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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모금에] 정성이 담긴 시간, 전통음료 식혜

맑은 효소밥물식혜색

by 컬러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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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눌러도 돼요? 식혜가 뭐지?”


무심코 지나치던 자판기 앞에서 아이가 멈춰 섰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캔 하나. 노란 국물 속 하얀 밥알이 둥둥 떠 있는 식혜였습니다.

아이는 낯선 듯 물었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정성과 시간, 그리고 사랑이 만든 맛인데 이렇게 쉽게 마실 수 있구나..


어릴 적 할머니는 명절이 다가오면 엿기름을 고르고, 솥에 밥을 짓고, 시간마다 국물을 들여다보며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나는 마루에 앉아 그 노란 국물을 바라보다가,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에 취하곤 했지요.

그 따뜻한 기억이 자판기 앞에서 아이의 눈빛과 겹쳐졌습니다.

식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 은은한 누르스름한 빛입니다.

유리잔을 통해 비쳐오는 색은 마치 겨울 볕 아래 쌀밥을 말리는 고요한 마루처럼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이 색은 세대를 이어온 한국인의 정성과 기다림의 시간까지 녹아 있는 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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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엿기름과 물을 섞고 체에 걸러 밥과 함께 보온밥솥이나 전통 솥에 넣고 서서히 발효시키기 시작하면, 국물은 탁하고 옅은 베이지빛을 띱니다. 시간이 흐르며 엿기름의 효소가 밥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게 되고, 이때 국물은 점점 황금빛을 띠는 맑은 색으로 변화합니다. 밥알이 동동 떠오를 때쯤이면, 색은 마치 햇살이 스며든 듯한 따스한 노란빛으로 완성됩니다.


이 아름다운 색의 변화는 ‘효소 작용’이라는 과학적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식혜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엿기름(보리 엿기름)은 다량의 효소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중 아밀라아제(Amylase)라는 효소가 전분을 말토스라는 당으로 분해하게 되지요. 이 과정은 온도와 시간이 적절히 맞아야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색도 변해갑니다.

또한 전분이 당으로 바뀌며 투명도가 높아지고, 여기에 엿기름 안에 포함된 미량의 폴리페놀 계열 성분이 산화되면서 약간의 황색을 더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보는 식혜 특유의 누르스름한 빛을 만들어냅니다. 일부 식혜는 생강을 넣기도 하는데, 생강의 성분 역시 색에 미묘한 영향을 주며 더욱 깊은 황금빛으로 발전시킵니다.


식혜는 기다림의 색, 정성의 색, 그리고 공존의 색입니다.

잔잔한 단맛 속에 담긴 따뜻한 한국의 미학, 그리고 함께 나누는 마음의 색이지요.

요즘엔 다양한 음료들이 자판기 버튼 하나로 쉽게 선택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식혜 한 캔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 음료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야.

누군가 정성을 다해 시간을 들여 만든 거란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식혜는 여전히 우리에게

천천히, 따뜻하게 살아가는 법을 일깨워줍니다.


오늘 네 마음은 무슨 색인가요?




*이미지 및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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