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회사 동료가 화장실에서 나에게 물었다.
"대리님, 혹시 인터넷에 글 같은 거 써요?"
나는 아니라고 말을 하며, 어디서 그런 황당한 소문을 들었냐 반문했지만, 상대방은 그냥 그런 얘기를 들어서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하며, 소문의 출처가 어딘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총 세 번 회사 사람들에게 들켰다.
한 번은 내가 너무나도 미련하게 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였다.
그 당시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천 명도 되지 않았고, 가먼트 벤더에서 일하는 것을 철저하게 숨기고, 그림에도 매일 '서류' 라던지 '자료' 라던지 하는 애매한 단어만 써뒀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올린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 정말 신기하게도 그 회사에 나를 팔로우하는 직원이 있었고 그렇게 들키게 되었다.
나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고 그 친구는 정말 비밀로.... 해주었다.... 고 생각한다.
두 번째, 베트남에 와서는 친구도 가족도 없기 때문에 동료애가 더 돈독해졌는데, 그러다 보니 동료의 친구, 동료의 전 직장동료들과도 스스럼없이 만나서 놀면서 인맥을 쌓게 되었는데, 또 하필! 동료의 전 직장동료 중에 한 명이 나를 팔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친구에게도 비밀로 해달라 했고, 그 친구는 딱히 말할 사람도 없다며 비밀로 해주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비밀'에 집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나는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들은 내가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한 일기장 같은 개념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기장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일기장에는 기쁘고 웃겼던 일보다는 슬프고 화가 난 일이 더 많았다.
내가 더 긍정적으로 그림을 그려보고자 제목도 '어떻게든 즐거운 하루'로 바꾸고, 즐거운 얘기를 쥐어 짜내서 그려보려고 노력했음에도, 제목과는 무관하게 힘든 얘기가 많았던 이유는 나는 나의 인생을 즐거운 것처럼 포장하고 싶지 않았고, 내 일기장에 쓰는 것처럼 사실을 그리고 싶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열대 과일을 먹고, 휴양지에 놀러 가며, 루프탑 바에 가서 사람들과 만나는, 럭셔리한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담았지만, 내 그림 계정은 회사에서 열 받았던 일, 우울했던 일, 울었던 일을 담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그림에는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이 그 등장인물들을 추측하게 되는 것도 싫었고, 그럼 그 등장인물들에게 실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비록, 내가 정말 싫어하는 지민씨일지라도!
게다가 가끔 회사 상사도 적나라하게 까댔는데 그림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이 알려지면, 어떻게 보면 사람을 모독하고, 회사를 욕한 꼴이 되니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비밀이라고 해도 지켜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이 세상에 비밀은 정말 없는 것 같다.
나는 꼭 지키고 싶은 부분이어도 상대방에게는 '뭐 어때? 내가 보기에 별 일 아닌데?' 싶은 부분도 있다.
이번 세 번째 들키고 나서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갑자기 늘기 시작했고, 갑자기 불편한 마음이 생겨서 인스타그램을 부랴부랴 정지시켰다.
얼마 전에 김예지 작가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읽으면서 공감이 되었던 구절이 있다.
엄마와 청소일을 하는 작가가 어느 날 좀 창피한 기분이 들어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엄마가 너무나도 밝은 얼굴로 본인은 창피하지 않다고, 내가 떳떳하게 노동을 해서 돈을 버는데 뭐가 창피하냐고 하셨던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왜 내가 비밀로 해달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벌리고 소문을 낼 수가 있는지 화가 나서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다.
왜냐!!!!!!!!!!!!!!!!! 일단 나는 일기를 그렸을 뿐이고, 나 자신을 철저하게 숨겼는데 사람들이 소문을 냈을 뿐이고, 그렇다고 내가 횡령이나 불륜 같은 것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인스타그램에 그림으로 내 회사 생활을 기록했던 것뿐이니까!
그래도 그림을 다시 그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고, 그 사이에는 주말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