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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Oct 12. 2022

식탁 앵콜쇼

앵콜! 앵콜!

아빠가 오래전부터 단독으로 진행해온 앵콜쇼가 있다. 쇼의 주인공은 아빠. 출연진은 가족. 관객은 우리 모두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이 쇼의 앵콜을 즐기기 시작했다.


장면 하나. 쇼의 공식적인 시작은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주말 저녁. 온 가족이라고 해봤자 요즘은 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 셋이 전부다. 메인 메뉴는 주로 한우 불고기, 보쌈, 제육볶음 같은 고기반찬이 준비된다. 엄마가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접시에 담아낸 고기를 식탁 한 가운데 내려놓으면 우리는 손뼉을 치고는 허겁지겁 집어삼킨다. 엄마가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치면, 그다음 순서로 아빠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남은 거 너 다 먹어라."


부족한 게 없나 살피느라 식탁에 계속 앉아있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밥 한 공기를 비워내고 저 한마디를 남긴 후 안방으로 들어간다. 남아있는 고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쑤셔서 넣으면 다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양이지만, 몇 번 집어 먹은 뒤 다시 아빠를 부른다.


“아 너무 많아. 배불러. 다 못 먹어 이거 어떻게 해"


TV를 보고 있던 아빠가 다시 등장해 젓가락을 다시 든다. 등장하기까지 몇 번의 거절을 반복하지만, 그래도 다시 부른다. 어느 날은 밥도 한 그릇 추가해 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중간에 잠시 식사를 멈췄던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먹성. 흐름이 쉽게 끊기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그런 성실하게 앵콜쇼를 펼치는 아빠를 보며 식탁에 계속 머물러 있다. 쇼가 길어지는 날에는 묻기도 한다. 대체 왜 다시 먹을 거면서 안방에 들어가는 거야? 앉은 자리에서 다 먹으면 좋잖아. 아빠는 한 번도 답을 해준 적이 없다. 


장면 둘. 엄마가 간식을 준비한다. 거창한 건 아니고 주로 과일이나 고구마, 계란 후라이, 토스트 어쩌다 국수다. 먹을 사람? 엄마가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해야 한다. 긍정이든 아니든. 아빠는 당연히 안 먹겠다고 말한다. 한 번 더 묻는다. 그래도 안 먹는단다. 다시 한번 물어본다. 응 줘봐. 그제야 먹겠다는 아빠.  둘은 아직도 연애를 하는 건가? 그렇다기엔 밀당이 항상 같은 패턴이라 지겨운데, 둘은 항상 1절, 2절, 3절은 우습게 지속해서 티키타카를 주고받는다. 


접시에 담긴 간식을 배식 받는다. 역시나 생각했던 맛, 맛있는 맛이다. 슬며시 아빠를 본다. 여러 번 권하니 마지못해 먹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간식에 진심이다. 엄마가 리필을 제안한다. 만들었던 간식을 다시 만드는 일은 귀찮고 수고스럽기 때문에 빨리 대답해야 한다. 아빠도 그걸 안다. 화끈한 답변이 귀에 꽂힌다.


항상 같은 패턴을 보이는 건 아니다. 경상도 말로 ‘시그러운’ 음식은 백번을 물어도 안 먹는단다. 안 먹는다고 하기에 여느 때처럼 여러 번 권했는데, 정말 단호하게 안 먹겠다고 해서 알게 됐다. 그런데도 계속 물어본다. 양치기 소년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세 번째 장면은 식당에서 시작된다. 주요 무대는 단일 메뉴가 아닌, 여러 메뉴를 나눠먹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고깃집, 중국집이나 파스타 집을 예로 들을 수 있겠다. 메뉴를 고르기 전 선전포고를 하는 아빠. 조금만 먹는단다. 피자만 먹고 파스타는 한 젓가락만 먹는다고 조금만 시키란다. 엄마와 나는 피자 하나와 파스타 두 그릇을 시킨다. 셋이 갔으니 삼 인분을 시켜야지. 고르곤졸라 피자를 두 조각씩 꿀에 찍어 먹고 파스타가 나왔다. 아빠가 한 젓가락을 집어 앞접시에 던다.


“한 젓가락만 먹는다고 했지? 더 먹으면 알아서 해"


아빠 앞접시는 순식간에 비워진다. 나는 사냥감을 눈앞에 둔 사자처럼 신경을 곤두세운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파스타로 손이 향하는 아빠. 그때의 나는 음주 단속하는 경찰과도 같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언행 불일치를 지적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먹는 사람은 역시 아빠다. 파스타 소스까지 박박 긁어먹는 아빠. 이제는 진짜 귀여울 지경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쇼의 기획 의도를 추론해 볼까? 아빠의 앵콜쇼는 나와 동생이 잘 먹기 시작했던 시절부터 계속되고 있다. 자식들이 먹는 게 부족할까 봐 아빠는 배가 다 차지도 않았는데 식사를 멈추고 들어갔다. 언제부터 그런 아빠를 다시 식탁으로 불러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다가 쇼가 지겨워질 무렵 기획 의도를 파악하게 됐다. 식탁 위에 남겨진 음식들을 모조리 해치우기에는 물려받은 눈치가 있었고 남은 음식들을 다 흡입해내는 아빠를 알고 있기에 서로를 속고 속이는 앵콜쇼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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