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 보렴”
“저희 오빠가 죽었거든요.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근데 요즘 오빠 생각이 많이 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
“그냥 보고 싶은 거겠죠?”
“… 보고 싶지.”
“네?”
“아 아니. 보고 싶겠지. 보고 싶고말고. 친오빠 일 거 아니냐.”
“그쵸.”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건… 한 두 해 지난다고 쉬이 잊히는 게 아니니까. 보고 싶은 게 당연한 거다.”
“그런데 한동안 이렇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진 않았거든요…”
“그래... 그럼 오빠 생각나는 거 말고, 혹시 갑자기 다른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건 없니?”
“글쎄요. 딱히.”
“밖엔 잘 나가고?”
“그냥 약 먹으니깐 슈퍼에 잠시 나갔다 오는 거도 할 수 있고, 사람이 너무 많지 않으면 잠깐 나가는 건 괜찮은데, 졸려요. 그냥 잠이 좀 많아졌어요. 여기 다니기 전엔 잠을 잘 못 잤었거든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긴 했지만... 근데 요즘은 잠은 잘 오는데 오빠 생각이 예전보다 많이 나서 슬퍼요. 우울함은 여전해요.”
“… 그래. 그럼 수면 치료를 곧 병행해도 되겠구나. 공황장애는 많이 안정된 거 같다.”
“네. 그럼 언제 올까요?”
“일주일 뒤에 오면 돼.”
“같은 시간에 올게요.”
“그래. 잘 가렴. 약은 계속 잘 챙겨 먹고.”
“네. 안녕히 계세요.”
치료받은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의사는 여전히 가운을 입지 않았고 난 더 이상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들어 난 의사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고, 의사는 딸 벌 되는 나에게 말을 낮췄다. 처음엔 한사코 거부했었는데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냐고, 선생님이 자꾸 높임말을 쓰면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그다음 상담시간부터 말을 낮췄다. 그랬지만 묘한 거리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내가 어리지만 손님인 환자니 예의를 차리려 하는 듯했고, 난 똑똑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멀게 느끼는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생각이 깊은 분 같았다. 가끔 상담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듯 다른 생각에 깊게 잠길 때가 있는 듯했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나에게 잘 공감해주고 눈가도 자주 촉촉해지셨다.
*
오늘은 수면치료를 받는 날이다.
나는 병원에 누워 꿈을 꿨고 꿈에서 환자복을 벗은 오빠를 만났다. 오빠는 놀이기구를 타자고 했다. 오빠는 나와 함께 놀이기구를 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빠가 놀이기구를 잘 탈 때는 내 키가 너무 작거나 겁이 너무 많았다. 내가 놀이기구를 잘 타게 되었을 때 오빠는 놀이기구 대신 휠체어를 타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놀이기구 타는 건 남겨둔 숙제 같은 거였다. ‘다음에 꼭 타러 가자’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의 약속이었다. 아프지 말라는 약속, 내일 또 보자는 약속, 놀이기구를 탈 수 있을 만큼 건강해 지라는 약속, 건강해져서 옆에 있어 주겠다는 약속, 나를 떠나지 말라는 약속.
꿈속에서 오빠와 함께 회전목마를 탄 뒤에 롤러코스터도 탔다. 롤러코스터는 회전목마보다 바람이 더 많이 느껴지는 놀이기구였고 바람이 너무 센 나머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눈을 감는 건 반칙이야!”
오빠도 함께 눈을 부릅뜨고 우리는 서로 휘날리는 눈물을 보며 깔깔 웃었다.
도무지 끝이 없는 듯 한 롤러코스터. 더욱 거세진 바람 때문일까. 눈물은 점점 더 많이 났고 눈이 따가워 엉엉 울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제야 꿈인 걸 확신했다.
의사 선생님이 닦아 주시겠지.
수면치료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꿈에서 내 나이는 고무줄이었다. 나는 갑자기 다섯 살이었다가 열 살이었다가 열여덟 살 이기도 했다. 내 나이가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거려도 오빠는 열여덟 그 나이 그대로였다.
“선생님, 오빠 꿈을 꾸는 게 뭔가 치료가 되는 거예요?”
수면치료라길래 잠자는 내가 헛소리를 하면 그 헛소리를 분석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달콤한 꿈이라니. 얼마든지 치료받고 싶었지만 이렇게 행복한 치료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럼. 너에게 오빠는 특별한 존재잖니. 넌 지금 상실감이 크단다.”
“상실감이요?”
“무언가 너무나 소중한 걸 잃었을 때 사람들은 종종 충격을 받거든”
“근데 오빠가 죽은 건 몇 년 전이에요. 왜 이제야…”
“뭔가 새로운 충격이 그 상처를 건드렸을 수도 있고, 그 상처가 사실은 다 낫지 않았는데 네가 꽁꽁 숨겼던 것일 수도 있어”
“왜 엄마, 아빠는 극복한 걸 저만 아직도 이러고 있을까요?”
“넌 엄마 아빠보다 더 어릴 때 겪은 일이잖니. 사랑의 크기가 충격의 크기에 어느 정도 비례 하긴 하겠지만 그걸 남과 비교하기는 어려운 일이야. 부모님의 충격이 더 적었던 게 아니라 네가 그걸 막을 힘이 좀 더 부족했을 수도 있는 거지.”
“아… 결국 제가 약해서 그런 거네요”
“어렸잖니. 감당하기 버거웠을 거야. 그나저나 혹시 자해하기 전 기억은 아직 전혀 나지 않니?”
“네… 똑같아요. 그냥 어렴풋이 학교 수업시간에 전 멍하게 창밖을 보고 있었던 거 같을 뿐 이에요.”
“음… 그렇구나. 네 오빠와 관련해서 네가 표현하지 않고 숨겨둔 감정이 있으면 계속 응어리가 남아 병이 될 수 있는 거야.”
“숨겨둔 감정이요?”
“넌 네 스스로가 제일 싫다고 했지?”
“네..”
“차라리 벌 받고 싶단 마음도 든다고 했고.”
“네.”
“그럼 오빠의 죽음에 대해 네가 너도 모르게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어. 형제자매는 그런 감정을 쉽게 느끼기도 하거든.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혹은 같은 사건 현장에 있었는데 한 명은 멀쩡히 살아있고 한 명은 죽는 일이 생기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죄책감이 생길 수도 있어.”
“아... 그렇구나. 비슷한 생각은 했어요. 오빠는 공부를 잘했거든요.”
“공부? 음… 부모님이 편애한 기억이 있니?”
“아니요. 부모님은 제가 공부 못해도 상관없다고 하시는데... 선생님들이요. 같은 중학교를 나왔거든요. 오빠는 모범생에 공부도 상위권이라 대부분 선생님들께 예쁨을 받았나 봐요. 전 반대... 그러다 오빠도 가르쳤던 한 선생님께 혼난 적이 있었는데 ‘하필 그렇게 모범생인 정연이가 아프고...’ 하면서 말끝을 흐리시는 걸 듣는데 그게 ‘왜 네가 아니라 오빠가 아프니’처럼 들리긴 했어요. 오빠가 아픈 건 내가 속상한 건데.”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리고 오빠가 너무 착하고 가족 생각을 많이 하니깐 저 조차 왜 이렇게 착한 오빠를 괴롭히는 건지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너도 오빠 대신 네가 아픈 게 더 낫다고 생각한 거니?”
“… 사실 그렇게까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진 못했어요. 오히려 오빠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아프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미안해서 죄책감 같은 게 박혀버렸을까요? 하… 근데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예요. 너무너무 아파 보였거든요. 제가 눈앞에 보이면 안 아픈 척하는 게 혹시 더 힘들까 봐 멀리서 몇 번 지켜봤어요. 정말 아파했어요. 폐암은 특히 아프데요. 다른 위암... 같은 거보다? 숨 쉬는 게 힘든 거니까. 아파도 숨은 쉬어야 하고...”
“폐암이었구나. 안됐구나.”
“울어도 돼요?”
“그래. 그리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
봄에 봤던 동해 바다를 다시 보고 싶었다. 이번엔 맨발로 바닷물을 느끼고 올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느껴진다.
“아빠 우리 바다 또 가는 거 어때?”
“응?”
검도복을 개던 아빠가 화들짝 놀라 쳐다본다.
“나 이제 사람들 많은 시간에도 밖에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바다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아니 꼭 갈 필요는 없는데, 엄마 아빠 시간 되면..”
“가야지!”
“그럼 가야지~!”
어느새 엄마가 옆에 와서 활짝 웃고 있다.
“소연이 너 원래 바다 말고 산을 더 좋아했었는데, 그 날 꽤 재미있었나 보다?”
“응. 그날도 좋았고, 민정이가 바다 얘길 많이 했잖아.”
“뭐…? 민정이? 민정이가 바다를 좋아했어?”
“응. 걔가 바다 얘길 하도 많이 해서 그 뒤로 바다 사진을 많이 봤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바다가 좋아졌나 봐.”
엄마, 아빠는 적잖이 놀란 눈치다. 내가 바다를 가자고 한 게 그렇게 신기한 일인가.
“아.. 아니 아빠는 소, 소연이가 친구 얘길 하는 게 오랜만이라서...”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아빠가 변명 같은 말을 내뱉는다. 엄마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나.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껴 약을 찾았다.
“어, 그래그래. 너 약 먹을 시간이다. 식탁 위에 있지?”
“응. 엄마 일 빠지기 좀 어려우면 이번엔 토요일에 가자. 일요일도 괜찮고. 어차피 당일치기로 갔다 와도 되잖아.”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을 수도 있으니깐 목요일이나 금요일 중에 시간을 내보자.”
“응 엄마도 이모들한테 얘기하면 될 거야.”
“응. 알겠어요. 나 약 먹으면 졸려. 엄마, 아빠도 안녕히 주무세요.”
“응 그래. 근데 소연아... 혹시 너 학교생활 다시 기억나는 게 있어?”
“음... 아니. 그대로야.”
“그래. 잘 자. 우리 딸.”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우니 엄마, 아빠가 뭐라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했지만 이불이 너무 포근했다.
하아암~
그래 이불 밖은 위험해. 자자.
내일은 의사 선생님께 수면제는 좀 빼 달라고 해야겠다. 도무지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