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는_#유민정

- 5화 -

by 구너

민정이는 작년, 그러니까 고등학교의 첫 모의고사가 끝난 뒤에야 ‘얘도 우리 반이었지’할 만큼 뭐랄까 존재감이 없었다. 딱히 괴롭힘 당하는 입장도 아니었지만 화려하거나 나대지도 않아서 누군가 “유민정이 누구야?” 하고 물어보면 “누구?”하고 꼭 되묻게 되는, 그래서 “걔가 첫 모의고사 1등 했데” 하면 그제야 “아 걔~?” 하고 답하게 되는 그런 친구였다.


민정이는 시험이 끝난 뒤에 모르는 걸 집요하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도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필기를 봐도 되냐는 몇몇 애들의 부탁도 싫은 표정 없이 들어주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몰랐다. 민정이의 표정이 외로움이라는 걸. 하지만 나는 내 표정과 닮은 민정이의 표정을 알고 있었다. 괴롭힐 수 없는 왕따와 자발적 왕따는 어쨌든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가까워진 장소는 양호실이었다. 몸 쓰는 게 지겨웠던 나와 모태 몸치인 민정이는 체육시간이 되면 종종 양호실에 들렀다. 몇 번 마주쳐도 멋쩍게 웃으며 각자 침대에서 시간을 때우다 반으로 되돌아가곤 했는데, 그날은 양호실 문이 잠겨있었다.


“유민정 맞지?”


“어? 어어.”


“넌 내 이름 알아?”


“알지. 지소연.”


“오 내 이름 아네?”


“유명하잖아. 하하”


“근데... 너 진짜 아파?”


“응?”


“음... 진짜 아파서 양호실 온 거 아니면 우리 뒷산 갈래?”


“풉”


“왜 웃어?”


“.. 좋아.”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양호실에서 만나지 않았고, 넓고 탁 트인 학교 뒷산에서 서로를 알아갔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난 그녀의 반전 매력에 빠져들었다.


“자.”


“엥?”


“뭐야, 너 안 피워?”


“응.”


“그래? 의외다.”


“야 네가 더 의외야! 학교에선 세상 범생이더니.”


“헤헤. 넌 피지 마. 이거 못 끊어.”


“큭큭. 유민정 진짜 웃긴다.”


“(후-) 우리 일몰까지 보고 갈래?”


“오늘?”


“응. 이제 많이 따듯해졌잖아.”


“나 추운 거 싫어. 아직 밤은 쌀쌀한데...”


“아 왜에~ 내가 일몰 그려줄게. 나 색연필 챙겨 왔단 말이야.”


그녀의 진짜 모습은 우리 둘만의 비밀 같았지만 난 이걸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모습이었고 표정이었다.

겉모습은 모범생 그 자체였던 민정이는 친구들 사이에서와 달리 선생님들에게는 인기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사랑이라는 건 풋사랑보다 얕고 돈주앙의 사랑보다도 가벼운 것이라서 열일곱의 깊고 큰 마음 허기를 채울 수 없었다. 우리는 시험지 점수로부터 받은 더러운 사랑은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민정이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나는 민정이를 좋아했고, 민정이도 나를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를 한 인간으로서 사랑했다. 동성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면 바로 레즈냐고 묻는 어른들보다 더. 더. 더. 어른스러운 사랑이었다.


민정이는 희영이나 혜진이와 달리 센스 있게 말하는 솜씨가 있었다. 난 민정이가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게 많아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민정이와 친하게 지냈을 때 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거 같다. 책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우린 친해질수록 더욱 자주 학교 뒷산을 올랐고 민정이는 모범생답게 소주가 아닌 주스를 마셨는데, 민정이는 그 주스를 마실 때 ‘노을을 마시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난 민정이의 그런 표현들이 좋았다. 때론 주스 대신 담배 연기를 마셨지만, 반듯하게 다림질한 민정이의 셔츠는 언제나 단정했고 머리는 촌스러울 정도로 정갈했다. 하지만 난 그 머리를 보고 촌스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며느리 같은 머리를 하고 비싼 헤드폰에서 샹송을 듣는 민정이가 내 눈엔 뭔가 모르게 힙해 보였다. 난 그런 민정이가 재밌었고, 신비롭고, 좋았다.


민정이와 있을 때 나는 싸움을 잘하는 것을 은근하게 내세울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자꾸만 사라지는 들쑥날쑥한 한쪽 쌍꺼풀을 위태롭게 풀로 잡아두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난 민정이와 있을 때의 내 모습이 좋았고 그런 나를 민정이도 좋아해 주어서 또 좋았다.

키스는커녕 손을 잡지 않아도 친구의 사랑은 이렇게 깊고 진하고 또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희영이 무리들이 떠나고 점심시간이 지나 야간 자율학습시간이 시작할 때 까지도 민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민정이가 나 때문에 상처 받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내가 상처를 줬겠지. 어떤 짓을 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차마 민정이의 안부를 물어볼 수가 없다.


둘도 없던 친구에게, 나는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사람이 조금 무섭다는 핑계로 몇 달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짓이다. 뭐 물론 실제로 난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민정이 입장에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잠수를 탄 황당한 친구인 거다.


*


민정이가 없는 뒷산은 그저 황량한 산일 뿐이라서 난 정규수업이 끝난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깜깜한 집안에 불을 켰는데, 엄마 아빠가 소리를 질러 깜짝 놀랐다.


“짜란!”


“엄마야! 깜짝이야.”


식탁엔 내가 좋아하는 조각 케이크가 여러 종류 놓여있었다.


“서프라이즈~!!!”


“다시 학교 가보니 어때? 친구들하고는 잘 지냈어?”


“선생님들은 잘해 주셔?”


“수업은 재미있었니? 어머 여보 우리 하나씩 물어요~”

엄마는 상기된 얼굴로 본인이 더 많은 질문 하면서 아빠를 말리는 투다.


“응 뭐…”


“그래 첫술에 어떻게 배불러. 이제 계속 다니면 재밌어질 거야.”


“그쵸.”


“어서 손 씻고 와. 케이크 먹자.”


케이크를 먹기 전에 폰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수도 없이 확인했지만 민정이의 연락은 오지 않는다.


“누구 연락 기다리는 거야?”


“아, 아니… 그냥 친구들한테 깨톡도 다시 오고 그러네.”


“그래. 잘됐다 소연아. 엄마는 진짜 네가 심리치료받길 잘한 거 같아. 아빠가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렸는데, 그거야 모르는 사람들 얘기지. 우리 사회가 심리치료받는 거에 대해서 너무 편협하잖니. 현대인들은 다 정신 질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더라. 너네 아빠만 봐도 그렇잖아. 저 청소 습관이랑 잔소리가 결벽증 아니고 뭐겠니.”


“아니 갑자기 왜 내 얘기야?”


“오늘도 싱크대 물때 있다고 뭐라 했잖아요~”


“물때를 물때라 하였는데 물때 있는 걸 물때 있다 하지 말라 하시면…”


“어우 소연아, 아빤 왜 이렇게 한 결 같이 재미가 없냐 정말?”


아빠에게 야유를 보냈지만 엄마는 진짜 신이 나 보였다. 본인이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도 아닌데 젊음을 얻은 것 마냥 활기가 넘쳤다. 내가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거라니. 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소박하고 소박한 착한 사람들인 거 같다.


*

- 따라라란 따라란 따라리리딴다단 -


계속되는 수면치료의 효과가 좋은 건지 학교 수업 종소리가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공부엔 관심도 재능도 없었던 터라 선생님들도 내가 수업시간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수면제는 많이 줄였는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잠은 늘었다. 정말이지, 책이 가장 부작용 없는 수면제라는 건 학계 정설이다.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것 혹은 대놓고 얼굴을 파묻고 한 숨 자더라도 딱히 혼내는 사람이 없다.

익숙하다. 외로운 자유.


*


이젠 의사 선생님과 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감정에 대해서 얘기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는 최근 들어 가장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민정이와 만난 것이다!


“그래. 친구를 만났다고?”


“네! 드디어 보고 싶던 친구를 만났어요.”


“나도 보고 싶구나.”


“그래요? 사진 보여 드릴게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있니?”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늘 지갑에 넣고 다녀서요.”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여기요.”


선생님은 안경을 올리곤 사진을 지긋이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꿈틀 대는 것 같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돌려주셨다.


“예쁘죠?”


“그러네. 친해 보이는구나. 이 아이랑은 어떻게 다시 만났니?”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수업 시간 종소리가 들려 본격적으로 자려고 엎드렸어요. 아, 자더라도 선생님들이 뭐라 안 하세요.”


“그래. 괜찮아. 말해봐.”


“근데 그게 수업시간 종이 아니라 쉬는 시간 종이 었나 봐요.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거예요. 운동장에 옆 학교 남자애들 몇 명이 왔더라고요. 전 걔네한테 별 관심이 없어서 웹툰이나 읽을까 했는데 우리 반으로 민정이가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드디어 만났어요.”


“참.. 반가웠겠구나.”


“엄청요. 사실 제가 몇 날 며칠을 카톡도 보내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더라고요. 삐져도 단단히 삐졌을 거예요. 제가 아픈 동안 말도 없이 잠수를 탄 거니까.”


“아팠다고 하니 이해하던?”


“음. 네 사실 민정이가 잘 알 수 없는 말을 했어요.”


“뭐라고?”


“그때 그 일은 괜찮데요.”


“그래? 어떤 일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니?”


“그게… 아니요. 사실 그 일이 기억 안 나요. 그냥 잠수 탄 것 때문에 연락을 안 한 게 아닌 거 같더라고요. 사실 우리 사이가 며칠 잠수를 탔다는 이유로 연락을 안 할 사이는 아니라 이상하긴 했어요. 근데 ‘그 일’이라는 게 뭔지, 왜 저 때문에 화가 났었는지 모르겠으니까 답답해 죽어버리겠는 거예요. 근데 민정이가 대뜸 ‘그때 그 일은 괜찮아. 나 화 다 풀렸어.’라고 하는 거죠.”


“뭐 때문인지 말은 없고?”


“네. 근데 아는 척했어요 그냥. 원래 때린 놈은 기억 못 해도 맞은 놈은 기억한다고. 제가 기억을 못 하는 걸 민정이가 알면 더 속상할까 봐. 기억나는 척했어요.”


“민정이는 속았어?”


“네. 제가 미안하다고 수십 번 말하니까 그만 말하래요. 화 안 난대요 이제.”


“그랬구나. 그럼 민정이랑 이제 같이 예전처럼 지내면서 기억 안 나는 일들을 좀 알아내면 되겠네.”


“아… 음… 선생님.”


“왜?”


“꼭 알아야 할까요?”


“꼭 알아야 하냐고?”


“기억 말이에요. 제가 기억 못 하는 몇 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꼭 기억해내야 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넌 당연히 기억해 내야 해.”


“좀 답답하긴 한데, 사실 그 기억이 없어도 딱히 학교생활이 불편하지도 않고, 이제 민정이랑도 화해했으니... 그리고 선생님도 애써 기억할 필요는 없다고...”


“기억해야지! 내가 말한 걸 잊었니? 이제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 지금 기억해내지 않으면 어떤 상처가 네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있다가 언제 또 널 괴롭힐지도 몰라.”


선생님은 이상하리만치 확신에 차있었고 내 기억을 꼭 되 돌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어떻게 보면 화가 난 사람 같기도 했다.


“아니 저는… 이제 민정이랑도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공황장애도 많이 나아졌는데, 굳이 다시 기억해야 하나 싶어서요…”


“찾아야지! 그래야 극복할 수 있어. 자 그럼 이제 오빠 얘기를 조금 해볼까? 요즘은 오빠 꿈은 좀 덜 꾸니?”


“네 그런 거 같아요. 학교에 다녀서 그런가 학교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 거 같아요.”


“그럼 오늘은 그저 편안하게 잠을 자다 가는 게 좋겠구나.”


“수면 치료 안 하시고요?”


“푹 자는 것도 수면 치료 중 하나란다.”


“수면제 주실 건가요?”


“날 뭘로 보고. 내가 이 동네 작은 병원 원장 이긴 해도 국내 최면 상태 학파의 선구자다.”


자기 자랑은 또 처음이라 웃어넘겼지만 국내 최면 심리치료 (자칭) 일인자의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꿈도 없는 편안하고 깊은 잠을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잘 수 있었고, 내가 깨어난 것은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 내 방이었던 것이다.


“일어났니? 얼른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으응… 엄마 그런데 나 어떻게 집에 왔어?”


“뭘 어떻게 집에 와? 학교 갔다 네가 혼자 왔지 않아?.”


“병원 갔었잖아”


“오늘? 병원 안갔지. 오늘 월요일 이야. 병원은 어제갔지.”


“오늘이 월요일 이라고?”


“그래~ 학교 갔다와서 엄마가 해둔 제육볶음도 먹은 거 같더니.”


“엥? 정말?”


“응 설거지도 해두고. 푹 잘 자고 있길래 엄마 왔다 소리 안 했지.”


“아... 응 진짜 졸렸나 보네.”


이상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별 다른 나쁜 점은 없었고, 무엇보다 깊은 잠을 자서인지 너무 개운해 오히려 기운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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