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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Dec 18. 2021

좁아터진 거실에서 개인 요가 레슨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도피였는지도 모릅니다. 일 말고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갑작스레 생겨버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진정한 나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나는 요가 매트 하나를 깔면 자투리 공간만 남은 좁아터진 거실에서 개인 요가 레슨을 받았습니다.


내가 사는 202호 거실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하나가 일렬로 덜렁 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엌과 거실이 합쳐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201호로 건너가서 밥을 얻어먹고 있어서 내겐 부엌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프라이팬 하나 없어요. 오래전에 설치해 둔 가스레인지는 그저 장식입니다.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 옆으로는 정사각형의 2인용 식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그냥 아무 가구도 두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건조대를 펼쳐서 빨래를 널곤 하지만 평소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이 텅 비워둡니다. 그저 귀찮아서겠지요.


그동안 나는 왜 다니는지 모르는 회사 사무실에 그래도 내 자리라고 마련해준 책상 앞으로 매일 아침 성실하게도 꾸역꾸역 나를 앉혀 놓았습니다. 그 와중에 착실하게 일은 또 다 해. 의미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죠. 퇴근 후에는 어떻게 하면 나를 잘 꾸며내서 내 시간을 값비싸게 다른 회사에 팔아넘길까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사라졌습니다. 이직에 성공한 거죠.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퇴근하면 공허해지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요가를 다시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습니다. 뭔가 제대로 해내고 싶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요가원에 출석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 유튜브를 켜놓고 요가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안 되는 아사나가 있었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에 요가라고 치면 나오는 그런 어려운 자세들이요. 왜 몇 년을 해도 한 번에 차투랑가가 안 될까. 다리가 180도로 안 찢어질까. 머리 서기를 제대로 하고 싶은데… 치트키를 쓰기로 했습니다. 개인 요가 수업을 받기로 결심한 거지요. 물론 가격이 너무 비싸면 그냥 아쉬워하고 말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저렴했습니다. 물론 요가원 등록비보다는 비쌌는데요. 저는 숨고에서 알아봤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받는다고 치면 조금 비싼 요가원 한 달 등록비 정도였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던 터라 선생님과 시간을 맞추는 일도 수월했습니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 6시 개인 요가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요가 수업을 받는다니! 너무 긴장됐어요. 집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이 무슨 이딴 좁은 집에서 개인 레슨을 받냐며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프로였습니다. 거실과 안방을 둘러보더니 거실에서 하면 된다고 바로 자리를 잡아주셨어요.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나요? 평소에 얼마나 자주 수련을 하고 있나요? 왜 개인 레슨을 받아요?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첫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업은 아베다 차크라로 추정되고 감귤향이 나는 스프레이를 거실 허공에 뿌리고 간단한 명상으로 시작합니다. 


매주 도전하고 싶은 자세를 미리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선생님은 그 아사나의 원리와 힘이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연습해야 할 자세를 알려주셨죠. 근데 그거 아세요? 원리를 안다고 해서요. 개인 요가 수업을 한다고 해서요. 내 몸이 바로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요.


왕비둘기 자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리의 힘이 중요하고 손으로 다리를 잡아 어깨를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날개뼈를 있는 힘껏 아래로 내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이론은 알게 됐지만요. 제 몸이 한 번의 수업만으로는 복잡한 원리들을 소화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자세들도 마찬가지였죠.


깊어진 실패를 맛본 후 아쉬워 하는 마음을 안고서 대자로 누워서 호흡을 탐색하는 사바아사나 시간을 갖습니다. 선생님이 귀 뒤와 어깨에 허브 오일을 발라 차분했던 목소리만큼이나 천천히 마사지해줍니다. 그리고 마주 앉아 오늘 수업의 총체적인 회고를 나눕니다. 


위드코로나라고 불리는 단계적 일상 회복 단계에 들어서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면서 개인 요가 수업을 멈추게 됐지만요. 더는 멋진 자세를 빨리 완성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지는 않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배를 쑥 집어넣어 힘을 주고 가슴을 끌어 올려줍니다. 내쉬는 숨에 들어 올린 가슴은 그대로 유지하고 어깨와 날개뼈를 아래로 끌어당깁니다. 호흡을 반복, 반복, 반복하는 게 요가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지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더 넓은 집에서 아사나를 완성하기 위함이 아닌 꾸준한 수련을 위해서 개인 레슨을 받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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