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위선도 선이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위선은 그냥 위선이지,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좋을 때는 종종 출력되는 결괏값이 선과 같을 수 있어도, 지켜야 할 게 있으면 본성이 언제든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주 '선한 나'를 설정해두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거 자체가 사실 그의 본성이 평균보다 악해서일 때가 많다.
사실 그래서 악행과 선행은 지능의 문제다. 자기 자식 일처럼 감정적인 게 배제되기 어려운 사건에서능 설경구 아저씨처럼 그냥 실리적으로 계산하는 사람이 가장 멀리 내다보고 계산해서 나쁜 짓을 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무실에서 굳이 살갑게 구는 일 없이 냉랭한 사람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 대부분 가장 정상적 사회성을 가진 걸 목격하는 일도 많은데 그것도 이 이치.
위선이 확실히 선이 아닌 게, 어쩔 땐 오히려 악보다 나쁠 때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 선을 연기하는 위선인은 타인을 방심하게 함으로써 시커먼 속내를 효과적으로 숨기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쉬운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게 바로 우리가 뒤통수라고 부르기로 정의한 그것이라고나 할까.
설경구 아저씨의 '죄책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죄책감이라는 건 선일까? 아니면 인류가 아주 오래도록 체득한, '내가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면 언젠가 그 타인이 나에게 앙갚음을 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찜찜함일까? 아주 깊이 들어가고 또 들어가 보면 그런 본능적인 계산이 작용한 이익 기반의 결과치인데 이 합리적 계산(단 좀 멀리 내다본 계산이어서 이것도 계산이 단기적이고 덜 똑똑한 사람 눈에는 당장의 이익이 없어 보이고 오히려 손해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음. 그런 시선이 이 계산자를 성자로 만듦)이 나 자신마저 속이면서 효과적으로 행동하도록 나를 조종하는 것일까? 어쩌면 죄책감을 잘 느끼고 양심적인 사람들은 좀 더 사회적 지능이 뛰어나서 더 계산을 멀리하기 때문에 얼핏 타인에게는 좋은 사람처럼 보일뿐인 거 아닐까? 아, 하지만 이렇게까지는 가지 말자. 인류애를 장착하고 살아가자.
결말에서 캐릭터가 붕괴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봤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수세에 몰리면 이 영화 속 사람들처럼 평소 이미지와 다른 태도를 취하며 숨겨온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오히려 많다. 하이퍼리얼리즘이었고 훌륭한 인간 성찰이었음. 매우 평범한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간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통찰력, 철학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에 그저 평범하지 않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허투루 나오는 말은 없다. 짧은 말들이 여러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어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무언가를 굳이 설명하지 않지만 너무 이해가 쉬워서 모든 장면에 만든 사람의 공이 들어가 있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한국 영화가 영화의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어떤 '장면'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아주 쉽게 대사에 녹여 버린다. 만약 한국 영화가 어떤 사람이 아주 거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으면 친구의 대사에 그 말을 그대로 넣어버린다. "야 씨 너 저번에도 사람 패서 감옥 갔다 오더니 철들었구나" 류의 이런 대사가 들어가면서 한 사람의 서사를 관객에게 설명하는 식이다. 이 맥락에서 예를 들면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에는,
(스포일러)
다른 감독이 만들었으면 마지막으로 장동건의 표정만 담는 대신 "그러게 네가 나한테 말한 거잖아, 거기 서 있지 말라고." 같은 뉘앙스의 설명형 대사가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함. 그 외의 다른 많은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쓸데없는 말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문이어야 할 문장이 큰따옴표에 들어가 버리는 우악스러운 연출, 설명들을 생략하면서 대중적으로 쉬운 소통이 가능한, 그러면서도 너무 자기 세계로 가거나 젠체하지 않는 창작자를 찾기가 또 어렵다. (당연히 어렵지) 허진호 말고는, 최근 봤던 영화 중에는 <탈주> 말고 생각이 안 난다.
하고 싶은 감독의 말을 배우의 입으로 즉시 따옴표 쳐서 내보내지 않는 창작자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무 눈물이 나서 피하고 싶을 지경이다. 허진호는 이미 90년대에, 늙은 아버지가 보살펴주는 사람 없이 늙어갈까 봐 가슴 치게 걱정하는 아들의 마음을, "아빠 나 가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대사가 아니라 TV 리모컨 조작법 알려주다 짜증 내고 나와서 우는 아들로 보여주었다. 이 장면은 아들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매우 조급한 심정이라는 점/아버지를 매우 사랑한다는 점/평소에 아버지를 섬세하게 챙기고 순한 아들이었다는 점/기타 등등 너무 많은 맥락을 담고 있다.
'N년 뒤'라는 자막이나 플래시백으로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기보다 손등의 기미나 토실토실한 아기 다리 텍스처로 설명하려는 창작자(코코), 한여름의 열기를 레모네이드 얼음이 딸각하고 녹아내리는 장면으로 설명하는 창작자(콜미바이유어네임), 머리카락이 얼굴이 붙은 채 단잠을 자는 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겨주는 시선으로 딸과의 소중한 기억을 설명하는 창작자(퍼스트맨).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을 소환해 메시지를 감각으로 전하려고 고민하는 창작자를, 그저 보고 듣는 걸 '체험'으로 승격 치환해 주려고 고민하는 모든 창작자를 저는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