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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Oct 10. 2022

평범한 주말

운전연수와 라면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면허는 오래 전에 땄는데 왜 자차도 없는 지금에서야 다시 운전 연수를 받냐고 물어보신다면, 할말 없음. 아빠는 돈낭비라고 했지만 나는 오랜 버킷리스트를 중 하나를 이뤄내려는 첫 삽을 뜬 셈이라고 생각해. 진정한 어른이란 제주도에서 혼자 렌트카를 끌고 여기 저기 정처 없이 흘러다니는 것 아니겠어. 비록 자가용은 없지만 10시간 운전 연수할 31만원과 친구와 함께 가는 2박 3일 제주도 여행 경비는 있는 어른으로 자란 나는 일요일 아침 9시부터 운전을 익히고 단련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바쁘다 바빠. 주말에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서본적이 없어 어색하다.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고 옆집에 있는 바나나로 아침을 먹으려고 문을 열었더니 다 먹어 치웠단다. 그렇게 빈속으로 집을 나선다. 


4일 동안 2시간 30분씩 나눠서 진행되는 운전 연수. 강사가 집 앞까지 와준다. 어제 기본적인 차량 조작법과 주행 시 습관을 몸에 익혔다면 둘째 날인 오늘은 유턴, 좌회전, 우회전, 차선 바꾸기 연습니다. 운전 연수 강사는 친구의 언니가 무난하게 받았다는 사람을 소개 받았다. 근데 그 사람이 아니다. 추천 강사는 스케줄이 안된다고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주더라고. 바쁜 일개미인 나는 어떻게 해서든 수업 일정을 맞춰주려는 강사1에 노력에 감명 받은 건 아니고, 다른 학원 알아보기 귀찮아서 얼떨결에 추천인의 추천인 격인 강사2에게 운전 연수를 받게 되었지. 


여러 가지 이유로 여자 강사님한테 운전 연수를 받고 싶었는데, 아까 말했지. 내가 바쁜 일개미라 여행 일정에 너무 급박하게 운전 연수 일정을 알아보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사2는 조수석에 앉아 내가 브레이크를 못 밟았을 때, 대신 브레이크를 눌러줄 막대기를 왼쪽 손에 들고 쉴틈없이 내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말해줬다. 엑셀 밟고, 떼고, 계속 밟을 필요는 없거든. 자 계속 계속 갑니다.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자 브레이크, 줄이고. 아이 내리막길에는 발이 브레이크로 와 있어야지. 가야지, 밟아야지, 자 오른쪽으로 깜빡이 키고. 가야지 가야지 속도 내줘야지. 차선을 변경할 때는 핸들을 1도만 살짝 틀고, 엑셀 밟아 줘야지. 


강사2는 나 정도면 침착하게 운전을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젊어서 그런 거라고도 했다. 나이가 있으면 운전 익히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애를 낳은 여자는 몸의 감각이 둔해져서 운전 연수를 더 오랜 시간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여사들이 운전을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 분명히 내 운전 실력은 늘고 있는데, 대놓고 기분이 더럽다. 전체 교통사고의 가해운전자 성별은 남성이 훨씬 많은데 왜 자꾸 김여사를 들먹이냐고 쏘아 붙이기엔 좁은 차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그런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 걸로 혼자 합의한다. 공식적인 교육 시간은 2시간 30분이지만 1시간 당 쉬는 시간 10분,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10분 더 빨리 끝나 실제 운전 연수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집 앞이 아닌 도서관 근처에서 내린다. 


소설 2권과 인터뷰집 1권. 지난주 주말에 빌린 책을 전부 읽었다. 이번 주는 야근을 적게 해서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만나러 도서관에 왔다. 또 도서관에 없는 신간 구매를 신청하면 신청자가 가장 먼저 새책을 읽을 수 있는데, 이번달에 신청해둔 책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안 올 수 없었다. 열람실 자리 한 곳에 가방과 아침에 내려온 텀블러를 두고 책 사냥에 나선다. 주로 소설과 에세이를 읽는 탓에 이제 몇몇 작가의 책 위치를 외웠지만 내가 찾는 책을 발견하기까지는 항상 해맨다. 읽고 싶은 책을 몽땅 빌리기에는 대여 기간인 2주 동안 다 읽지도 못할 뿐더러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중에 솎아내기로 한다. 책을 한가득 자리로 가지고와 엄마한테 문자를 보낸다.  


“점심 나가서 먹을 거야? 그럼 내가 식당으로 가고.” 


나는 가끔 간단한 외식을 주최한다. 모든 밥을 옆집에서 얻어 먹고 있는 상황을 탈 없이 계속 유지하려면 이까짓 외식은 일도 아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냉모밀과 아빠가 즐겨먹는 돈까스를 다 잘하는 집을 알아뒀다. 한 시간 뒤 식당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쌓여 있는 책들을 읽어본다. 책 두께와 작가를 고루 살펴 본 후 저번주와 마찬가지로 소설 2권과 인터뷰집 1권을 대출한 후 마을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향한다. 


멀리서 따로 떨어져 걸어오는 엄마와 아빠가 보인다. 상대적으로 아빠보다 걸음이 빠른 엄마라서 그렇다.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항상 몇 걸음 뒤에 떨어져 오는 아빠지만 결국 둘은 같은 곳에 도착해 돈까스를 먹는다. 냉우동과 치즈 돈까스를 주문해서 엄마가 남긴 음식들까지 아빠와 내가 푸지게 먹고 식당을 나와서는 2차를 간다. 커피다. 아빠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라떼를 소화제 삼아 마신다. 엄마와 나의 뱃고랑에는 더이상 음식을 담을 공간이 없다. 한잔만 테이크 아웃해 벤치가 많은 광장에 앉아 방금 먹은 음식물들이 몸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 오늘 운전 연수는 어땠는지 조잘거리는 내 순서 다음으로 아빠는 아무래도 돈이 아깝다는 소리를 내뱉는다. 질 수 없지. 그러면 차를 한대 사달라는 말로 응수한다. 


그런 대화들이 몇 번이 오가면 커피는 바닥을 보인다. 우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한 20분. 오르막길이 80% 이상이지만 뒤에 따라오는 아빠를 조금씩 기다려주며 비탈진 땅에 빼곡하게 겹처진 보도블럭을 밀어낸다. 다음주에는 청와대 뒷산에 간다느니, 좋다는 칫솔을 인터넷으로 시키라느니 시시콜콜한 계획과 소망들을 공유하고 비웃고 나면 어느새 집이다. 배도 부르고 몸도 움직였고 나른하니 낮잠 한숨 때리면 딱 좋겠다. 그렇게 나는 202호 엄마와 아빠는 201호로 들어가서 한숨 잔다. 


아무래도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저녁 생각이 없다. 아마 옆집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저녁 시간을 한참 지날 때까지 책을 읽다가 유튜브를 켰는데 자꾸 먹방에 눈이 간다. 느끼한 돈까스와 반대되는 매운 것들이 누군가에게 잡아 먹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지켜본다. 아, 이게 무슨 무의미한 시간들인가. 한심해하고 있는 9시 15분.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라면 하나 끓여서 나눠먹자.”

“양치했는데, 아빠 안 먹는데?” 

“응, 아빠는 안먹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응, 지금 와.” 


201호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시에 속내를 내비춘다. 


“엄마 떡국떡 있어?” 

“그럼 있지." 

“그럼 떡라면으로 먹자.”  


떡을 한주먹이나 넣어 국물이 걸죽해진 떡라면과 큰이모가 보내준 오이소박이를 동시에 씹는다. 낮에 먹은 돈까스보다 훨씬 맛있다. 속이 풀어지는 느낌. 야밤에 먹는 라면이 몸에 안 좋은 줄 알아 드는 걱정만큼이나 입맛을 돌게하는 라면. 입가심은 얼음물에 엄마표 매실청을 탄 핸드메이드 초록매실이다. 아빠가 틀어놓은 주말 저녁 TV 프로그램에 나온 지방 명소를 감탄하며 보다가 배부름에 졸음이 밀려오고 나서야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양치를 하고 도서관에 서 빌려온 책을 정리한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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