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편 https://brunch.co.kr/@zwang/117
대학교를 10년이나 다니고 2012년 공식적으로 졸업장을 받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 그 전부터였다.
디자이너의 커리어에 의미 있었던 직장생활 이력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쇼핑몰 디자이너 (알바, 풀타임, 재택 포함 3년)
군 제대 후 알바로 시작, 복학했다가 휴학해서 풀타임, 다시 복학해서 재택으로 진행
- 주요 업무 : 웹디자인, 상세페이지 디자인, 배너 디자인, 팝업 디자인, 웹 퍼블리싱 (html, css)
2. TV광고 영상회사 편집실 인턴 (5개월)
2010년쯤 휴학하고 였나..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인 문화에 회의감이 들어서 퇴사
- 주요 업무 : 광고 영상 편집 작업 (촬영되어 온 영상 중에 OK 컷 골라내고 이렇게 저렇게 붙여보며 영상 완성하기), 테이프 복제하고, 퀵보내고, 시사할 때 클라이언트 분들 응대하고 등
3. UI/UX 디자인 에이전시 GUI 디자이너 (1년 6개월)
졸업을 앞둔 시점에 인턴으로 시작해서 학교에 취업계 내고 다니다가 정직원 전환 성공
- 주요 업무 : GUI 디자인, 아이콘 디자인, 무드 보드 제작, 디자인 리서치, 종종 플래시 및 편집 디자인도 병행
다양한 회사들을 경험했고 마지막 UI/UX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는 인턴부터 시작해서 정직원 전환에도 성공했다. 물론 그 사이에 대기업의 대학생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다가 면접까지 올라가서 떨어지기도 하고 했던 가슴 아픈 순간들이 있었지만, 대기업만 바라보고 시간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바로 일을 하고 싶었던 터라 UI/UX 디자인 에이전시에 인턴으로 입사를 했다. 인턴이 6개월 정도로 길었던 것 같은데 인턴생활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정직원 전환이 되었다.
그렇게 정직원이 된 후에 나는 야근도 있긴 있었지만, 정해진 루틴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 몸에 익고 나니 약간 지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하는 작업들이 나의 작업 같지 않고 회사의 작업 같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하던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게 되면 집에서 개인 작업을 했다.
그 당시 일러스트로 나의 생각들을 그리곤 했었는데.. 그림일기 같은 것이었다.
플랫한 일러스트 스타일로 일기를 그려나갔다. 작업물들은 블로그에도 올리고, 페이스북에도 올리면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곤 했었다. 이 작업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었다.
그 당시는 페이스북에서 참 활발하게 활동을 했었는데 디자인의 힘을 몸으로 느끼던 때였다. 작업을 열정적으로 꾸준히 하기도 했지만 많은 분들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작업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분들과 친구를 맺는 것을 꺼리지 않던 분위기도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서 함께 일러스트 전시를 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었는데.. 나는 예전부터 너무 하고 싶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사실 대학을 다닐 때, 과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서 노래도 만들고 합주도 했었는데.. 그 경험을 하는 것이 그 와중에 뮤지션들과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대 인디 씬의 문을 두드려 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홍대 상상마당에서 주최하는 레이블마켓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홍대 인디 씬의 앨범들을 한 곳에 모아서 보여주고 판매도 하는 그런 행사였다. 거기에 한번 포스터를 붙여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신의 음악의 옷을 입혀주겠다]는 카피와 일러스트로 조그마한 포스터를 만들어서 그 행사 현장에 방문했다.
공간을 지키고 있던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기.. 혹시.. 제가.. 이 포스터를 좀 붙여도 괜찮을까요??"
하면서 쑥스럽게 작업물이 프린트된 종이를 들이밀었다.
"아.. 음.. 네 괜찮을 것 같아요"
다행히도 직원분이 오케이를 해주셔서 공간 한편에 조그맣게 포스터를 붙이고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한 레이블에서 연락이 왔다. 홍대의 한 작은 레이블이었는데, 레이블 마켓에서 포스터를 보고 블로그도 둘러보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홍대 인디씬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만남을 통해 간단한 앨범 작업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고 설레었던 경험은 [대한민국 라이브 뮤직 페스티벌(이하 대라페)] 전체 아트 디렉팅을 진행했을 때였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보기 힘든 야외 페스티벌이 한창일 시기였다. 매년 새로운 페스티벌이 신설되고 사라지고 했었는데, 대라페는 그중에 하나로 한강 난지공원에서 개최가 되었다.
많은 경험이 없던 나에게 일을 맡겨주신 분들에게 감사했기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내가 작업한 작업물들이 홍대 길거리에 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작업을 보게 되는 경험을 처음 했을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소위 '뽕'이라고 하는데, 디자이너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디자인에 진심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맛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 페스티벌 현장에서 나의 작업물들을 만났을 때의 감동은 홍대의 길거리에서 보다 더 강렬했다. 그 작업물들을 사람들이 보고 있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식의 '뽕'을 몇 번 더 경험하고 나니.. 회사에서 하는 일이 점점 더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회사 내의 높은 직책에 계신 분들을 바라봤을 때..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는 그랬다. 그렇게 퇴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라는 허무맹랑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현재 돌아보면 그곳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큰 회사를 겪어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퇴사 후 이어졌던 나의 생활들은 정말 행복했었다.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졌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을 정말 즐기면서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BORI라는 뮤지션의 앨범 작업을 전담하면서 앨범 디자인도 진행하고, 공연을 할 때마다 포스터도 디자인하고 홍대 인디씬에서였지만 나름 반응도 좋았고, 작업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정말 즐기면서 진행했다. 뮤직비디오를 스톱모션으로 만들기 위해서 삼청동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 위에 일러스트를 그려가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BORI and CUJO라는 세계관을 확장해서 일러스트도 그리고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했었다.
부수적으로는 그 레이블의 소속된 다른 아티스트들과도 친분이 생기고, 공연을 무료로 보러 가기도 하고 뒤풀이에 참가해서 함께 회포를 풀기도 했었다. 나에게 홍대를 그런 곳이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련한 곳. 그때의 경험은 정말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순간들이다.
다음편 : 작성중..
브랜드 만드는 남자 | 김주황
lllayer(레이어) CEO & Branding Director
www.lllayer.com
-
브랜드의 경험을 설계하고, 고객과의 접점을 디자인합니다.
-
zwang@lllayer.com
www.youtube.com/c/brandmakerman
www.instagram.com/brandmakerman
www.facebook.com/brandmak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