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
아빠는 일주일도 안 되는 입원 기간에 성실한 환자 역할을 정직하게 수행해 무사히 퇴원했다. 담당 의사는 아빠 왼쪽 뇌의 작은 혈관이 막혔다고 진단했다. 골든타임은 조금 지났지만, 약물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소 지병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건강은 사실 너무 돌보지 않아 속이 다 곪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안 좋았던 상태였다. 우리 아빠는 40년이 넘게 흡연해온 애연가였고, 그 흔한 혈압 관리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 의사는 뇌경색의 원인을 담배와 고혈압이라고 판단했다. 회진을 돌 때마다 꼭 금연해야 한다고 못 박아 뒀다.
“건강하니까 담배도 피우는 거다."
자신하던 아빠는 그날부로 금연을 선언하더니 성공에 이르렀다. 아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아빠의 금연을 믿을 수가 없다. 내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아빠는 항상 흡연자였다. 아빠에게 쓴 편지는 제발 담배를 끊으라는 당부로 마무리되었고 정치적 논쟁이 내기로 이어질 때 내건 조건도 항상 금연이었다. 가족들의 숱한 노력 끝에도 아빠는 담배를 끊지 못하다 담배값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던 해 처음으로 금연을 시도했지만, 곧장 실패하고 말았다.
금연 성공 신화. 하루에도 몇 번씩 흡연하러 현관문을 열던 아빠의 움직임이 사라지자 엄마는 이제야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몇십 년간 담배에 쪄 들었던 특유의 채취가 사라지고 어딜 가나 담배부터 입에 물고 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간접흡연해야 했던 일도 사라졌다. 몰래 시킨 택배를 들키지 않은 것도 좋다. 그전에는 집 안과 밖을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아빠에게 단숨에 택배를 들키고 무엇을 얼마에 샀는지 취조당했어야 했다. 누구보다 아빠의 금연을 반긴 건 항상 옆에 붙어 다니는 엄마다. 비록 눈을 흘기면서도 각종 쓰레기와 분리수거 처리를 떠넘기던 작은 기쁨은 사라졌지만, 그까짓 것 아무나 내다 버리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건강하니까 담배를 피운다는 말이 맞나 봐"라고 아빠를 향한 믿음을 보냈다. 이래서 부부인가 봐.
다행히도 아빠는 퇴원하고 제사까지 지내고선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아빠는 괜찮다고 말했다. 출근해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힘이 없다고 했다. 평생 못 먹던 보약도 지어먹고 흑염소탕을 먹었더니 힘이 나더라며 아직도 매주 흑염소를 먹으러 다녔다.
치료는 약물로만 진행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혈전을 녹이는 약, 고혈압을 조절하는 약 등을 하루 세 번 먹다가 이제 하루에 한 번으로 줄었다. 약 때문인지 어디에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잘 들고 모기에 물려 긁기만 해도 피가 나기 시작해 잘 멈추지 않는다. 몸에 힘도 없다. 원래도 느렸던 걸음이 더 느려진 것 같기도 하고 원체 적은 말수로 가끔 말하지만, 발음도 그 전보다는 뭉뚝해진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임플란트해야겠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다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기로 결심한 유명 소설들의 주인공처럼 아빠도 새로운 삶을 맞이했다. 정말이지 속된 말로 죽다 살아난 아빠는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기로 다짐한다. 원래 치아가 좋지 않아 어린 나이부터 고생이 심했던 아빠는 치아 전면 대수술을 결심한다. 무려 차 한 대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결심이었다.
아빠는 치과를 고르는 데 신중을 기했다. 의사가 TV에 나올 정도로 저명한 사람이고 강남 한복판에 병원을 세울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오가는 치과로 결정했다. 임플란트를 꼭 지금 해야 하냐고 묻는 엄마에게 아빠는 꼭 지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플란트를 심기 전에 뼈이식 수술을 먼저 해야 하는 터라 먹고 있는 뇌경색약을 중단해야 한다. 혹여나 뇌혈관이 다시 막힐까 봐 피가 잘 도는 약을 먹고 있었는데, 뼈이식 수술을 하려면 피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엄마는 마음이 안 좋았다. 돈도 많이 들고, 고생스럽고. 그러다 아빠가 회사에 못 다니면 어떻게 해. 어떤 상황에서도 끼니는 걱정되는 법이다. 아빠는 단 하루 휴가를 내고 수술을 받았다. 우와. 담배 파이프를 너무 자주 들이마신 탓인지 볼이 움푹 파이고 말라서 고구마 같았던 아빠 얼굴이 늙은 호박처럼 부풀어 올랐다. 치과 실장님이 일주일 정도는 얼굴이 엄청나게 붓는다고 놀라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엄마와 나는 아빠 잘 먹이기 대작전에 들어갔다. 보통 임플란트를 아빠처럼 많이 심으면 잘 못 먹어서 살이 쑥쑥 빠진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뇌경색 때문에 기력이 없는데, 살까지 빠지면 안 될 일이었다. 본죽에서 환자들을 위해 아주 잘게 갈아서 죽을 판다는 사실은 아는가? 정말 애용했다. 밥과 추어탕을 믹서에 잘게 갈아먹는 것도 임플란트 치료 중 좋은 끼니가 된다.
뼈이식 수술 이후 6개월간은 가짜 치아를 끼고 살아야 했다. 이식한 뼈가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거든. 가짜 치아를 끼면 음식 맛이 제대로 안 느껴진다고 한다. 가짜 치아를 지지하는 것들이 입천장을 다 먹고 있어서 그렇다나. 6개월이 지나고 임플란트를 심은 뒤에는 제대로 음식 씹을 수 있다. 아빠는 맛을 느낄 수 있고 꼭꼭 씹어 먹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앓던 이를 빼고 새 이를 얻은 아이처럼 맑게 웃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