생을 임신한 엄마의 입덧이 너무 심해 도무지 육아를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낯선 땅에 진입한  나는 그 시절부터 고약한 성질을 자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쭈쭈바를 따주면서 꽁다리를 먹었는데, 그걸 보고는 배를 드러내고 울었답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두손 두발 다들고 새로운 쭈쭈바를 사 와야 했대요.


사실 나는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아빠가 나를 좋아했어요.  해줬고요.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주말 외식을 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마음대로 살았으니 목소리도 점차 커졌습니다. 그리고 눈에 거슬리는 점들이 많았어요. 엄마와 아빠는 똑같이 돈을 버는데 집안일은 엄마가 도맡아 하는 꼴이 아니꼬웠고,   방울  섞인  씨네 집안 제사는 죄다 엄마가 지내는 상황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내 맘에 내키지 않거나 거슬리는 일들이 있으면 그냥 못 넘어가게 자라, 지만 아는 못돼 먹은 성격의 소유자. 나를 이런 성격으로 키워낸 것도 아빠였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게 만든 것도 그입니다. 아빠는 내가 말 잘 듣는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아빠가 일구려 했던 가부장제에 금이 가게 해 결국에 무너뜨리는 것. 그게 내 역할입니다.


아빠는 큰 목소리로 자신한테 대드는 것처럼 말하는 행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게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엄마가 재수는 무슨 재수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라는 방향을 제시했을 때, 아빠는 다시 한번 더 도전해 서울 상위권 가고 싶은 과에 도전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지. 그것도 못 하냐고요. 숏컷을 처음 했을 때도 좋아했어요. 샴푸값이 적게 들고 머리 말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요.


엄마는 내 성격을 잘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든 구워 삶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해요. 아빠에게 불만이 있으면 나를 먼저 불러요.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분노하게 만들죠. 그럼 나랑 아빠랑 싸우고, 아빠도 한발쯤 물러납니다. 내가 거기서 더 요구하면, 엄마가 말리는 식이에요. 나는 엄마의 꼼수를 잘 알고 가끔은 알면서도 당해줍니다. 요즘은 그 안에 속하는 게 지겹고 버거워 빨리 202호로 도망치지만요.



엄마는 나를 참 많이 서럽게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아토피가 심해서 비싼 로션을 사준적이 있거든요? 조금씩 아껴 바르던 내 로션을 엄마가 동생한테 아낌없이 발라주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걔는 피부 좋은데! 그래도 ‘엄마랑 아빠랑 헤어지면 누구랑 살래?’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엄마를 고를 겁니다.


제게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은 엄마 아들. 좋은 피부 더 좋아지라고 누나가 아껴바르던 고급 로션을 타의에 의해 바르게된 우리집 왕자님.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악기 구입은 물론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는 여유를 가진 우리 아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정확히 반을 갈라 나눠 받고 싶은 어린 나는 나보다 더 많이 받는 그 애가 부러우면서도 밉습니다.


어릴 때 동생은 나를 ‘이나(누나)'라고 부르며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녔습니다. 좀 더 크고서는 엄청나게 싸웠어요. 걔는 벌레를 아주 무서워 했는데, 나는 맨손으로 벌레를 잡아 그 애 눈앞에 갖다 대는 놀이를 즐겨했어요. 그래도 엄마가 나를 옷걸이로 때리는 일이 발생했을 때, 걔가 옆에서 때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해 말려졌던 장면이 기억나네요.


동생이 일 때문에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결혼까지 하면서 우리가 같이 밥을 먹는 날은 일년에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201호 안방에서 다 같이 자던 날들이 생각나네요. 눈에 아른거리지만 그립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성격까지 사랑하겠어요. 가족이니까 이해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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