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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란 Apr 22. 2023

혼자 서울살이 시작합니다

출퇴근 20분

경기도민으로 평생을 살았다. 땅 아래 길을 파서 이동하는 쥐처럼 서울특별시의 경계를 하루에 꼬박 두 번씩 넘나들었다. 짧으면 두 시간, 길면 세 시간을 어두침침한 지하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의 숨결을 삼켜가며. 서울에 집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이것은 나의 숙명. 지방에서 상경한 애들은 비싼 월세를 내고 산다고. 그나마 다행이다.


정겨운 나의 집. 혼자 산다고 할 수 있지만서도 옆집에 엄마와 아빠가 살고 있는 터라 밥걱정, 청소 걱정, 빨래 걱정은 무슨 할 줄도 몰랐다. 서울은 눈을 떠 코 베어 가는 곳. 귀갓길은 대부분 진부하고 고생스럽지만 서둘러 서울을 벗어나곤 했다. 마을버스를 내리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애매한 거리가 밉다가도 마음이 풀리곤 했다.


서울 가서 살자! 수없이 속으로만 다짐해 온 말을 실천하게 된 이유는? 더 이상 엄마가 옆집에 살지 않기 때문이지. 경기도민의 삶을 여러 가지 자기 합리화로 버무려봤지만 쉽사리 엄마 옆집을 벗어나 서울에 사는 건 어려운 일이였다. 경기도보다 평수는 작아지는 주제에 집값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엄마도 없잖아!


엄마는 모임에서 집 얘기만 나오면 화딱지가 난다고 했다. 다 있는 아파트 나만 없다고. 아빠는 대출 한 푼 받지 않고 집을 사려는 속셈인지, 기다리라는 말만하고 이사 한번 가지 않고 그렇게 계속 같은 집에서 살았다. 보다 못한 엄마는 아파트 청약을 넣었고 몇 번 고배를 마신 뒤 당첨됐다.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보다 훨씬 서울과 멀리 떨어진 아파트. 방 3개에 화장실 2개. 가장 햇빛이 잘 들어오는 동 13층이다.


회사도 멀고, 엄마도 없는 202호에서 나 혼자 계속 사는 건 도저히 단가가 안 맞는다. 엄마와 아빠는 신축 아파트에 같이 가서 살자고 꼬드겼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길바닥에 시간을 버릴 자신이 없었다. 나도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자며 항상 타는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소형 평수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명인가 두 명 빼고 이왕이면 서울 가서 살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나와 10년을 같이 살다 결혼하면서 서울에 입성한 사촌 언니는 정말이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내가 살 서울집을 찾아냈다. 언니가 사는 동네, 언니가 계약한 부동산 공인중개사와 정말 우여곡절 끝에 구해냈다. 마음에 드는 집도 별로 없는데, 괜찮다 싶은 집은 뒤돌아서면 계약이 완료되는 바람에 하마터면 구해줘 홈즈에 출연할 뻔.


서울 우리 집은 1.5룸에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이다. 회사까지 버스 타면 20 만에 도착하고, 걸어가면 35분이 걸린다. 도처에 카페와 음식점이 널렸고, 대형마트는 멀지만 5분만 걸어가면 시장이 있다.   건너에 언니 집이 있어서 여러 도움을 받을  있다. 여기까지가 장점. 집이 훨씬 좁아져서 주방과 세탁실과 거실이 한곳에 묶여있어 약간 숨이 막히고 엄마의 손길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점이 가장  공포다.


계약, 대출, 이사. 이렇게 나열하니까 단순한데,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서울 입성 프로세스. 이제 정말 나 혼자 산다. 잘 살 수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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