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카톡 하나만 봤을 뿐인데
*마라톤을 위해 달리기
‘마라톤을 위해 달리기’시리즈는 ‘1년에 최소 2번, 최대 N번 마라톤에 나가기’ 리추얼을 하며 경험한 마라톤을 리뷰해 보는 시리즈예요.
| 카톡 하나가 불러온 큰 파도
따분한 날이었다. 별일 없이 회사에서 모니터만 봤다. 모니터에 떠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며 퇴근까지 몇 시간 남았는지 체크하려던 찰나였다. 그때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카톡 알람이 떴다. ‘장수트레일레이스’를 완주 후, 대회장에서 마주쳤던 A였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A는 역동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썸네일로 뜨는 링크와 함께 대회 소식을 전했다. 카톡 내용을 보니 달리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장수에서 20km도 달렸으니, 금수산에서도 22km쯤이야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거리를 차근차근 키워볼 때야'라고 생각했다. 링크를 눌러 대회 신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상세 내용은 쓱 훑어보기만 하고 바로 대회 접수를 했다. 금수산이 어느 정도 높을지, 대회가 열리는8월 중순이 얼마나 더울지 가늠하지 않고 저지른 일이었다.
금수산에서 달려야 하는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나가는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슬슬 궁금해서 ‘금수산트레일러닝대회 후기’를 검색해 봤다.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으로 한 이야기는 ‘(매워서) 다시 못 갈 금수산’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맵길래 그러지?’ 나는 이번 여름에 실내에서만 운동해서 짐작이 가지 않았다. 어느 아웃도어 카페에서 금수산에 갈 때는 ‘등산 스틱을 꼭 가져가세요’라는 댓글을 보고 등산 스틱은 꼭 챙겨야겠다고 다짐만 할 뿐이었다.
대회 하루 전날이 되었다. 동네에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잘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대회에서 입을 옷, 트레일 베스트, 물병, 압박 붕대, 모자, 보조 배터리를 챙기며 ‘이제 정말 달리러 가는구나’ 두근거리는 마음을 느꼈다. 그 와중에 등산 스틱은 집에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혼란스러웠다. 등산 스틱의 행방은 차 트렁크에 있었다. 그 차는 후면카메라가 고장 나서 차 수리센터에 맡겨진 상황이었다. 그쯤 A에게 대회 안부 인사가 왔다. 여러 대화와 함께 ‘내일 봐요’라고 인사하며 대화를 끝맺으려던 중 A에게 등산 스틱이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A에게는 여분의 등산 스틱이 있었다. ‘등산용이라 조금 무거울 텐데 이거라도 괜찮을까요?’ A는 물었다. 나는 등산 스틱 무게와 상관없이 그저 하나의 안전장치가 생겨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A 덕분에 걱정을 덜었고 가장 중요한 알람을 맞췄다. 대회 당일, 여의나루역에서 5시 50분 셔틀을 타려면 4시에 깨야 했다. '늦게 깨서 못 가는 거 아닌가?'하는 불안한 마음에 오전 4시에 1분 단위로 다섯 개의 알람을 맞췄다. 그제서야 안심한 후, 내일을 위해 애써 눈을 감았다.
| 대회를 신청해야 연습한다고요?
‘대회를 신청해야 연습해요’ 이는 대회를 좋아하는 사람이 흔히 하는 이야기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직 달리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회의 장점을 나열하며 일단 대회를 신청해 보기를 권했다.
‘대회를 신청해도 연습 안 해요’ 나는 이번에 대회를 신청한 후, 연습을 하지 않았다. 이제 ‘대회를 신청해야 연습해요’라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을 잃었다. 금수산트레일러닝대회 22K를 덜컥 신청한 만큼 그만한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올해 여름은 상당히 더워서 실외 운동이 꺼려졌다. 이 더운 날 22K를 견딜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체력은 대회 날까지 만들지 못했다.
대회 날이 가까워질수록 회피할 수 없는 현실에 겁이 났다. 회사에서 점심 회식을 할 때 상사와 동료에게 ‘이번 주말에 금수산트레일러닝대회 나가요’라며 자신 있게 말했지만 자신 없었다. 제대로 된 대회 연습을 하지 않은 것을 스스로가 알기에 알쏭달쏭했다. 이 의아함이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