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는_#상처

- 1화 -

by 구너

ABC초콜릿 껍질이 벌써 24개가 쌓였다. 하나를 더 집으려다 말았다. ‘살찔까 봐’란 걱정 때문이 아니다.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은 나에겐 통하지 않는 개소리라는 걸 ABC초콜릿 한 봉지를 다 먹어 갈 때 즈음에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 엄마가 보면 엄청 슬퍼하겠지만 상처를 내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엄마를 슬프게 하는 건 싫었지만 엄마를 슬프게 하는 게 나라는 생각이 더욱 힘들었다.


난 왜 이런 인간일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블루 같은 역할, 아니 그보다 훨씬 나쁜 역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슬픔이란 기분뿐인 존재가 된 것 같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휴대폰을 찾으려다 그만두었다.

무슨 요일이면 무슨 상관이람. 학교를 가지 않는 나에게 월요병 따윈 없었다. 매일 매시간이 병들고 아픈데, 월요병이 없다는 건 작은 기쁨조차 되지 못한다.


똑똑.

엄마인가 보다.


“소연이 자니?”


“…”


“들어가도 될까?”


“.. 응 들어와”


“오늘은 밥 먹을래? 어떻게 할래?”


“초콜릿 먹어서. 입맛이 없..”


꼬르륵.


역시 초콜릿 따위는 감정도 허기도 채울 수 없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누가 대체 우울할 때 초콜릿을 먹으래.

무용지물? 왠지 나랑 비슷한 신세다.


“배꼽시계만큼 정확한 게 없구나 하하. 어서 나와 밥 먹자”


“응”


엄마는 여러모로 존경스럽다. 학교생활도 엉망인 데다 공부도 더럽게 못하고 심지어 자해까지 했던 나를 예전과 다름없이 대해주었다. 심지어 그 시도 때도 없는 웃음을 잃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웃음이라는 건 내게 슬픔처럼 숙명 같은 것인가 보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개그우먼 같은 존재였고 아빠는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서 프러포즈했다고 말했었다. 젊었을 때부터 웃겼나 보다.

무튼 엄마를 보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다.


“고등어조림이 나왔습니다.”

엄마가 널찍하고 낮은 냄비를 식탁에 올려둔다.


“음 고향의 향기”


“어이구 이게 고춧가루 향이지 무슨~ 바다 비린내 없앤다고 미림도 넣었구먼.”

아빠가 수저를 놓다 말고 냄새를 킁킁 맡으며 한 마디 했는데, 핀잔을 먹는다.


아프고 난 뒤 우리 집 식탁은 더욱 풍성해졌다. 화려한 진수성찬 앞에 앉은 초라한 나는 어김없이 기쁘기보단 슬펐다.


“무슨 생각해? 어서 먹자. 이번엔 더 잘됐어”


“응”


맛있었다. 잠시 맛있다는 감정에만 몰두할 수 있을 만큼.

누가 식당 아줌마 아니랄까 봐.


“맛있네”


“그럼 누구 요린데”

아빠가 또 냉큼 끼어든다.


“그래 얼른 많이 먹어”


평소보다 한 두 숟갈 더 먹고는 샤워를 하고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똑똑.


“소연아~”


이번엔 아빠다.


“응”


“혹시 도장 나오는 거...”

아빠는 몇 주 전부터 아빠가 운영하는 검도관에서 운동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또 꺼내보려 하는 것이다.


난…

자신이 없다.


“안될 거 같아”


“아니면 석현 삼촌네 태권도장은 어떠니?”


“아빠...”


“그래 알겠어. 그럼 여행 가는 거라도 생각해봐”


“응”


*


2달 전, 나는 학교에서 앰뷸런스에 실려 난생처음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보았다. 흐리멍덩하게 누워있는 와중에도 아픈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 이마에 그렇게 붕대를 칭칭 감았는데도 또 새어 나오는 피가 새로운 붕대를 적시던 사람, 한쪽 손으로 나머지 한쪽 손을 움켜쥐고 겁에 질려 엉엉 울던 아이까지. 급히 치료해야 할 사람들이 넘치는 병실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놀란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와 내가 누운 환자용 침대에 달라붙었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내가 저 사람들보다 많이 다쳤나? 얼른 저 아이를 달래줘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몇 미리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큰일이 났을 거라고 했다. 빨리 발견한 게 다행이라고도 했다.

그리 웃음 많은 엄마가 소리 없이 펑펑 울고 있었다. 아빠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엄마를 위로하는 것인지, 본인의 놀란 가슴을 진정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손으론 이마를 짚고 한 손으로는 엄마 등을 계속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누가 안아주지? 아빠를 향해 손을 뻗었던 거 같은데 잠이 들었는지 이후 기억이 없다.


*

그 날 난 체육시간에 옷을 느릿느릿 갈아입는 척하며, 반 친구들이 먼저 체육관을 가길 바랐다. 혼자 남기 위해서. 영 몸을 움직일 만한 컨디션이 아니었고, 양호 선생님의 ‘너 또 왔니?’ 소리가 듣기 싫었다.

혼자 멍하게 앉아있다 우연히 옆 책상에 삐져나온 노란 커터 칼을 보았고, 스스로 상처를 냈다. 절대 죽을 생각은 없었다. 죽을 생각이었다면 학교에 있지 않았을 거니까. 날 위해 울어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지만 친구들에게 죽으면서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한 번, 아주 살짝 그었는데 쉽게 피가 났다. 상처를 보니 스스로 나를 벌 준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아팠다. 단단하고 차가운 쇠가 약해빠진 내 피부를 다치게 하는 건 너무 쉬워서… 뭐랄까, 기분이 참 나빴다.

나약한 인간. 한 번 더 피가 맺히고 있는 그 자리를 그었다. 이젠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상처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팔꿈치까지 흘러내린 피가 뚝 뚝 하고 교실 바닥에 떨어졌다. 슬리퍼로 스윽 문지르니 나무 바닥에 핏방울이 번졌다.


‘피 보이면 일이 커질 텐데…’


아차 싶어 내 교복 셔츠를 벗어 팔목을 나름대로 묶어봤다. 지혈을 하려고 꾹 눌렀더니 피가 더 빠르게 나왔다. 화장실에서 지혈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른 일어나 뛰었다. 나를 처음 발견한 친구는 화장실 입구에 내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건지 엄마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냐’ 묻지 않았다. 사실 난 왜 그랬는지 정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 상처는 머리에 생긴 것도 아닌데 몇 달 전 기억이 아득히 멀어져서 내가 왜 힘들어했는지, 스스로 상처를 낼 만큼 뭐 그리 아팠는지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다고 해서 마음이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뭔가 끔찍한 기억을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잘 숨겼지만 그 '뭔가'는 아주 날카로운 가시 같아서 숨겨봤자 마음속 어딘가를 계속 찌르는 것 같았다.


*


아빠의 계획에 따라 미세먼지 많은 4월 중순, 서울을 떠나 강릉을 가는 길.

한 달 이상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은 터라 차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했구나.


“강릉은 동쪽이라 미세먼지가 좀 덜할 거야”

아빠가 백미러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태백산맥이 인천에 있었으면 좋았을 걸”


아빠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지 내가 대답을 하자 놀라고도 기쁜 표정이다.


“우리 소연이가 학교 안 가는 덕에 차 안 막히는 평일에 이렇게 나들이도 가보고 좋다. 딸~ 우리 7월까지 쉬는 거 어때?”


“어머~ 무슨 7월까지야. 겨울 스키장도 가야지! 소연이가 스키 얼마나 좋아하는데”

듣고 있던 엄마가 한 술 더 거든다.


“푸. 엄마 나 스키 아니고 스노보드야.”


“아 맞다! 맞다! 우리 소연이는 스노 보드였지~”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 보이는 엄마 아빠를 보니 나도 썩 괜찮은 기분이다.


두 시간 반 즈음 달렸을까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 연인 단위로 바다에 사람이 꽤 보였다. 바다는 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은 것은 두려웠다.


굳이 표현하자면 저기 햇살이 아름답게 비치는 해변에 가면 사람들의 눈이 내 살갗을 태울 것만 같다.

난 결코 저 사람들 곁에 설 수 없는 뱀파이어.

소설 속 뱀파이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눈부시게 아름답지도 않다.


이런 딸 때문에 생전 처음 엄마가 ‘오션 프런트 뷰’를 예약했다.

엄마가 식당에서 팔목에 파스를 붙이면서 일주일 정도 일했을 때 벌 수 있는,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하면 다른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도 넓고 시원한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


바다를 보다 말고 엄마의 팔목을 한 번 쳐다봤다. 오늘도 파스가 붙어있다. 팔목에 파스를 붙인 엄마는 차마 내 팔목을 쳐다보지도 못한다. 역시 난 별로 좋은 딸이 아니다.


“와 좋다~”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테라스 의자에 앉으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래 엄마가 좋다니 뭐,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소연이 덕분에 아주 신혼여행 온 기분이네”


“이 양반이 주책스럽게, 웬 신혼여행이야? 가족여행이지”


“아니~ 화장실 욕조에 장미꽃을 가득 띄워놨길래.”


“그래~? 음.. 거… 참 욕조 쓸 일도 없는데 장미까지...”

엄마가 욕조 얘길 하며 내 눈치를 본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뭐야 엄마. 나 아픈 짓 안 해. 진부하게 욕조에선 더더욱.”


“아, 아니 엄마 말은… 저 장미는 또 언제 다 치우느냔 말이지...”


저녁은 간단하게 빵을 사 먹기로 했다.

강릉까지 와서 체인점 빵을 먹고 있다니.

아빠가 슬쩍 포장마차 가락국수 얘기를 꺼내 길래 두 분이서 오붓이 다녀오시라 했지만 엄마가 빵을 드시고 싶다고 했고 아빠는 가락국수도 빵도 밀가루라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가락국수 대신 빵을 한 가득 사 왔다. 나의 최애 빵인 피자빵도 있었다.


“엄마 나 피자빵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


“응. 케첩을 좋아해서 그런가 피자빵, 소시지빵 이런 케첩이랑 잘 어울리는 빵들을 많이 사달라고 했지.”


“학교 매점에서도 피자빵 팔면 좋을 텐데. 몽쉘 같은 거 말고”


“.. 으응.. 그러게, 왜 학교에서는 몽쉘만 판다니”


학교 얘길 해서 놀라셨나?

그래. 학교...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일까 이렇게 헤어지는 곳일까.


“나 학교 다시 언제 가지?”


“음?? 너 웡항때.”


입에 크림빵을 한 가득 물고는 웅얼거리며 엄마가 대답했다.


“큭 엄마 단호하네. 학교가 무슨 시장이야? 가고 싶을 때 가게”


“너 학교 힘들다며. 엄마는 네가 안 힘든 게 더 중요해.”


“아빠도 네가 규칙적인 생활만 하면 중졸이어도 변함없이 사랑한다. 아빠 따라서 운동만 좀 하면 더…”


“여보.”


“아 알았어. 강요가 아니라…”


“엄마, 나 상처 좀 옅어지면.. 학교 다시 가볼까?”


“... 좋지...”


“갈 수 있겠지?”


“그럼~! 네가 원한다면.”


엄마는 빵 껍질을 치우는 척하면서 눈물을 감춘다. 그래도 반 즈음은 기쁨의 눈물이려나.


*


쏴아아-

파도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베란다에 아빠의 실루엣이 얼핏 보인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짙은 어둠. 새벽인 듯하다.

찬 공기와 함께, 내가 끊고 아빠가 시작한 담배냄새가 들어온다.


아빠와 반대로, 난 내 상처가 생기고 난 뒤 신기하게 담배를 끊을 수 있었다.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담배도 친구가 건네준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나쁘다고 광고를 하면서도, 골라먹는 아이스크림 숫자 이상으로 다양한 맛을 만든다는 것이 궁금했다. 그건 피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상쇄시키는 판매 전략이다.


어쨌든, 난 나에게 맞는 꿈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워서 대신 나에게 맞는 담배를 찾았다. 그 과정은 힘든 꿈 찾기와 달리 참 쉽고도 매력적이었다. 맛이라고 해야 할까 향이라고 해야 할까. 대게는 싫었지만 개중 나름 고소하다 생각될 법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 향을 발견하면 나에게 맞는 ‘내 것’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상처가 생긴 뒤 모든 담배 냄새가 역겨웠다. 좀 난감한 상황이지만 어찌 됐건 난 그 어려운 금연에 성공한 셈이다.

잘 난 사람들도 못하는 금연에도 성공했는데 금연 외엔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들이 너무 힘들다.


무엇보다 힘든 건 나 스스로가 너무 싫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