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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May 23. 2021

빨리 와, 아빠 응급실이래

병명은 뇌경색

아빠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시기가 지금 당장이라거나 몇 년 이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을 뿐이다. 우리 아빠는 잘 먹는다. 입맛이 별나지 않고 허기를 자주 느껴 밥은 밥대로 먹고 유행하는 간식도 곧잘 입에 넣었다. 먹어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할머니는 항상 엄마에게 아비 보약 한 체 해먹이라고 닦달하곤 했다. 사주지는 않고선. 아빠는 보약은커녕 흔한 영양제 한 알 먹지 않고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웠어도 감기 한번 걸리지 않던 건강한 사람이었다.


빨리 와, 아빠 응급실이래

퇴사를 하루 앞둔 오후 5시 40분이었다. 사무실 밖에서 아빠가 뇌경색 같다고 그래서 응급실로 가고 있다는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다시 자리에 앉기까지 1분이나 걸렸을까. 당장이라도 회사 사람들한테 아빠가 응급실에 가셔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떠나는 마당에 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 앉아 20분을 버텼다.

정신없이 지하철을 타서는 뇌경색 증상, 치료법, 후유증, 사망 등을 검색했다. 뇌경색은 뇌의 혈관이 막혀서 주변 뇌 조직이 괴사하게 되는 병이다. 막힌 혈관에 위치에 따라 한쪽 몸이 마비되거나 말할 때 발음이 어눌해질 수 있고, 혈관이 막힌 지 오래되면 사망에 이른다. 인터넷에는 깔끔하게 나았다는 후기는 없고 다들 어떻게 치료를 받았다거나 나처럼 뇌경색 진단을 받은 주변인을 걱정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아빠가 죽을까 봐 무서웠다. 죽지 않더라도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갈까 봐 두려웠다. 우리 아빠는 밥도 잘 먹고 입원 한번 한 적 없을 만큼 건강하며 당뇨나 고혈압도 없는데 왜 갑자기 뇌에 혈관이 막혔다는 거야. 왜 내가 새로운 회사로 출근을 앞둔 이 시점에 좀 살만하니까 아빠가 아픈 걸까. 아직 검사 결과가 안 나왔으니 어쩌면 아빠가 뇌경색이 아닌 건 아닐까. 머릿속에서 긍정 회로를 돌리다가도 바로 아빠의 죽음을 떠올렸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식이 없는 아빠를 상상하다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살아있는 아빠를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코로나19 검사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다음날 오전까지 1인실 병실에 입원해 그저 기다려야 했다. 음성이 나와야 뇌 사진도 찍고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있단다. 보호자는 한 명만 있을 수 있었다. 이 시국에 아프면 이렇게 된다. 엄마가 아빠 병실에 남기로 했다. 늦은 시간에 입원한 터라 저녁밥이 안 나왔다. 정신없는 모부를 뒤로하고 병원 근처 죽집에서 전복죽 2인분을 사고 편의점에서 물과 간식들을 사 병실에 올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도 밥은 먹여야 했다.


입원 일주일

혼자 집에 와서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대화를 나누다 아빠 좀 바꿔보라고 했다. 아빠는 괜찮다고 말했다. 치료받으면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아빠의 발음이 이상했다. 너무 어눌했다. 평소 아빠 같지 않았다.


아빠는 아침부터 오른쪽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온종일 일을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오후에 조퇴하고 동네 내과로 갔다. 내과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단다. 진짜 영화에서 큰 병에 걸린 주인공이 작은 병원 가서 듣는 대사를 우리 아빠가 들었을 줄이야.


다행히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음성이 나왔고, 정밀 검사 결과 불행히도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아빠는 입원을 했다. 퇴사 후 웃는 얼굴로 나왔지만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빠 병원에 갔다. 가기로 한 제주도 여행을 모두 취소를 했고, 마켓컬리에서 닭갈비, 훈제 오리며 데워다가 아빠 병실에 날랐다. 아빠는 제주도에 못 가서 어떻게 하냐며 그냥 병원 밥 먹어도 되는데 딸 덕분에 호강한다고 말했다. 아빠 병원에 다녀온 날에는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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