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심리치료 57| 추기경과 아버지
진해 경화동 성당 50주년 행사에 다녀와서 아버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깊은 인연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을 짓는 봉사와 헌신의 사업을 여러 차례하신 아버님을 하느님께선 빨리 보고 싶으셨는지 아니면 카르마의 무게를 덜어주시려고 하셨는지 삶의 마지막 길은 길고 긴 역경과 고통의 시간을 갖게 하셨습니다.
임종하시기 전까지 17년동안 병상생활을 하셨던 병환중의 아버님께선 몇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쓰러지시고 3년 뒤에 가장 극적인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아버님을 정말로 포기할 뻔했습니다. 보름을 혼수상태에 빠지셨을 때 국군통합병원 의사들은 이제는 진짜 ‘임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라고 했으니까요.
그때, 아버님과 가까이 지내시던 김수환 추기경께서 아버님께서 위중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와주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추기경님께서 의식을 잃고 누워 계신 아버님께 병자성사 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뒤에 저도 서서 온 마음으로 아버님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추기경님께선 의식을 마치신 다음 누워계신 아버님을 꼭 껴안고 아버님 귀에다 무어라 말씀하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다음 날, 아버님께선 눈을 번쩍 뜨셨습니다. 의식을 되찾으신 겁니다. 가족들은 물론,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던 주치의도 깜짝 놀랐습니다. 의사들이 3개월 밖에 못사신다는 말들을 허공에 날려 보내시고, 15년을 더 사시다가 칠순을 맞으시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아버님의 자녀들 6남매는 모두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했고, 귀여운 손자들까지 보셨습니다.
다시 생명을 얻으신 아버님을 위해 우리 가족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듯이 온 마음을 담아 아버님의 온 몸을 만지면서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있음을 알려드리고, 생명의 에너지가 멈추지 않도록 만져드리고 주물러 드렸습니다. 하늘을 움직인 사랑과 믿음, 기도, 그리고 접촉의 힘, 그 기적과도 같은 치유의 체험을 그때 저는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어렵고 힘이 들어 못살겠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이 나를 찾아오면 그때 그 마음으로 어루만져 줍니다. 마치 기도하듯 간절하게. 그리곤 하늘의 응답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사랑, 믿음, 기도, 그리고 접촉을 통한 보살핌.
돌아보면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시절에는 그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그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절망이라는 폭풍의 골짜기에서 희망으로 빛나는 언덕으로 오를 수 있게 하는 생명의 디딤돌 이름은 사랑, 믿음, 기도입니다. 그리고 가뿐하게 오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잡아주는 손길은 접촉을 통한 보살핌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인간의 접촉이란, 기도의 완성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시작이자 마지막 행위입니다.
-이 글은 저의 책 <닿는 순간 행복이 된다>(예담) 207-208쪽에도 실려 있는 글을 부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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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을 택해 우리가 온 바로 그곳, 본향 하늘로 가신 사랑하는 아버님, 그리고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옵니다. 그날은 제 아들이 태어났던 날이기도 합니다. 사랑으로 연결된 친밀한 관계 속에 얽힌 수많은 스토리텔링이 한편의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이어집니다.
그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Never ending story.
그것은 인간이 편집할 수 없는 신의 완벽한 작품.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그리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