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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버스 Dec 29. 2023

하마터면 동사할 뻔 했다니까

요란한 경보음을 울리며 한파주의보 긴급재난 문자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는 성당봉사가 있는 날이다. 

발목까지 오는 롱 패딩을 챙겨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낀 후 집밖을 나섰다. 

턱 선이 아릴 정도로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 

어깨를 바싹 움츠리고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성당으로 항하는데 

내앞에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틀 비틀 위험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아슬아슬 위태롭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아저씨 

아저씨는 일어나려고 몇번 시도 했지만 

몸을 주체할 힘이 없는지 이내 포기하고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아 버렸다. 


그 날도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회식이 있어 11시 까지 들어온다는 남편이 

12시가 넘도록 전화 한통 없고 아무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다 경찰에 신고해야 겠다며 거실로 나갔는데 

띠리릭 하고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으로 한기를 몰고 들어오는 남편.

남편은 인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거실 소파에 몸을 던지듯 누우면 말했다. 

"회식하고 오는데 술을 엄청 마셨는지 길에서 쓰러졌나봐 

눈떠보니 oo가구점 앞이더라구 

야~~ 그런데 어떻게.. 깨우거나 신고해 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냐?

하마터면 동사할뻔 했다니까~~!"


나는 길가에 그대로 누워 힘없이 잠드는 아저씨를 보고 

그날의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의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누가 도와주겠지 하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저씨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남편처럼 동사의 위기에 처한 아저씨와 그날의 나처럼 불안해 할 가족들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작은 관심이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는 계절 

무관심이 아닌 관심으로 이 추운 겨울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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