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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DAK 노닥 Jan 26. 2023

미안함

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돼서도 내가 입버릇처럼 “죄송합니다.” 를 달고 다녔다는 사실을 깨달은건 정말 최근의 일이다.


그날도 뭐 죄송할 일은 없던 하루였을 것이다. 함께 기숙사에 사는 형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가 튀어나왔고, 그 형은 바쁘게 말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곧이어 해주었던 이야기가 참 놀라웠다.

“(이름)아. 뭐가 죄송해?”
“예?”


나는 그 때부터 패닉에 빠졌다.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진짜 죄송할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뭔가 지어내는게 죄송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요런 저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러자 나 자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졌다. 죄송한 느낌을 주기 위해 죄송을 연기해야 한다니, 이런 비참함이 있을수가!


“아냐, 내가 봤을 때 너는 죄송한게 아냐. 넌 잘못한 게 없어. 그건 습관같아.”


형이 그렇게 말해줬을 때 정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평생의 습관이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나는 땀을 삐질 흘리며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그러자 형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름)아. 앞으로는 죄송할 일에만 죄송하다고 하는거야. 죄송하지도 않은 일에 죄송하다고 하는 것은 너에게도,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실례야.”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또 그런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끝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죄송하다” 라는 말을 얼마나 남발하고 있었는지. 떡볶이 집에 가서도 ‘죄송합니다, 주문할게요!’ 피씨방에 가서도 ‘어, 죄송하지만 이게 시간이 맞는걸까요?’ 영화를 보러가서 팝콘을 살 때도 ‘죄송한데...’ 로 대화의 포문을 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이야, 내 세상은 온통 죄송한 세계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의미로 감탄하게 됐다.



나는 언제서부터 이런 세계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 시작했던걸까. 아마 착한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 인간으로 비춰지기 위해서 예의있는 척을 해온 나는 말의 시작마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해서 죄송합니다로 말을 마치는.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 같은 대화를 구사했다.


태어났으니 죄송한 것일까, 살아가는 것이 죄송한 것일까.
민폐를 끼친 것일까? 효용성이란 1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라 그러한가.


새삼스레 내 마음 속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씨네마처럼 흘러지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죄송한 세계를 끝내버리고 조금은 나 자신에게 열려있는 세계를 시작하는 게 어떨까! 요조(인간실격의 주인공) 처럼 비참한 인생, 후회뿐인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으니.

그렇게 나는 별안간 죄송세계를 털어냈고, 대학원 때는 확실한 잘못에만 사과하는 버릇을 길렀다. 그 형 덕분에 나의 죄송세계가 검푸르게 변한 상처의 딱지처럼 떼어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상처만 계속 안겨주던 그런 관계에서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 것은 보너스라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거냐고? 죄송세계를 탈피해버린 나는 감사세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미안함 뿐인 세계보다는 조금이라도 고마워서 세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보는 것이다. 물론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는 냉혹하고 냉정할지 몰라도 조금 어리숙하게 해맑은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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