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권리를 보장하는 도시
“빛은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고, 색은 그 공간의 시간을 말한다.”
Louis Kahn, 미국
세계 지역색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장 필립(Jean-Philippe Lenclos, 프랑스)은 색채학과 건축색채디자인을 전공하였다. Géographie de la Couleur (색의 지리학)으로 지역색 연구의 ‘정범(定範)’이 된 학자로 그와 그의 아내 도미니크 렌클로(Dominique Lenclos)는 25년 동안 전 세계 30여 나라의 지역색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팀을 운영했다. 그들이 정의한 지역색 구성 요소에는 풍경색, 재료색, 기후색, 문화색, 전통색으로 구분하였다. 1년 동안 4계절을 관찰하고 24시간을 지속적으로 관찰했을 때 제일 많이 보이는 지역색은 주황색(YR)이었다. 황인족인 우리나라가 제일 기준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 연구는 한국 지자체 지역색 연구(부산·전주·경기 등)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으므로 제일 기억나는 분이다. 지역에서의 색은 “색은 지역의 지리·문화·기후의 총합이다.”라고 말하면서 기록을 아끼지 않았다.
컬러마케팅 도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컬러마케팅은 미적 선택이 아니라 도시 정체성·경제·관광·안전·감성을 모두 움직이는 전략이다. “색은 도시의 말투이며, 도시가 사람에게 건네는 첫 번째 인사다.”
핵심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색은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색을 일관되게 쓰면 도시 기억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둘째, 색은 관광 경제와 직결된다. 셋째, 색은 도시 브랜드에서 가장 싸고 가장 강한 전략 자원이다. 넷째, 색채의 통일성은 도시 마케팅의 필수 요소가 된다.
삿포로의 겨울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도시를 덮는 순간, 마치 한 장의 새하얀 종이가 펼쳐지는 것처럼 도시는 완전히 새로운 표정을 갖게 된다. 어느 해 겨울, 삿포로의 도시 기획자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 도시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아무도 망설이지 않았고 말한다.
“눈 내릴 때요. 온 세상이 흰색이 되는 그 순간이요.”
그 답은 곧 도시의 전략이 되었다. 삿포로는 ‘화이트(White City)’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선언했다.
도시의 약 절반을 뒤덮는 자연 현상이야말로 삿포로만의 가장 순수한 브랜드라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겨울이 되면, 삿포로는 마치 거대한 빛의 들판이 된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수백만 개의 조명은 투명한 얼음 위에 반사되어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이라는 겨울 축제를 완성한다. 그 축제를 보기 위해 매년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곳은 겨울이 아니라, 겨울이 만든 예술이다.” 심지어 삿포로의 기념품, 포스터, 시정 홍보물까지 모두 부드러운 흰색과 파스텔 톤을 기본으로 삼았다. 흰색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도시는 깨끗하고 고요하며, 겨울의 기운 속에서도 따뜻한 호흡을 품고 있는 도시가 되었다. 삿포로의 흰색은 자연이 준 색이지만, 그 색을 도시의 이야기로 만든 건 사람들의 선택이었다. 눈이 내릴 때마다 새로 칠해지는 도시, 그 변화 속에서 삿포로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완성했다.
그리고 어느새 사람들은 이 도시를 이렇게 부른다. 지형과 기후가 만들어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겨울이 시작되는 곳, 하얀 도시 삿포로.” 로 남는다.
색 하나가 도시를 바꾸고, 도시 하나가 계절을 이야기하게 된 순간이었다. 삿포로뿐만 아니라 퀘백시, 하얼빈, 헬싱키의 겨울도시들도 비슷한 색을 가지고 있지만 고유의 문화는 다르다.
산토리니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말보다 감탄사부터 먼저 내뱉는다.
그리고는 종종 같은 말을 한다.
“여긴… 색이 먼저 반겨주는 도시네요.”
산토리니의 골목을 걷다 보면, 눈부실 만큼 하얀 집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위에 얹힌 푸른 돔과 파란 창문,
바다를 닮은 가드레일의 색이 어느 순간 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그림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색들은 한때 이 섬의 집들은 해풍과 햇빛을 견디기 위해 하얀 석회로 칠해졌다. 강한 태양 아래 눈처럼 빛나는 하얀색은 열을 반사하며 집을 시원하게 만드는 지혜의 색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실용적인 선택이 ‘산토리니의 얼굴’이 되기 시작했다.
푸른색은 어디서 왔을까? 섬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돛, 창틀, 교회 돔을 바다를 부르는 파란색으로 칠하곤 했다. 바다는 그들의 삶이었고, 그 삶을 닮은 색이 자연스럽게 건축에 스며든 것이다. 하얀 집 위에 올려진 작은 파란색 하나가 섬 전체를 상징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기억한다. 산토리니는 보는 순간 알아볼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색채 브랜드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색채가 관광 사진 속 장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토리니의 색은 도시의 경제 그 자체가 되었고, 포스터, 기념품, 호텔까지 화이트와 블루가 도시의 공식 언어가 되었다. 세계 여러 곳곳에서 산토리니를 따라 만든 마을들도 생겨나니 말이다.
해가 질 때, 하얀 벽은 분홍빛을 머금고 푸른 돔 위로 황금빛이 내려앉는다. 그 순간, 사진 속에서만 보던 산토리니의 색은 실제로 숨 쉬고 있었다. 산토리니가 알려준 것은 아주 단순한 진실이다. 색은 도시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을 말하는 방식이라고. 그리고 이 섬은 그 두 가지 색만으로 전 세계 누구에게나 산토리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성공했다. 2만여 명이 살고 매년 340만 명이 찾는 곳이지만 지금은 200건이 넘는 지진 소식에 휴교령 및 대피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 북부에는 ‘붉은 마을(Red Brick Towns)’이라고 불리는 도시들이 있다. 뤼벡(Lübeck), 로스토크(Rostock), 비스마르(Wismar), 슈트랄준트(Stralsund)…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모두 짙은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도시 경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중세 한자(Hanse) 동맹의 중심지였고, 석재가 귀한 북유럽 해안에서 근처 점토로 만든 붉은 벽돌은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전쟁 뒤에도 다시 지을 수 있는 회복의 재료였다.
독일의 붉은 마을이 생겨난 역사적 이유 석재 부족에서 붉은 벽돌의 발달되었다. 북독일 해안은 석회암·화강암이 적어 인근 점토를 구워 만든 붉은 벽돌 Backstein이 가장 흔한 건축 재료였다. 중세 한자도시의 경제 중심에서 붉은 벽돌 고딕의 탄생했다. 뤼벡의 마르크트 광장을 중심으로 붉은 벽돌은 문화적 정체성이 되었고
‘브릭 고딕(Backsteingotik)’이라는 독자적 건축양식이 생겨났다. 전쟁의 파괴에서 붉은 벽돌을 통한 복원을 하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도시들이 폭격으로 붕괴되었지만 전쟁 후 복구 과정에서 주민들은 “붉은 벽돌의 도시 정체성을 되살리자”는 공동의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오늘날 독일 북부 도시들은 과거의 상처 위에 다시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기억의 도시가 되었다. 붉은 벽돌은 전쟁과 회복이 남긴 정체성의 색이었다.
한국 남해군 미조면 언덕에도 바다와 맞닿은 붉은 지붕들이 벤치처럼 이어져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남해 독일마을”이라 부른다. 1960–70년대, 한국 간호사와 광부들은 경제 개발을 위해 독일로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수십 년을 일하며 독일 문화와 생활방식, 그리고 ‘붉은 벽돌·붉은 지붕’ 풍경을 몸에 익혔다. 세월이 흐르고 귀국한 사람들이 “우리도 우리만의 고향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을 때 남해군은 귀향자들을 위해 터를 마련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독일식 붉은 지붕과 밝은 파스텔 벽면을 선택했다.
그 붉은 지붕은 “독일에 대한 그리움”이자 “고된 노동의 역사”이자 “바다 건너 삶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남해 독일마을의 붉은 지붕들은 파견 노동자 가족들의 기억과 존엄을 건축한 공간이다. 독일 북부의 붉은 벽돌 도시들과 한국 남해의 붉은 지붕 마을은 서로 다른 대륙에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떤 붉은색은 단지 색이 아니라, 그 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어릴 적 여행 갔을 때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인데 잊히지 않는다.
벌써 1년, 작년 11월에 쓴 글이다. 서울이 도시를 색으로 마케팅하는 글.
우리나라의 계획도시를 제외하고는 어느 도시라도 매우 다이내믹한 골목문화가 숨어있다. 수백 년의 왕도(王都) 시절을 지나 전쟁과 재건을 통과하고 세계적 메가시티로 성장하는 동안 이 도시는 마치 지층처럼 수많은 색을 켜켜이 쌓아 왔다. 그래서 서울의 컬러마케팅은 다른 도시처럼 단색을 브랜드로 내세우지 않는다. 서울은 역사가 만든 색, 문화가 심어둔 색, 사람이 움직이며 남긴 색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다층색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랜드마크가 된 건물에 빛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 매우 고도화된 디자인 기술을 활용한다. IT강국이 확실하다.
서울은 오랫동안 ‘회색의 도시’로 불렸다. 아파트 단지의 대칭된 벽면, 무채색의 도로, 유리와 금속이 반짝이는 빌딩 숲. 그러나 도시의 겉을 걷어내면, 그 아래에는 수천 년의 시간과 수백만 시민의 감정이 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색의 지층이 존재한다. 서울은 최근 이 “숨은 색”을 도시 브랜드로 다시 꺼내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컬러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있다. 즉, 도시가 가진 고유색을 찾아내고 그 색을 경험·문화·브랜드로 재해석하는 시도다.
2020년, 서울시는 공공건물·공공시설에 대해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을 의무화하는 “Comprehensive Plan of Universal Design (2020–2024)”을 수립했다. 기존 프로젝트 단위 적용에서 벗어나 행정 전체와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UD = 기본 설계’라는 인식을 정착시키려고 한다. 이 계획에는 전담 조직 설치, 성공 모델 개발과 축적, 제도 정비와 사회적 확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시민의 권리로서의 공공설계”라는 큰 전환점이다.
서울의 색은 도시의 시간, 사람의 감정, 사회의 움직임을 담은 큰 이야기다. 서울 컬러 마케팅의 핵심은 바로 그 변화와 다층성에 있다. 곧 2026년 서울 색이 발표될 예정이다. 기대된다.
공평하게 보이는, 보기 쉬운 색
사람의 시력, 나이, 문화적 배경,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색의 역할이다. 즉, 색은 공공성을 가시화하는 첫 번째 언어다.
런던 지하철을 처음 이용하는 사람들은 종종 “복잡하다”는 인상을 받지만,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길을 잃지는 않네요.”라고. 그 중심에는 색을 통한 유니버설 디자인 전략이 있다.
런던 지하철은 전 세계 도시 중 가장 일찍, 가장 철저하게 <색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라는 원칙을 받아들였다. 노선을 예쁘게 꾸미기 위함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이동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그 이후 많은 나라들이 벤치마킹하여 비슷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런던은 노선마다 ‘한눈에 구분되는 색’을 부여한 최초의 도시이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즉시 이해되는 신호체계다.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에서 가장 빨리 인지되는 색 대비, 터널·승강장·지하 구조물에서도 명확히 보이는 고명도 컬러, 한 번 학습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심리적 연상 효과 덕분에 언어, 국적,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색만 보고도 도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저시력자·고령층·색각 이상자를 고려한 색 설계하였다. 런던교통공사(TfL)는 노선색 선정에서 저시력자와 색각 이상자의 ‘볼 수 있는 범위’를 분석했다. 그래서 모든 노선 간 색 대비(minimum color contrast ratio)를
국제 UD(유니버설 디자인) 기준 이상으로 배치했다. 단순 RGB 선택이 아니라, 사람의 실제 시지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설계다. 또한 색각 이상자(특히 적·녹 색각 이상)를 위해 패턴, 굵기 변화, 명도 차, 고대비 텍스트를 병기함으로써 “색이 보이지 않아도 정보는 반드시 보이도록” 설계했다. 이것은 유니버설 디자인의 핵심인 중복 정보 디자인(redundant coding)의 대표 사례다.
해리 벡(Harry Beck)이 만든 1933년 런던 지하철 지도는 현대 정보디자인의 시초라고 불린다. 그 지도에서는 복잡한 도시를 단순한 언어로 번역하는 도구였다. 실제 지리와 상관없이 노선 간 관계를 명확히 표현과 ‘지하철은 이동의 네트워크다’라는 개념을 시각화하고 색을 기준으로 도시를 이해하게 만드는 교육적 효과를 주었다. 오늘날 수많은 도시 지하철 시스템이 런던의 컬러 시스템을 표준으로 따라가는 이유다. 색은 이동의 불안을 없애고, 도시를 읽는 능력을 만든다. 사람들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공포에 가깝다. 런던은 색으로 그 불안을 최소화하려 했다.
“빨간색이면 센트럴라인”
“파란색을 따라가면 피카딜리라인”
“검은색은 오버그라운드가 아니다, 베이커로다”
색 하나가 주저함을 없애고, 방향 감각을 잡아주고, 잘못된 선택을 줄여준다.
색은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니라 이동의 공평성을 지키는 공공의 도구가 된다.
이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이렇게 평가된다. “색을 가장 잘 사용한 공공디자인, 그리고 누구도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인권적 디자인.” 색 하나가 도시를 읽는 능력을 만들고, 색 하나가 모두의 이동권을 보호한다.
런던은 증명했다. 도시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바꾸는 기술로 말이다.
스웨덴의 여러 병원은 기억장애 환자를 위한 층별 색채 시스템으로 치매나 기억장애 환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층마다 완전히 다른 색채 체계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1층은 따뜻한 테라코타 계열, 2층은 명확한 그린, 3층은 부드러운 스카이블루, 4층은 고명도의 옐로 이렇게 층 간 색의 차이를 강하게 설정하면 환자들은 숫자나 글자를 읽지 못해도 “나는 파란 층에 있었다”는 감각으로 공간을 기억할 수 있다. 이는 색을 공간의 기억 장치로 활용한 UD(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 모델이다.
스웨덴의 병원에 들어서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조용한 색의 배려’이다. 환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물도록 돕는 치유적 장치이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설계된 유니버설 디자인(UD)의 핵심이다. 스웨덴의 헬스케어 디자인은 한 가지 철학에서 시작된다. “치료는 의료진이 하고, 치유는 환경이 돕는다.” 그래서 병원의 색은 환자의 신체적 조건뿐 아니라 심리적 상태, 인지 능력, 이동 특성까지 세심히 고려하여 결정된다.
휠체어 사용자 동선은 바닥 색으로 안내한다. 스웨덴 병원은 휠체어 이용자의 ‘자율성’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의존하지 않고 혼자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곧 존엄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잡한 사인이 아니라 바닥의 색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동선을 안내한다. 진료실 방향 → 비교적 짙은 톤, 휴게공간 방향 → 밝은 톤, 위험구역은 선명한 경고색으로 휠체어 사용자의 시야 높이에서 가장 잘 보이는 저시선(低視線) 색채 디자인을 반영한 것이다. 색은 “이 길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말하지 않고도 전달한다.
아동병동은 감각 과부하를 줄이기 위한 색을 선택한다. 아동병동의 색은 대부분 파스텔 톤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귀여워서”가 아니다. 아동은 성인보다 빛과 색에 더 민감하다. 강한 원색은 불안을 유발할 수 있고, 복잡한 패턴은 시각적 과부하를 가져온다. 그래서 스웨덴 병원은 부드러운 블루·라벤더·민트·코랄 등을 사용해 아동의 긴장을 낮추고 편안한 치료 경험을 만든다. 여기서 색은 치유의 심리적 쿠션 역할을 한다.
고령층은 시야가 흐려지고 명도·채도 차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를 고려해 스웨덴 병원은 문틀·계단·난간·가구 모서리 등에 명확한 대비 대비(high contrast)를 적용한다. 벽은 부드러운 베이지, 문틀은 짙은 그린, 난간은 진한 네이비, 계단 끝 부분엔 선명한 옐로로 디자인한다. 고령층은 공간을 더 쉽게 인식하고 넘어짐 사고도 크게 줄어든다. 색은 곧 안전장치가 된다.
“색은 환자를 배려하는 가장 조용한 기술이다.” 스웨덴의 의료 디자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의료진의 판단, 의료장비의 기능, 건축 구조가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환자의 삶을 부드럽게 받쳐주는 것이 색이다. 기억을 돕고, 길을 안내하고, 감정을 안정시키고, 사고를 줄이고, 자율성을 되찾게 한다.
이것이 바로 스웨덴이 구축한 Healing Color Universal Design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의 공공성의 색으로 버스, 지하철 객차 안 수많은 색과 표식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은 핑크(Pink)이다. 누군가는 이 색을 배려의 안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이 작은 색 하나는 한국 도시의 공공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실험이다.
임산부 배려석은 2013년 서울 지하철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좌석에 핑크색 시트와 아이콘을 적용하고, 좌석 위에는 ‘임산부 배려석’ 표식, 훈련된 예절 캠페인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이 좌석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자리 양보”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넓고 깊은 공공적 가치가 담겨 있다.
핑크는 ‘특권의 색’이 아니라 ‘도시의 약속’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왜 임산부만을 위한 자리가 따로 있어야 할까?”
하지만 이 핑크색은 특정 집단에게 ‘더 좋은 자리’를 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이 좌석은 도시가 약속하는 최소한의 안전 공간이다. 임신 초기의 여성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한다. 물론 나도 전혀 모르는 할머니들께서 본인도 모르게 배를 치고 가방으로 눌리는 경험을 했기에 "내가 임산부요~"라고 표시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에 임산부의 이동권은 늘 불안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핑크는 배려의 색과 보호의 색, 그리고 도시가 공동체를 위해 “이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기준의 색이다.
임신은 병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여성에게 임신은 일상적 행동조차 어려운 ‘보이지 않는 노동(Invisible Labor)’이 된다. 서서 버티는 20분, 급정거의 충격, 출퇴근 시간의 압박. 지하철의 핑크좌석은 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도시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공간의 언어를 바꾸는 디자인이다.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고통을 디자인이 먼저 알아보고, 대신 말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배려는 ‘도덕적 결단’에 의존했다. 양보는 개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공공디자인은 ‘시스템’을 만든다. 핑크좌석은 배려를 개인의 선의에서 ‘도시의 제도’로 확장한 사례다. 공공디자인의 핵심은 개인의 선한 행동을 전제로 하지 않고 누구나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환경 자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임산부 배려석은 “공공성을 색으로 시각화한 실험”이다. 핑크는 도시 전체의 윤리를 대신 표현한다.
서울교통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을 도입한 이후 임산부 민원이 크게 감소했고, 특히 임신 초기 여성의 지하철 이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핑크색은 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 고령자에게 필요한 색은 무엇일까?
- 뇌전증 환자는?
- 정신건강 위기 경험자는?
-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들은?
도시는 점점 다양해지고 배려받아야 할 대상은 계속 늘어난다. 핑크좌석은 하나의 시작일 뿐, 도시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공공적 기준점이 되었다. 지하철의 핑크 좌석은 작고 소박해 보이지만 도시 정책이 어떻게 색을 통해 권리·안전·배려를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핑크는 누군가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색이 아니라 도시가 먼저 내미는 손이다.
“이 도시는 당신의 삶을 함께 지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시민의 손을 잡는다.
색과 유니버설디자인은 왜 공공성을 강화하는가?
① 색은 정보의 평등성을 보장한다
읽기 어려운 사람(고령층), 보기 어려운 사람(저시력·색각 이상) 길을 잃기 쉬운 사람(관광객·어린이·치매 어르신) 모두에게 색은 “언어 없이도 이해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② 색은 사람의 ‘감정 접근성’을 높인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색, 따뜻함을 주는 색, 혼란을 줄이는 색. 도시는 시각적으로만 평등하면 안 된다.
감정적으로도 누구나 머물 수 있어야 한다.
③ 색은 공간의 경계와 리듬을 만들어 ‘길 찾기 권리’를 보장한다
UD는 결국 “배제되지 않을 권리(Non-Exclusion Rights)”이며, 길을 잃는다는 것은 ‘정보의 배제’를 의미한다. 색은 그 배제를 제거하는 장치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해하고, 누릴 수 있는 도시다.
다양한 많은 디자인적 조형 요소가 있겠지만 특히 색은 선을 긋지 않는다. 색은 말도 많지 않다. 그러나 색은 누구에게나 다가가며 공평하게 기능한다.
색은 도시의 마음을 동일한 속도로 열어주는 공공의 언어다.
누구에게나 보이고, 누구에게나 이해되는 색은 공공성 그 자체다.
이미지로서의 색, 편리하게 사용하는 색으로의 접근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세계 각 지역에서 색으로 기억이 남는 사연이 있다면 댓글 부탁드려요^^
https://www.mk.co.kr/news/culture/11175370
https://namu.wiki/w/%EC%82% B0% ED%86% A0% EB% A6% AC% EB% 8B%88
https://blog.naver.com/uhalloip24/224000936144
https://www.pexels.com/ko-kr/video/26050724/
https://www.korearailroad.kr/news/articleView.html?idxno=17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