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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Oct 04. 2022

입에 달고 사는 말

사줘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말끝마다 금전이나 금품에 대한 요구를 덧붙이는 것. 엄마는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항상 무언가를 사달라는 말로 마무리 짓는 재주가 있었다. 가전제품, 음식, 경험, 현금 등을 요구하며 자신이 백수 신세인 것을 어필했다. 나는 순순히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렇기에 반복 학습을 시작한다. 


엄친딸을 들먹이며 누구는 집안의 온갖 가전제품을 최신형으로 싹 다 바꿔줬다느니 매주 주말마다 직접 운전해 교외로 나가서 몸보신을 시켜준다느니 효과가 보장돼 티브이 씨에프에도 나오는 아주 비싼 영양제 1년 치를 대뜸 집으로 보내왔다는 등의 부러움을 꺼낸다. 반박이 필요하다. 나는 딸친엄 카드를 꺼낸다. 월급은 모조리 저금하고 엄카로 생활비를 한다느니, 취업 선물로 차를 뽑아줬다느니, 회사 근처에 서울 아파트를 마련해줬다느니, 명품백을 물려준다느니에 대한 얘기를 건넨다. 서로 상처만 남는 싸움이다.  


엄마는 습관처럼 사달라는 말을 내뱉곤 했고, 방어하기도 지친 내가 제발 그만하라고 나름 진지하게 따져 물으면 장난스럽게 그냥 하는 말이라며 흘려들으라고 했다. 그러다가도 정말 내가 돈을 좀 썼으면 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몇 번이나 구체적으로 요구를 해왔고 내가 시큰둥하면 열을 내며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연설했다. 


그 이유는 꽤나 타당했다. 첫 해외여행, 할머니 병문안, 요가복, 명절, 생일, 어버이날, 결혼기념일 등. 금액을 책정하는 기준은 그의 요령이 붙는다. 처음에는 가격을 낮춰 부르더니 마지막에는 높여 부르는 수법이다. 경비하게 5만 원만 줘라. 10만 원이면 더 좋고. 20만 원은 안되겠지? 이렇게 해서 10만 원을 얻어가는 식이다. 미리 알아서 주면 좋지만, 엄마가 말하기 전까지 생각을 못 하고 있는 나. 조용히 기다릴 엄마가 아니다.


“앞으로 뭐 사달라고 안 할게.” 


어느 날 엄마가 선언했다. 앞으로 지나가는 식의 뭐 사달라는 말은 안 하겠다는 것. 


어머나. 왜요? 


금요일 퇴근 시간 강남역 지하철을 경험해버렸기 때문이다. 강남역에서 2호선을 타고 사당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야 하는 루트. 자리에 앉기는커녕 문 앞이 아닌 통로에 자리 잡으려 치열한 경쟁을 뚫고도 몇십분을 서 있어야 하는 여정. 누구나 혀를 내두르는 사당 환승 코스를 경험한 것이다. 심지어 사당역은 사당까지만 운영하는 당역종착 열차와 오이도행 열차가 번갈아 오는 바람에 10분 이상 기다리기 십상이다.


정말 그날 이후로 입에 달고 살던 사달라는 말이 썩은 동아줄처럼 뚝 끊겼다. 매달 말일. 월급날에 소정의 생활비는 내고는 있지만, 너무나도 적은 금액이다. 나는 계획적인 저축을 하고 있지는 않으면서 최대한 아끼려 드는 야박하고 치사한 딸이다. 적은 돈을 위트로 무마하기 위해 변변치 않은 월급을 받아오는 가장처럼 위세를 떤다. “내가 말이야 한 달에 생활비로 얼마를 내는데, 서포트가 너무 약해” 아빠 성대모사를 곁들여 던지는 무리수에 나의 민망함을 자주 웃어넘기던 엄마를 안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남동생만 편애했던 과거를 들먹이는 것. 우리집 아들 추앙의 역사는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지속되어 왔고, 가랑비에 속옷까지 다 젖어버리듯 장녀 가슴 한 가운데 엄청나게 큰 응어리를 만들었다. 한녀 가슴에 서린 한은 매일 풀어주지 않으면 고이고 고여 썩고 만다. 그러기에 성인이 된 지금까지 조금의 낌새만 있다면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모진 말만 골라내서 조립한 후 찔러댔다. 


그리고 글로 옮겨 썼다. 차별받았던 역사를 기록했다. 상당 기간 매주 글을 썼고 모임에 나가서 떠들었다. 브런치에 발행도 했다. 지인들과 글을 끄적이며 노닥거리던 그곳 대문에 몇 개의 글이 올라가게 되었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보게 됐다. 그리고 댓글이 달렸다.


의절하세요. 안 그러면 끝까지 당신은 이용당해요.’


온전히 내 입장에서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글로 다 못 적은 얘기들까지 발화하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 그러다가도 엄마 아빠와 같이 웃긴 얘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거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을 때면 양심이 따끔했다. 우리는 꽤 사이가 좋다. 의절? 의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의절하기 위해서 글을 쓴 게 아니다. 나는 인정했다. 내 글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나는 여태까지 우리가 좋은 사이인 걸 글로 풀어내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달면 씹지도 않고 냉큼 삼켜버린다. 쓰면 냅다 뱉어 버리는 이기적인 딸이다. 지겨웠을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들추고 상처 주는 말만 골라서 지껄이는 딸의 입을 보면서 저걸 내가 낳은 게 맞다 의심했을 것이다. “언제적 얘기를 아직도 하냐?” 겉으로는 능숙하게 대처했을지라도 끝나지 않는 돌림노래를 모질게 끊어 내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담겨있다는 걸 안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그리게 되는 도돌이표를 엄마가 보기 전에 빠르게 지워버린다. 이왕 같이 살게 된 거 유쾌하게 살고 싶고, 앞으로 내가 쓰게 될 글도 상처로 점철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우리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누군가의 조언처럼 인연을 끊고 살 것이 아니라면 사이좋게 지내야지. 얼굴을 부대끼며 사는 관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때도 있지만.



얼마 전 네명이서만 가오리찜을 먹으러 갔는데, 콩나물국이 한 그릇만 나왔다. 엄마는 남동생에게 어젯밤 술을 마셨으니 해장하라며 콩나물국을 밀어줬다. 엄마, 나도 어제 같이 소주 마셨잖아. 왜 쟤한테만 줘? 쏘아붙였다. 앗, 엄마의 실수. 엄마는 미안하다며 콩나물국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놨고, 남동생은 또 시작이라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아빠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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