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란 Oct 26. 2022

호칭 실명제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하게 실행하세요


1993.  나이를 개월 수로 세던 시기에 우리나라의 모든 금융거래를 실제 본인의 이름으로 실시하는 금융실명제가 도입됐다. 그전에는 가명이나 무기명으로도 돈이 오가는 일이 가능해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고. 당시 대통령은 말도  되는 일을 뿌리째 뽑기 위해 쥐와 새에게도 알리지 않고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호칭 실명제는 내가 우리집 가부장제를 전복하기 위해서 실행하고 있는 체제 전복 시도이자 시스템 구축 계획 중 일부다. 금융 실명제와 달리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하게 시행하고 있다. 연장자의 반발심이 일어나면 빠르게 뒷걸음 칠 수 있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지금부터 가족 내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한 지위를 부여할 호칭 실명제 시행 작업을 단계별로 소개한다.


1단계 ‘님들’

처음은 간단하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리는 호칭을 선택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먹방 유튜버가 시청자들을 ‘님들이라고 부르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채팅창에서 소통도 하고 별풍선도 쏴주던 사람들을 ‘님들이라고 불렀다. 나이와 성별도 모르지만 모니터 뒤에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 ‘님들 공평하면도 앞에 이름을 붙이지 않아 처음에는 왠지 어색할 수 있다.


“님들, 저 왔어요”

“님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퇴근하고 201호를 방문할 때나 주말 아침 옆집에 밥 먹으러 갈 때 써먹었다.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았던 나의 님들도  말이 재미있었나 보다. 엄마는 지금도 여러 명을 싸잡아서 부를  애용하고, 앞으로 등장하게  호칭  아빠가 처음 듣고서 가장 크게 웃었던 호칭이기도 하다.


2단계 ‘남성분’

님들 익숙해질 무렵 엄마와 아빠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을 옆에서 억지로 보다가 꾸준히 들리는 호칭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갔던 시절이 있었던 지금은 한물간 중년 연예인들이 패널로 나오는 종편 채널의 집단 토크쇼에서는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들을 ‘여성분들이라고 통칭한다. 동년배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는 주로 부부 생활을 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들이다. 오래도록 변치 않을 사랑으로 서로에게 행복을 줬던 얘기보다야 범법행위는 아니지만, 이혼 직전까지 갔던 얘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그중 최고는 고부간의 갈등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남성분들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여성을 ‘여성분’, ‘여성분들이라고 부르며 엄마, 아내, 며느리로 여성의 역할을 집약시킨다. 자기들 딴에는 여성이라며 존중이 담긴 호칭을  매너 있는 남성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그거. 홈쇼핑에서도 심심치 않게 여성에게 코르셋을 강요하고 후려치는 쇼호스트들의 멘트를 들을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특성을 뭉뚱그려 획일화시키는 미디어가 싫었고 익숙함을 역이용해 집안에서 미러링을 시도했다.


어머 남성분, 어째 어제보다 오늘 머리가  빠지신  같네요?”

“우리 집 남성분들은 다 게을러가지고...”


엄마가 좋아했고, 따라서 썼다.

(목소리가 앙칼지고  )


“어이 거기 남성분 이거 치우세요”  

“아니 남성분들이 왜 이러는 거야~”


3단계 ‘실명’

님들과 남성분을 거치면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럼 이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왔다. 용기 내서 본명을 불러라. 본명을 부른 단계에도 단계가 있다. ㅇㅇ씨, ㅇㅇ님으로 존칭 앞에 이름을 붙이는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존칭을 빼보시라. “OO아 너 진짜 왜 그러니. 담배 끊어라 이제” 범위를 확장해서 이모, 삼촌들의 이름도 그렇게 부른다. 큰 이모, 작은 이모, 대구 삼촌보다야 본명을 부르는 게 누구를 지칭하는지 파악하기 쉽기 때문인데, 이건 엄마-아빠-나 이렇게 셋만 있을 때만 쓴다. 한 치 걸러 두 치라고 친척들은 우리의 서사를 모르니 내가 버릇없는 딸을 넘어서 패륜을 저지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4단계 ‘야 그리고 너’

엄마와 아빠가 나를 짜증 나게 했다. 나도 모르게 ‘라고 불렀다. 뜨끔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패륜인가? , 그런데 반응이 괜찮다. 화를 내지 않았고, 나에게 미안해했다.  이후로 나는 내가 당당해질  있는 상황에서만 , , 너희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컴퓨터로 복잡한 서류 작업을 내게 부탁할  여러  재촉해  때면 “,   기다려라. 내가 지금 바쁘잖아. 자꾸 그러면  해준다?”라고 뻐긴다. 싸울 때는 ‘, 라고 부르면  된다. 서로 열받고 예민한 상황에서 내가  불리할  있거든. “이게 어디서 엄마한테 반말이야! 엄마 이름을  불러! 내가  친구야! 앞으로  번만  그렇게 불렀다간 본질을 흐린 싸움이   눈앞에 선하다.


5단계 상황과 기분에 따라 아무거나

엄마,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부르는 일은 이제 우리만 아는 놀이가 되었다. 선생님, 교수님, 사장님, 팀장님, 이봐 김 씨,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이봐, 저기요, 님 등 상황과 기분에 따라 무작위로 부른다. 신박한 호칭을 들을 때마다 그날 바로 써본다.


엄마는 호칭 실명제의 열혈한 지지다. 어쩔 때는 원작자인 나보다 앙칼지게 호칭별 맛을 살린다. 응용 실력도 뛰어나다. 아빠는 이 시스템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 아빠가 짓는 미소의 정도에 따라 새로운 호칭의 신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편한 호칭은 설득하기 좋은 도구가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딸 된 도리를 다하지 않아도 친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랄까. 잔소리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엄마와 아빠 사이의 대화도 변했다. 나이 차이가 꽤나 나는 두 사람. 엄마는 연애 시절 아빠를 ‘아저씨’라고 불렀단다. 엄마는 결혼 후에도 여보, 자기, 란영 아빠라고 아빠를 불렀지만, 아빠는 저, 저기, 이봐, 란영 아라고 엄마를 불렀다. 호칭에서도 느껴지는 아빠의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가정에 대소사를 결정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마는 아빠의 꼬임에 대부분 넘어가 줬고, 아빠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제 엄마는 아빠를 주로 님, (영감)탱이, 남성분이라고 부른다. 아빠를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 더는 아빠 말만 안 들을 거란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단다.






이전 10화 조카 오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