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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청세 Nov 28. 2019

정세청세와 나의 이야기

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2019년 현재까지 36개 지역에서 2만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올해 정세청세에서는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세청세 브런치 아홉 번째 글은 정세청세 청년 총괄기획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현 님의 이야기입니다. 청소년 시절 인디고 서원에서 함께 공부를 했으며, 청년이 되어서 세종 정세청세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승현 님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인디고 서원을 만났습니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초록 지붕의 건물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고, 학원으로 가득한 동네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공간이었습니다. 수업하는 교실에도 책 이 가득 꽂혀 있어서 책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처음엔 그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만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디고 서원에서 공부하며 무엇보다도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을 보았고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얘기하고 나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언제나 내 삶으로 그 문제를 가져왔으며, 더 큰 세계와 연결된 무언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환경에 관한 책을 읽으면 그런 환경문제가 있고 이유는 무엇이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었죠. 나아가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계속해서 보고 고민하도록 했으며, 이전에 제가 공부했던 것들과 이번 공부를 끊임없이 연결하였어요. 


제가 청소년 시절 인디고 서원에서 공부하며 저는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워서 정세청세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공부는 단순히 문제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죠. 세계의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도록 공부하고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게끔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시험과 성적에 이끌려 다니면서도 이곳에서 함께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내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 숨어 나는 무엇을 외면해왔고, 또 정말로 봐야하는 문제들은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고 인디고 서원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인문학이라는 것을 손에 놓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청소년 시기에 저는 정세청세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정세청세 토론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서 경험은 해봤지만, 저 혼자 따로 참가 신청을 하진 못했습니다.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용기를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잊었던 제 안의 양심을 다시 찾았습니다

                 

저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청소년 시절에 제가 갖고 있던 문제 의식과 고민을 더 이상 연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학생이된 저는 눈앞에 놓인 일들에 급급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뜨겁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자유와 평등, 정의와 희망, 생명과 다양성과 같은 주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제 문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제가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런 문제들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하는 것을, 또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 땅의 청소년들이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제 삶의 궤도를 바꿔 놓을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저는 다시 인디고 서원의 활동에 참여하고 정세청세 총괄 기획팀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참여하는 인문학 공부를 할 때 저는 설렘보단 그저 해야 하는 일 정도로 느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그토록 뜨거웠던 가슴이 모두 식어버린 제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제가 잊고 있었던 가치를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도 일었습니다. 인디고 서원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제가 만난 청소년들의 눈에서 제가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 대한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런 친구들에게 조금만 손을 내밀면 희망의 불씨를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하지 못했더라도, 이 청소년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희망을 함께 이야기하고 또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세청세 활동을 시작하면서 청소년들의 눈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반짝이는 걸 보았습니다


불확실한 길이지만 함께 가봅시다


정세청세에 청년 총괄기획팀원으로 합류하며 제가 담당하게 된 지역은 세종시였습니다. 세종시는 새롬청소년 문화의집의 도움으로 올해 처음 정세청세팀이 만들어졌고 센터의 동아리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인디고 서원에서 센터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인문학’과 정세청세에 대해 강연을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선생님들은 정말 관심 있게 보시면서 질문도 많이 하셨습니다. 청소년과 관련된 기관에 있으셔서 그런지 몰라도 정세청세를 지지하고 도와주신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해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은 오히려 저에게 “인문학, 정세청세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확실치 않은 길을 걷는 것일 수도 있으나 흔쾌히 같이 가자” 하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세종팀은 신설팀이다 보니 정세청세에 처음 참여해본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서로 가치관도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정세청세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시작한 경우가 많아서 이를 설명하는 데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청소년들과 함께 과연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들 만큼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행사를 위한 공부 모임을 진행하면서 점차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가장 재밌었던 것은 아이들이 정말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론하며 당황스러운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토론하는 과정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청소년들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함께 토론하였으며, 불의를 해결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팀원들과 어떤 주제로 토론을 하든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것저것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구조적 폭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공부

                            

팀원들과 함께 공부모임을 하면서 우리는 함께 분노도 느끼고 때론 절망도 느낍니다. 정세청세 4회 주제인 ‘구조적 폭력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공부자료로 <지식채널 e - 이미 충분히 늦었다> 라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기업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을 집행한다는 내용의 영상이었습니다. 이 법은 2007년 영국에서 제정된 것입니다. 하지만 제정되기 이전에 1987 제브뤼헤 여객선 참사, 1988 북해 유정 굴착기지 폭발사고, 1997 자동경보시스템 미작동 사고 등등이 있었고 당시엔 기업, 임원들의 살인죄가 모두 혐의없음으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보니 자연스레 우리 나라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사고,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 너무나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은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머지 두 개의 사고 모두 위험한 직업은 2인1조로 함께하는 등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팀원들과 함께 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에 관해서 토론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기업의 구조적 문제라고 판단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고,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인 분위기, 안전 장비, 교육, 인력이 부족한 구조적인 문제로 여겨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그저 실수해서 생긴 사고로 여기니 덩그러니 다치고 죽은 사람 혼자 남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회사와 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구나 그런 처지에 놓일 수 있지 않나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팀원들도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똑같은 사고가 생길 것이고 사회에서 약자, 주로 가난한 자들이 피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정세청세의 공부에서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더욱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정의감이 감돌곤 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참여자들과 나눌 수 있는 질문이 하나씩 쌓여갔습니다. 


함께 꿈꾸게 된 정세청세라는 가능성


마침내 행사가 열렸습니다. 정세청세, 인문학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보는 참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정세청세 행사를 하면서 항상 놀라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이 각자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고 또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 청소년의 목소리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무척 인상 깊기도 하였습니다. 


정세청세에 참가하지 않은 친구들도 그런 고민과 생각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세청세라는 행사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힘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정의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처음 공부 모임을 할 때는 기획팀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인데도 말을 끌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제가 청소년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문장 한문장 대답하다가 몇 주가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신선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기획팀원 청소년들이 행사에서 토론을 이끄는 조장이 될 때면 제 앞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 었습니다. 분명 회의할 때는 자신의 생각을 잘 얘기하지 않던 친구가 행사 당일에는 노트에다가 질문이나 생각들을 가득 써와서 적극적으로 조의 토론을 이끕니다. 제가 노력해서 이 친구들에게 그런 능력들이 생겼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청소년들은 팀원들은 이미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능력을 여기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서도 발휘한다면 그것이 우리 정세청세의 가능성이 아닐까요. 


매회를 거듭할수록 팀원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서로 눈빛만 봐도 의사소통이 되어가는 상황이 되었는데요. 물론 아무리 반복해도 실수하는 것들이 있어서 계속 상기시켜줄 필요도 있었지만, 어느새 이 청소년들은 행사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챙겨나가고 있었습니다. 행사 전반의 준비에 관해서 청소년 팀원들끼리 스스로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행사 당일에도 청소년 팀장을 주축으로 행사를 잘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잘하는데?” 




2019년 제5회 정세청세 "세상을 보다 정의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2019 정세청세를 마무리하며 

                      

이번 해 세종 정세청세를 생각해보면 처음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진 않았습니다. 토요일에 행사를 진행하는데, 그 시간에 학원에 가야 하는 청소년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참여자가 많이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열심히 준비한 팀원들이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세청세의 가치를 몸소 느끼는 청소년이 조금씩이지만 늘어나면서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에 희망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공부모임에 있어서도 팀원들의 자발성을 더 끌어 내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주도적으로 진행을 할 경우 팀원들에게 많은 정보와 풍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나아가 팀원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찾고 공부하고 질문을 하게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내년 공부모임 때는 스스로 공부하고 그 내용으로 팀원들끼리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공부모임으로 준비해나가려고 합니다. 


내년에도 함께할 청소년들의 공부모임과 정세청세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규모가 크거나 작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활동을 통해서 청소년들의 가슴 속에 열정이 싹트는 것이 기대됩니다. 또 특별히 세종은 올해 처음 시작한 지역인만큼 진행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성장한 모습으로 더 멋진 정세청세를 꾸려갈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정세청세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정세청세와 또 새롭게 다가올 2020 정세청세에 대해서 많이 기대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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