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극한상황에서 선의는 지능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집이 무너졌다. 고단함을 가득 안고 들어와 편히 몸을 누이고 쉴 유일한 장소가. 나는 그 별 것 아닌 장소를 얻기 위해 마냥 착한 사람으로 남을 수 없었고,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하기도 했고, 젊음과 쾌락을 포기하고 일을 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집은 바깥세상의 눈비, 추위, 더위, 맹수, 해충과의 방어벽을 쌓아주는 생존 기능 그 이상의 무엇이다.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기능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사생활을 지켜주는 기능이 있고, 보다 나아가면 집은, 내 지위와 계급을 나타내주는 수단이 된다. 부가적으로 이 단계에서 집은, 노동하지 않고 내 지위와 계급을 지속적으로 더 올려주는 경제적 수단으로써의 기능도 수행한다.
어느 날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있는 허름한 복도식 구축아파트인 내 집이 무너졌다. 정확히는 내 집의 바운더리가 무너졌고, 내 집만 빼고 다 무너졌다. 남산타워와 가까운 낡은 구축 아파트가 주는 이미지는 따지자면 '가까스로 중산층' 정도라고 해야 하나. 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주민은 삶에서 겨우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찾으며 궤도에는 올랐는데, 각기 나름의 발버둥과 어려움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 지난날의 보상심리를 온 마음에 담고 있는 중산층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굴기 쉬운 상황이면서 그 와중 굉장히 자신의 행동에 이성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고 고의적으로 설정한 집단인 느낌. 인간의 악함이나 삶의 보풀을 전혀 느껴보지 않은 집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뜯고 뜯기는 정글의 법칙에 익숙하지도 않은 보통 집단.
땅이 갈라지고 갈라진 땅이 위로 치솟았다가 저 너머 땅을 덮치는 규모로 봤을 때, 외국의 국제구호단체가 이들을 구조하러 오기에는 너무 지구 전체 대멸망의 기운이 흐른다. 영화에는 달리 설명이 없지만 저 정도로 땅과 하늘의 상하가 뒤집혔으면 지구 전체가 망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다 망했는데 선술한 이 보통의 집단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설정이다.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다수결로 정한 가이드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옳지 않은 결정이어도 이 집단의 소속 근거 '입주민'에 부합하는 주민의 다수가 정한 의견이면 따른다는 생각을 대체로 갖고 있다. 바깥세상 사람들보다 주민들이 비교할 수 없이 소수이고 총 한 자루 갖고 있는 가구가 없는데, 후탈이 있을 게 당연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적대감을 사고 바깥에서 약탈을 하고 다니는 등 장기적으로 그른 판단을 하는데도(의견에 따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물자 부족과 기후로 인해 주민들도 생존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다수결로 정한 방침이니까 따르고 그것이 다른 어떤 방식보다 가장 나은 이성적 생존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재난물 대부분이 그렇듯 극단적 상황에 몰렸을 때의 인간군상을 다양하게 묘사한다. 심정적으로 잔인한 장면도 많고, 사람마다 각자 답답해할 인물들이 풍부하게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려지며, 그 와중 가장 일반적인 다수의 사람과 비슷한 성향의 캐릭터는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 역으로 꼽힌다.
사람마다 선과 악의 기준이 다르고 타고난 본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를 일이지만, 이 영화에서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 또한 비현실적이라고 할 정도의 선역은 아니다. 자기 먹을 것을 희생해 가며 음식을 나눠준 것은 식량이 모자란 상황에서 지극히 선한 행위인 것은 맞지만, 사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실제로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박보영 역시 다수결로 이들을 내보내기로 정해졌을 때는 본인의 안위가 지켜지는 선에서 혹은 사회시스템에 동의하여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했으며, 그때는 사람의 생명이 규율보다 우선하는 가치라고 반발하지 않았으니 현실적 선에서의 선이다. 그리고 원래 선한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이를 갖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다는 설정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자다 깬 아이의 화장실까지 챙겨줄 정도로 보살펴주는 모습을 그리는 의도가 '확장된 이기주의로서의 가족' 같은 것을 나타낸다는 해석의 여지를 던지는 것도 있지 않은가 싶었다. (캐릭터의 입체성을 위해서)
나는 항상 공감능력이 뛰어나거나 선한 쪽이 좀 더 지능이 높은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착하게 굴지 말라고 말하거나 만만하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면서 위악(?)으로 가장하는 자들이 더 나약한 경우가 많다)
어떤 관점에서 인간이 베푸는 선은 좀 더 두뇌가 비상한 류의 사람이 후일의 육체적인 소모를 아끼기 위해 좀 더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고 행하는 계산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면 화낸 놈, 때린 놈이 발 뻗고 못 잔다는 것도 결국 그들이 똑똑해서일 거다. 사회적 지능이 발달한 인간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자신이 해를 입을 위험을 심어놓았다고 본능적으로 직감하기 때문에 잠 못 드는 거다. 물론, 순수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조차도 인간의 본능이 스스로를 속일 정도로 교묘하게 발달시켜 놓은 생존/방어 기제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극한상황에서 선의는 지능이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손익을 따져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지 악당이나 약탈자가 될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인간은 악한데 그럼 인간이 베푸는 선은 1. 위선이거나 2. 자기 자신의 바운더리가 조금 확장된 것 이상에 지나지 않는 가족이기주의와 집단주의이거나 3. 체벌과 규율이 무서워서 나타나는 방어기제나 생존수단이기만 한 것인가, 인간이 극한에 몰리거나 무정부상태가 되면 정말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속 소년들이 될 것인가. 윌리엄 골딩이 이 소설을 쓴 것이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 인류애가 탈탈 털린 직후라고는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입해서 인간의 본성을 고민하게 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굉장히 잘 만든 척하지 않지만 실은 굉장히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보고 나서 기분이 나빠졌다는 리뷰도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호불호와 취향을 떠나 그만큼 리얼한 묘사를 목표로 하는 영화였고 목표를 이룬 영화가 아닌가 한다. 또 이 영화의 탄생과 흥행에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여한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게 방에 감금당해보는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단순 판타지 재난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SF 영화가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는데, 현실에 없는 그 커다란 줄기의 설정 외에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 상황에 대한 몰입과 설득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고, 그런 현실적 디테일을 보는 것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영화를 보는 재미다. 이 영화 속 디테일들도 그렇게 몰입도를 높여주는데, 서울의 오래된 구축 아파트 단지가 주는 느낌이 여러모로 살아있다. 주민대표의 교양 있는 척하는 듯한 자본주의적 행동과 말투는 물론 입고 있는 비싼 패딩으로 추측되는 복식 같은 것도 굉장히 우리가 경험치로 쌓은 시각적 정보에 부합한다.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어서, 결말 정도에 집으로 돌아와서야 긴장을 풀고 허물어지는 이병헌의 모습 위로 깔리는 '즐거운 나의 집' BGM이나 박서준이 마지막에 응시하는 집 그림 같은 것은 너무 직접적이고 굳이? 싶은 설명이면서 덤덤한 영화의 톤을 좀 해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건 취향 문제겠지만 아무리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효과적인 전달방식이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잔인해야 하나, 비위 상하게 다 보여줘야 하나 싶은 장면도 한두 군데 보인다. 기생충과의 연관성도 많이 언급되는데, 사실 기생충을 재미있게 봤지만 아카데미상까지 받아야 할 영화였나 신기하기는 했는데 왜 항상 상 받는 영화는 계급이나 인간에 대한 철학이 있고 사회적 주제를 담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있다. 나는 봉준호의 마스터피스를 괴물(이것도 사회적 메시지가 매우 있음)로 꼽고 있고 영화는 그 자체가 순수예술이어야 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이상 괴수영화 마니아의 너만 그래였습니다.
콘크리트 유포피아>>>밀수>>>비공식작전>더 문
->이상 여름 4대 텐트폴의 주관적 선호순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