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는 법

파올로 코넬료의 [연금술사] 를 읽고

by 기빙트리

사막의 낮은 뜨겁고, 밤은 차다. 이 단순한 사실이, 산티아고의 여정을 따라가며 문득 마음속을 스쳐갔다.

그처럼 나 역시 어느 날은 뜨겁고, 어느 날은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낸다.

이따금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무덥다가도, 또 어떤 밤은 그저 막막하고 쓸쓸하다.

삶이란 늘 그런 균형을 유지하며 계속되는 사막 같다.

『연금술사』를 읽는 동안 계속해서 '자아의 신화'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살아온 여정도 참 드라마틱했다. 정해진 삶을 포기하고 양치기를 자처한 산티아고처럼,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수없이 많은 갈림길을 지나왔다.

길 위에서 울었고, 웃었고, 때로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시 걷고 또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

산티아고는 말했다.
"떠나지 못하게 나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자신 말고는."
결국 우리를 막는 건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는 걸,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조금씩 사막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삶은 언제나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이 멜키세덱이 말하는 ‘표지’였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돌아보면 가장 큰 전환점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평범한 일상 속 어느 시점, 우연한 발걸음이 멈췄던 작은 책방, 지인과의 대화 속 한 마디,

문득 바라본 하늘의 색깔 같은 것. 우주의 언어는 우리 삶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있고,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들려온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을 때, 파울로 코엘료는 말한다.
“나는 산티아고처럼 젊은 시절 연금술에 빠져 있었다고.”
도대체 연금술이란 무엇일까.

마크툽. 표지. 자아의 신화. 우주의 언어. 철학자의 돌. 위대한 업.
『연금술사』 곳곳에 흩어진 이 단어들은 처음엔 추상적으로만 느껴졌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것이 단지 환상이나 상징이 아닌,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연금술이란, 결국 ‘만물의 정기’ 속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 나만의 언어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그 언어는 나를 세상과 연결시키고, 다시 나 자신에게 데려다준다.

연금술은 금을 만드는 마법이 아니라, 삶을 살아낼 수 있게 하는 언어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사막을 지나며 울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고, 가진 것을 도둑맞고,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엔 말한다.
“내가 겪은 모든 것 덕분에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고.”
그 모든 만남과 헤어짐, 상실과 발견, 고독과 기쁨이 결국 하나의 언어로 귀결된다는 사실.
삶의 비밀은 언제나 그 안에 있었다.

우리는 모두 산티아고처럼 나만의 보물을 찾고 싶어 한다.
그 보물을 향한 간절함이야말로, 지난한 현실을 살아내는 힘이 된다.
나 또한 그랬다.
살면서 많은 순간 ‘이 길이 맞나’ 의심했고, 때로는 이미 놓쳐버린 게 아닐까 후회했다.
책 속 늙은 왕은 말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 준다네.”

그 문장을 종이에 옮겨 적었고, 메모장 맨 앞장에 적어두기도 했었다.
그건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어떤 기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보물이란 언제나 떠나온 자리, 그 익숙했던 고요 아래 숨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찾아 사막을 건넌 시간은, 단 한순간도 허투루 흘러간 적이 없었다.
깊은 외로움 속에서, 가장 단단한 믿음이 태어나고
의심과 고통 끝에서야 비로소 삶이 들려주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모든 여정을 지나, 찾은 것은 결국
그 어떤 금빛 보물도 아닌,
내 안에서 조용히 울리던 하나의 문장이었다.
이미 그렇게 쓰여 있었으니까, 마크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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