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가 그렇게 떠나고 다음날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여기 **** 비서팀에서 연락드립니다. "
"어.. 네"
"저희 대표님께서 병원과 제휴를 맺었으면 해서 관련 미팅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이제야 민주 보호자가 매일 병원에 있어도 되는 이유를 알았다.
노란 탈색모에 숏 헤어라서 젊은 분이라고 생각에 그녀가 대표일 것이라 예상 못했다.
민주의 보호자는 유명 IT기업의 대표였다.
내일 미팅을 하기로 했고 다음날 회계팀과 비서팀에서 사람이 왔다.
원장 선생님과 나, 회사 사람들이 모여 미팅을 시작했다.
"저희 측에서는 회사 복지 차원으로 제휴를 맺고 싶은데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은 동물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할 수 있는 것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게 우리 병원이 그동안 한 달에 3000만 원씩 지고 있던 빚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원장님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 글쎄요. 제휴가 처음이라 어떤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면 반려동물 건강검진은 어떠세요?"
".... 음.. 하면 좋죠"
'아니 이게 무슨 반응이지..? 하면 좋죠?! 하면 좋다니 어떻게든 해야지,
지금 이 병원이 빚을 얼마나 지고 있는데,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빚을 지고 있는데!'
미팅은 할인 쿠폰으로 결론이 났다.
3가지 쿠폰을 20개씩 크게 할인되는 쿠폰은 아니 정도였다. 사료나 간식 할인 정도.
역시나 쿠폰을 들고 오는 손님은 찾기 어려웠다.
여기서 원장 선생님에 대해서 잠시 말하자면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가 전에 인턴으로 있었던 A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형병원이었고
원장님은 이 곳의 외과과장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어시를 하고 나서는 다른 수술이 잔인해 보였다.
최대한 작은 절개로 세밀하게 종양을 떼어내서 짧은 시간 동안 회복하거나 삶의 질을 지켜줬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서 보호자는 알리 없지만.
어떠한 이유로 A병원의 원장과 의견 차이로 그만두시고는 15년 동안 번 돈으로
병원을 열려고 마음먹으셨을 때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그녀의 실력을 직접 본 나는 밑에서 일하면 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함께 필요한 물품과 기기를 보러 다니고 SNS 계정도 만들면서 개원 준비를 했다.
좋은 외과 수의사는 틀림없지만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아니다.
갑자기 엄청 예민해져서 막 화내다가 잠시 후에
'아까는 내가 심했던 거 같아요. 미안해요' 사과하고 사라진다.
그리고는 반복한다.
개원한 지 3달 정도까지 손님이 정말 안 왔다.
어깨너머로 원장님의 기술을 배워보려고 한 건데 할 일도 없고 공부하기도 눈치 보인다.
직원은 나, 원장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이렇게 셋인데 월급도 만만치 않다.
장부를 정리하고 나니 이렇게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이 있는 것과 장사를 잘하는 것을 완전히 다른 거구나'
개원 후 6개월까지는 심심한 일상이었다.
원장 선생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차라리 바쁜 게 일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손님마다 정말 성심성의껏 진료했다.
10분이면 될 진료를 한 시간씩 보기도 했다.
(대부분 보호자들은 궁금한 게 많고 할 얘기도 많으시다.)
9개월쯤 지나니깐 이제야 손님이 조금씩 왔다.
그런데 제휴라는 좋은 기회에 이렇게 반응하다니;;
반려동물건강검진만 한 바퀴 싹 돌려도 엄청날 텐데 말이다.
나라면 전날 설레서 혼자 ppt도 만들고 연습도 했을 거다.
이해하려 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