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것들에 대하여

by 기빙트리

지난 5월, 먼 곳에서 길다란 택배 상자가 하나 도착했다.
오래된 인연이 보내온 주황빛 장미다발이었다.
카드 한 장 없이도 마음이 읽혔다.
그럼에도...아무래도 올해가 마지막이지 싶다....

5월 15일.

오랜 기간 나를 지탱해주었던,

떠나온 자리에 남아있던 이가 그 마음을 전해온 거였다.
나는 그 장미들을 조심스럽게 다듬어, 책방 한켠 서늘한 그늘에 매달아 말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생기 넘치던 주황빛이 서서히 바래가며
자연스러운 카라멜빛으로, 바싹 마른 꿀빛으로 변해갔다.
누군가는 “예쁜 장미가 다 죽어버렸네.” 하며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의 색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한때 화사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부드럽고 담담한 색이 되는 일.
그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깊이를 더해가는 일이 아닐까.
잘 마른 장미는 조심스레 모아 하나의 꽃다발로 묶어 두었다.


요 며칠은 날씨도 흐릿하고, 마음도 눅눅했다.
책을 펼쳐도 글자가 흐릿하게만 보였다.
그저 손이라도 움직여야 겠다는 생각에, 서랍 속에서 지끈을 꺼내
아무 생각 없이 코바늘을 들었다.

무늬도 없고, 기교도 없지만
손끝에서 차곡차곡 면이 짜여져 갔다.
두어 날 떠보니 제법 넓은 면이 나왔다.
실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문득, ‘이걸 어디에 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숭덩숭덩 꿰매어 가방을 만들었다.
쓰임도 목적도 없이 만들어낸 이 허술한 가방.
우습게도 만들고 나니, 내가 이걸 메고 다닐까 싶어 혼자 웃음이 났다.

그런데 문득, 그 가방과 말라버린 장미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걸 그냥 가방 안에 꽂아두면 어떨까?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그렇게.

그 순간,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길이란, 꼭 방향을 정해 놓아야 생기는 게 아니구나.
그렇게 깨달았다.

책방 벽에 붙어 있던 오래된 그림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장미를 넣은 가방을 걸었다.

잠시 뒤, 들어온 손님이 그것을 보며
“와, 느낌있다!” 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작은 만족감이 하나가 스며들었다.


아무 의미 없는 듯한 시간들이
어쩌면 가장 나를 만들어 주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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