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평화, 마음의 정원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by 기빙트리

거리가 깨어나는 시간,
책방 문을 열었다.
햇살이 천천히 문턱을 넘고, 먼지마저 고요하게 떠오르는 시간.
그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문득 헤르만 헤세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 『정원 일의 즐거움』을.

이 책에서 헤세는 전쟁과 망명, 상실과 절망 속에서도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에게 정원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지탱하는 방식이었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가장 정직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가 가꾸는 정원에는 화려한 꽃이 없다.
대부분은 허브나 채소처럼 소박한 식물들이지만
그 식물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말한다.
“땅을 일구는 일은 정직한 기쁨을 준다.”
그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손놀림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고.


책방 뒤켠, 조그만 중정.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그 공간에 나는
몇 해 전부터 화분을 두고 계절 따라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다.
올해는 장미넝쿨이 유독 싱그럽게 올라오고 있다.
벽을 타고 자라는 그 초록은,
바쁘게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떼고,
새순이 올라온 것을 발견하는 일.
그 조용한 시간은
책방을 돌보는 일과 묘하게 닮아 있다.
책 한 권 한 권을 제자리에 두고,
하루에도 수없이 들어왔다 나가는 문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작은 손길로 무언가를 지키고 있다.

『정원 일의 즐거움』을 읽는다는 건
삶이 복잡하게 얽혀갈수록
더 단순하고 진실한 것들을 붙잡으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정원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삶의 본질이 있다.

그리고 그 말 없는 위로는,
오늘도 조용히 장미넝쿨 아래 피어난다.



#어쩌면당신에게필요한한권 #정원일의즐거움 #헤르만헤세 #책방일기 #중정의식물들 #서리단길기빙트리 #조용한삶 #마음의정원 #자연과책 #삶을가꾸는일

keyword
이전 10화마음의 무늬를 지켜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