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자 모양으로 놓인 거실창의 한 면,
커다란 통창에 반투명 시트지를 붙였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땐
앤틱한 태슬 달린 커튼과 고급스러운 커튼봉을 달아두었지만,
결국 대부분의 시간, 커튼은 꽁꽁 묶인 채 방치됐다.
그랬던 창이,
시트지를 붙이고 나니 오히려 전면창으로 풍경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의 거실 이야기다.
2020년 가을 이 집을 사고,
세 달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이듬해 1월에 이사했다.
새 가구를 들이고, 깨끗한 공간을 나름 잘 유지해오던 거실은
언젠가부터 점점 정체불명의 물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산 스테퍼, 운동기구,
바닥엔 강아지 장난감이 나뒹굴고,
티 테이블 아래에는 커다란 카페트.
그 위엔 커다란 소파, 커다란 티비장,
커다란 장스탠드, 그리고 커다란 안마의자까지…
사람보다 물건이 마치 주인처럼 자리 잡은 공간.
집 안 가득 쌓인 물건들 틈에서
내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당근마켓 중독자처럼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이 올라올 때마다 알림을 설정하고
무조건 들였다.
안 쓰는 시계, 의자, 운동기구, 각종 가전들.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들어온 것들이
공간의 주인처럼 자리를 차지했다.
집이 점점 싫어졌다.
쉬어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물건들 틈에 내가 비집고 들어가는 기분—그게 제일 싫었다.
치워도 치운 게 아니고,
답답함을 피하듯 침대에 누워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아낌없이 나누자. 그리고 단순하게 살자.’
그렇게 당근 무료나눔을 시작했다.
하나씩 비우고 나면,
어떤 숙제를 해치운 듯 마음이 후련했다.
물론 아직 남편은 그 습관을 다 버리진 못했다.
밥을 먹다가도 “당근!” 알림이 울린다.
그럼에도 난,
두 개 있는 건 하나 나누고
오래 쓰지 않은 물건도 나누고
아깝지만 눈 질끈 감고 나누고 있다.
지금, 거실엔 커튼이 없다.
전면 통창엔 원래 있던 롤 블라인드만 내려져 있고
소파와 티비, 그 정도만 남았다.
안마의자는 크고 무거워 아직 나눔이 실패 중이지만
그래도 이젠 로봇청소기가 걸리지 않고 유유히 다닌다.
아직도 계속 비우고 있다.
예쁘다는 이유로, 언젠가 쓸 것 같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했던 단 스탠드들,
아끼다 못 입었던 비싼 옷들도 이젠 안녕이다.
머리가 맑아졌다.
제습이 켜진 거실은 쾌청하고 조용하다.
아직도 남편의 공간은 물건들로 가득하지만
이젠 조금 너그럽게 웃을 수 있다.
요즘은 생각한다.
물건이 없다고 가난한 게 아니라,
너무 많은 물건이 삶을 가난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물건의 개수를 줄이고,
더 사지 않고, 가능한 건 고쳐서 입는다.
책방 북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더 이상 옷을 사지 않습니다』라는 책처럼
3년 전만 해도 옷장에 옷이 넘쳐나 걸 공간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새 옷을 사지 않는다.
길이가 어중간한 원피스엔 안 쓰는 머플러를 덧대어 길이를 늘리고,
애매한 바지엔 단을 풀어 입는다.
오히려 더 멋스럽다.
한구석 먼지 쌓였던 미싱도 요즘은 열일한다.
천 조각, 안 쓰는 머플러, 묵혀둔 옷들을
내 손으로 리폼해서 입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하나를 더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