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쇼코의 미소』 중 「씬짜오, 씬짜오」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늘 그런 식이었다.
모르고, 무심하게, 너무나 쉽게.
그러면서도 그게 상처라는 사실조차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없게 된 뒤에야.
『쇼코의 미소』에 실린 「씬짜오, 씬짜오」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민 가족과 한 한국 가족 사이의
짧은 인연과 조용한 이별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베트남 아이, 투이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무심한 말 한마디가
그 가족과의 관계를 서서히 멀어지게 한다.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
식탁 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그 말.
그 순간 응웬 아주머니의 눈빛이 조금 흐려졌지만,
‘나’는 그것을 읽어내지 못한다.
엄마 역시 말없이 지나쳤고,
며칠 후부터 호아저씨네와의 식사 자리는 사라졌다.
투이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게 되는 감정이라는 게 있다.
서서히, 조용히, 어긋났다.
그땐 투이가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스운 소리를 해대고,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던 아이.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인 척하면서
타인의 무게를 덜어주던 아이.
싱겁게 웃던 얼굴,
어쩌면 나보다 훨씬 먼저 어른이 되었던 그 아이.
나 역시 관계가 부서진 뒤에야
누가 떠난 것이고, 누가 남겨진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경우는 떠났고,
또 어떤 경우는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더 상처받았는지조차
말할 수 없는 채로
그저 무너졌고,
남은 건 오래도록 가슴 안에 눌러앉은 미안함 하나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엄마의 외로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시절, 엄마는 종종 응웬 아주머니와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웃음은 어쩌면,
엄마가 그동안 어디에서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내보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저 오래 외로웠던 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늘 단단해 보였던 엄마에게도
기댈 곳이 필요했으리라는 걸.
“그저, 가끔 말을 들어주는 친구라도 될 일이었다.”
엄마에겐 단지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거였다.
그리고 아주 늦게,
엄마를 대신해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씬짜오, 씬짜오.”
너무 늦은 인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만은 전해졌기를 바란다.
소설이 끝나고 마음이 시리다.
나를 지나간 어떤 관계들과 겹쳐져서 더 오래 아릿하다.
철없던 시절 나도, 누군가에게 무심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무심함이 누군가의 마음엔 깊은 흉처럼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을 멈춰 있게 되었다.
그 시림 덕분에
누군가의 말 없는 진심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되니까.
그런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끔은 늦게라도 돌아보게 되니까.
사람은 누구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몸은 멀어질 수 있어도,
마음 어딘가에는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감정이 있다.
그 마음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 아주 작지만 늦지 않은 인사를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