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디에도 없는 나를 찾아서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고나서

by 기빙트리

<그 어디에나 있지만 사실은 그 어디에도 없는 나를 찾아 나설 때>

무언가의 끝자락에 서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한 번쯤은 온다지만, 그때의 나는 나만 불행하다고 믿었다.

하루가 기울고 어둠이 찾아오면, 방 한구석에서 우두커니 앉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착각했던 날들.

그러나 지금, 그 시절의 나를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건 아마도 문장 덕분일 것이다.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내게 그런 문장으로 다가왔다.

혜완과 경혜, 그리고 영선. 그 시절 내 곁을 지나간 사람들과 너무도 닮아 있었던 그녀들은,

이름만 다를 뿐 내 삶에 있었던 누군가였다.

나는 작가와 비슷한 시절, 비슷한 지역에서 살아왔고, 어쩌면 비슷한 질문들을 품고 살아왔다.

공지영 작가는 여성 문제에 누구보다 앞서 있었지만,

나는 때로 그런 의제를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 오히려 양성평등을 그르친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내 삶은 혜완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

다른 이에게 기대지 못하고, 삶이라는 전장터에서 맨 앞에 선 병사처럼,

모든 선택과 책임을 스스로 감내하며 걸어왔다.

그렇게 홀로서기를 배웠고, 혼자 있는 법을 익히며 시간을 지나왔다.

어느 날 책장 한 켠에서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외로움, 선택의 무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만 했던 하루하루는 너무도 선명했다.

혜완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내 삶이 겹쳐지며,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문장은 시간의 틈을 넘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작가는 말했다.

"웃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며,

울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슬픈 것도 아니라고.

불행은 어쩌면 오늘 일어난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고."

그 말은, 지난 시간을 다시 되집어 보게 해주는 문장이었다.

여전히 세상은 날마다 작고 큰 사건으로 요동치지만, 이제 안다.

모든 것이 나만의 불행은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고 난 뒤, 마치 꿀먹은 벙어리마냥. 한동안 가만히 책 표지를 바라보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나는 종종 나를 잃었고, 때로는 다시 찾기도 했다.

그 어디에나 있었지만 정작 어디에도 없었던 나를.


그 시절의 나는 조용히 눈물을 삼킨 밤이 많았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들을 종이에 흘려보내며 견뎠고,

때로는 나조차 모르는 언어로 나를 달래기도 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애쓰던 시간들.

그런 시절을 지나 지금 여기에 서 있는 나는, 더이상 그때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시간과 상황 속에서 나를 견인하고, 담담해지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고, 때로는 불완전하지만, 그 시절과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조금 더 천천히 나아가려 한다.

고독이란 결국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오늘도 문장을 만난다.

나를 닮은, 담담한 글귀 하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단순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조용한 방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잊고 있던 나를 다시 꺼내는 시간이었다.

책의 문장들은 여전히 내 서랍 속에 고요히 놓여 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으며,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