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한 사람 당 한 개씩 배낭을 메었다. 이번에는 기차 여행이기 때문이다. 기차여행에 걸맞게 계란도 다섯 개 삶았고, 목 막힐 것을 대비해 식혜도 챙겼다. 똑같이 긴 열차에 몸을 싣는 것인데 지하철과 기차는 너무 달랐다. 땅 아래와 땅 위가 달랐고 사람들의 표정이 달랐다. 지하철은 피곤한 얼굴들이 많았지만 기차를 탄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보는 건 싫지 않았다. 물론 난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더 컸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관심을 받고 싶지도 않아서 큼지막한 헤드폰을 꼈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면 낯선 풍경도 친근해진다. 내 옆엔 엄마가 계란을 까고 있었고 아빠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오빠가 있었다면 아빠도 혼자이지 않았을 텐데. 그 옆에 누가 앉든 말이다. 혹은 4인석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며 끊이지 않는 수다를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름의 바다는 그때와 달랐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고 여름의 태양빛을 받은 바다는 자신의 계절을 맞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물결만큼 반짝이는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아빠의 커다란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본격적인 휴가철은 아니라서 그늘 장사꾼도 없었다.
“아빠, 오빠도 산을 더 좋아했어요? 바다가 이렇게 예쁜데?”
“응. 우리 집에서 바다를 더 좋아하는 건 아빠 혼자였지”
“그랬구나. 나도 이제 바다도 산만큼 좋아요.”
“같은 편이 생겨서 좋네.”
“진짜 이쁘다. 그렇지?”
엄마가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아빠에게 건네며 내 옆에 앉았다.
“응 엄마. 민정이도 보면 엄청 좋아하겠다.”
“그러게. 민정이 보고 싶니?”
“응 같이 바다도 오고 싶고”
“그래 그러면 정말 좋겠다. 뭐 또 생각나는 친구들 있어?”
“음… 글쎄요. 민정이는 워낙 친했으니까 문득문득 짧게는 기억이 나. 그냥 영화 장면 장면이 떠오르는 거처럼?”
“다른 친구들은 안 보고 싶어?”
“그다지. 민정이만 보고 싶어. 애들은 안 봐도 그만인데 학교라는 풍경이 쪼금 그리운 거 같기도 해.”
“다행이네. 가고 싶어 지면 언제든 말해.”
“응. 의사 선생님이랑 얘기해보고.”
*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몇 달 전만 해도 학교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었다. 근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질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해리성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고 했다. 병원에 실려 간 뒤 자퇴서를 쓰려다 엄마의 극구 만류로 휴학 신청을 한 일은 기억나는데, 그 사건 전의 고등학교 생활이 통째로 날아간 것 같다. 난 누구였고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왜 학교 가는 게 두려운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는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즈음부터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나? 하고 생각해봤는데 그랬을 것 같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싸움을 무척 잘했고, 나에겐 둘도 없는 친구도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유민정이라는 내 친구가 있었단 말이다. 그 외에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면서 잘 지냈던 친구들 이름도 기억난다. 박선하, 서지윤.
반대로 친하게 지내지 말걸 하고 후회되는 친구들 이름도 기억이 난다. 천혜진, 민희영, 그리고 얘네를 따르는 몇 명의 무리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혜진이와 희영이는 같은 중학교도 나와서 그런지 다른 애들보다 더 잘 기억난다. 고등학교에서는 이 친구들과 멀어진 뒤로 학교생활이 조금 껄끄러워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학교가 두렵진 않았다. 아빠의 유전자 덕에 여자지만 내 주먹은 다부졌고, 검도관에 꾸준히 다니면서 이 근방 나보다 싸움을 잘하는 여고생은 드문 것이 도움이 됐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 학교가 두려웠을까? 난 왜 내가 이토록 싫어졌을까? 너무 궁금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해주니 더 궁금해지긴 했지만.
이유가 생각나지 않아서 인지 다시 학교가 슬슬 그리워졌다. 집에만 있는 게 조금씩 지겨워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민정이가 보고 싶었다.
바다에서 돌아와 구석에 쳐 박혀 있던 폰을 켰다. 오랜만에 전기 맛을 본 폰은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는 듯 화면을 껌뻑 껌뻑거렸다. 곧이어 깨톡 깨톡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 몇몇이 걱정하는 문자가 와있었는데 이상하게 민정이 문자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유민정이 날 안 보고 싶어 할리가 없는데...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우선은 약을 먹고 자야겠다. 자고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정말 맑을까?) 민정이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수면제를 줄여달라고 당당하게 말하고선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찾고 있는 꼴이라니. 오늘도 나에게 조소를 보낸다.
*
민정이가 며칠 째 답이 없다.
‘잘 지내?’
내 멘트가 너무 '구 남친' 같았나.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기간, 민정이랑 혹시 싸운 걸까? 나라는 인간이 베프에게도 상처를 줬을까?
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 말리고 수건으로 한두 번 더 툭툭 쳐냈다. 빨리 병원에 가고 싶다. 선생님이 ‘이제 학교 가도 되겠어’라고 말해주길 바라며 오늘도 난 학교가 아닌 병원으로 출발했다.
“선생님 저 이제 학교 가고 싶어요.”
간단한 질의응답이 끝나고 난 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좋네요.”
“가도 될까요?”
“가장 중요한 건 네 의지야.”
“그럼 갈래요. 친구가 있는데 연락이 안 돼서 궁금해요.”
“친한 친구니?”
“베프예요. 절친.”
“음.. 혹시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유민정이요.”
“그렇구나. 절친이었다고?”
“네. 우린 서로한테 비밀이 없었어요. 어른스럽게 말하면 서로를 의지 한달까… 뭐 그런.”
“서로 의지라. 하. 재미있군.”
“네? 뭐가요?”
비웃는 듯한 선생님의 표정에 기분이 나빠졌다. 뭐가 웃기단 거지.
“서로 의지하는 존재가 있다면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네?? 뭐라고요?”
“아, 조금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미안하다.”
“지금 제 친구를 욕하시는 거예요? 아님 제가 여기 있는 게 잘못됐다고 말하시는 거예요? 둘 중 뭐라 해도 저를 치료해 주시는 분이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미안하다. 난 그냥 안타까워... 너무 안타까워 그래서... 조금 신경이 날카로워졌어. 인정해. 미안하구나.”
“제가 그렇게 안타까워요? 이렇게 보여도... 저도 친구 있어요. 진짜 친구요.”
“민정이 말이냐? 그래... 학교에 다시 가보자. 그게 좋겠어.”
*
난 복학 신청을 했고, 선생님의 눈빛엔 환영 보단 걱정거리가 늘었다는 것에 가까운 억지웃음이 서려 있었지만 복학 통지서에는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미리 연습해 둔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반기거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짜 날 걱정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나도 미리 준비한 어색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안녕. 걱정시켜서 미안해.”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민희영과 그 패거리들은 어김없이 우리 반을 찾아왔다.
“진짜 왔네.”
희영이 먼저 인사인지 감탄사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뭐냐. 왜 인사를 안 해?”
“놔둬. 이 새끼 병신 됐다더니 진짠가 보네. 우리 쳐다보지도 못하잖아.”
“야 조심해~ 너 그렇게 깝치다 옛날처럼 처맞을라고. 크큭”
“미친년아 넌 좀 닥쳐. 지소연, 희영이가 인사하잖아. 대답해”
자기들끼리 시답지 않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시시덕 거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조금씩 가슴이 답답해졌다. 약을 먹고 싶었지만 얘네 앞에서 약을 꺼내고 싶지 않아 참았다.
“...ㅅ발 시끄러워...”
“오~ 이년 정신 나갔다더니 성깔은 안 죽었네~”
“이야~ 오자마자 한판 뜨냐?”
가슴이 미친 듯이 조여 오는 느낌을 가까스로 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희영이를 쏘아보며 나직이 욕을 뱉자, 옆에 선 애들이 더 난리다.
“왜 왔냐? 장애인.”
“큭. 뭐? 장애인?”
“너 공황장애 라던데? 그럼 장애인 아니냐?”
“하...”
주먹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감정이 앞서면 또 내가 싫어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민희영 좋게 말할 때 꺼져라.”
“와~ 오줌 지리겠네”
“가만히 있어 김주희. 야 지소연, 너 다시 우리랑 같이 다닐 거면 판단 잘해.”
희영이가 나를 비아냥거리는 주희라는 아이를 제지시키더니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풉”
실제로 웃겼다. 내가 도대체 무슨 판단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누군지도 잘 판단이 되지 않는데.
“웃어?”
“응 재밌네. 하하. 네 말대로 나 장애인이라 요새 잘 못 웃어. 근데 오랜만에 웃었다. 네 덕분.”
“씨발 조울증이냐? 적당히 해라.”
“많이 컸네 민희영. 이제 나 없다고 저년들이 전부 네 말 듣냐?”
긴장을 풀기 위해 목을 돌렸고 그들의 눈엔 긴장이 아닌 몸을 풀기 위한 준비 작업처럼 보이길 바랐다.
“…”
아무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어느 정도 먹힌 것 같다. 세게 나가보자.
“민희영. 니. 가. 나. 랑. 싸우게?”
또다시 침묵.
제대로 먹혔다.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살짝 손목도 털어보았다. 분위기가 더 싸하게 굳어갔다.
그래 이런 거다. 몸이 기억하는 일.
본능 혹은 트라우마라 불리는 것이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조폭 영화를 보면 실제로 싸우면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다 늙어 빠진 보스에게 벌벌 떨며 머리를 숙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사람의 경험이라는 건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 다행이었다. 난 다쳤지만 아직 사자였다.
일촉즉발.
이제 누가 먼저 치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된 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싸우기도 싫고 친구들이랑 잘 지내기로 엄마와 약속도 했다. 얘네가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민희영 나 너랑 싸울 생각도 없고, 너네랑 같이 다닐 생각도 없다. 건드리지만 마라. 그냥 서로 respect 하자. 굳이 순위 가려야겠냐. 네가 짱 먹고 난 편하게 학교 좀 다니...”
타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영이가 필통을 집어 들고 바닥으로 내팽겨 치더니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내 필통의 연필과 볼펜이 힘없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우리는 서로를 대신해 연필을 희생시키고 나서 신경전은 마무리됐다.
*
희영이는 중학교 때부터 날 따라다니던 친구였다. 내가 좋아서라기 보단 희영이가 따라다니던 친구를 내가 밟았기 때문이고, 난 누구에게 밟히지 않을 만큼 강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땐 그런 게 강한 거라 믿었다. 희영이는 강한 사람과 적이 되지 않는 게 좁디좁은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얼마나 편한 일인지를 잘 아는 영악한 유형이었다. 강자에게 달콤한 말을 잘했고, 난 어리석게 그 달콤함에 취했었다.
중2병이 발병 할 때 즈음, 소위 잘 나가는 그룹에서 한 친구를 ‘뚱녀’라 부르며 괴롭혔다. 뚱녀라 불리는 친구가 예전에 친했던 친구였다는 게 동기이기도 했지만 뚱뚱한 사람을 뚱녀라 부르는 게 짜증이 났다. 거기엔 뚱뚱함이 죄라는 잘못된 판단이 들어가 있었고, 뚱뚱한 사람을 추악하다고 단정할수록 예쁜 몸매들이 더 찬양받을 수 있다는 바보 같은 믿음이 있었다.
친오빠를 잃고 어디에나 버럭버럭 분풀이를 잘했던 난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친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보단 분풀이 상대가 필요했었던 것뿐이지만 난 단숨에 ‘정의의 사도’가 되었다. 내 주먹에는 평범한 학생들의 무언의 지지가 실리고 그 이야기는 유명세를 타 난 인기를 누렸다. 여기저기 치고받는 싸움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난 소위 싸움에서 1등이 되어 있었다. 많은 실전에서 날 도와주던 희영이의 실력도 꽤 많이 늘어 대부분의 친구들은 우리를 무서워하거나 동경했다.
학교 권력의 맛을 본 희영이는 그칠 줄 몰랐고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 즐겼다. 희영이의 즐거움이 커질 동안 난 점점 지치고 외로워졌다. 점차 싸움을 꺼려하는 내 모습이 희영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는지 희영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와 한 번 뒹굴었다. 결론은 나의 압승.
그때의 패배를 희영이는 지금도 기억하는 거다.
내심 같은 고등학교가 안 되길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하늘은 내 소망을 외면했고, 우린 고등학교에서도 함께 다녔다.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희영이는 점점 더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 담배를 자주 했고 무서운 오빠들을 만나고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뭔지 모를 책임감으로 희영이를 말려보려 했지만 불가능이었다. 점차 나는 희영이를 피하고 희영이는 나를 무리에서 빼내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갔다.
그 무리에서 빠지는 것은 나의 희망사항이기도 해서 점차 그 무리와 사이가 나빠졌다. 그 결과 난 ‘노는 무리’와 ‘평범한 친구’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괴롭힐 수 없는 왕따’가 되어있었다. 변함없는 건 외롭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난 민정이를 만났다. 우리 반 공부 1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