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는_#시인

- 7화 -

by 구너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엄마는 옆에 앉아 졸고 있었다.


요즘은 정신을 차려 보면 침대인 경우가 많네.


“소연아! 일어났니? 괜찮아?”


“응.”


“다행이다.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어떻게 된 거야?”


“시장에서 쓰러졌어.”


“내가 쓰러졌어?”


“그래. 병원으로 가려했는데 네가 집으로 가자고 해서.”


“잘했어.”


“선하 전화 왔더라.”


“아 그래?”


“응. 선하 엄마가 너 쓰러진 거 말했나 봐.”


“아. 고맙네. 내가 문자 보내 둘게.”


“알았어. 물 좀 마셔. 괜찮으면 죽도 먹을래? 만들어 뒀어.”


“옥수수 죽이네?”


“쓰러졌다 일어나도 개코는 변함이 없어.”


“히히. 엄마 나 여기서 먹어도 되지?”


“응. 갖다 줄게. 선하한테 연락이나 해줘.”


“알았어.”


“아참, 소연아.”

엄마가 나직이 나를 부른다.


“왜?”


“그... 혹시 치료하는 거 힘들면 엄마한테 언제든 말해.”


“치료? 안 힘든데?”


“그럼 다행이고.”


“선생님도 나 좋아지고 있댔어.”


“그래?”


“응. 갑자기 왜?”


“아니. 선하가 이것저것.. 아냐~ 알았어. 우리 소연이는 잘 이겨낼 거야.”


“고마워.”


“응. 엄마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뭐가 미안해.”


“좀 더 신경 써줄걸. 민정이도 초대해서 밥도 좀 먹이고 그럴 걸.”


“민정이 오라고 할까?”


“엄마가 이번 달은 좀 바빠서. 조금 더 있다가.”


“알았어. 나 선하한테 전화할게.”


“응”


선하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고 직접 말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오랜만에 날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띠리링.



“어, 선하야 나야 소연이.”


“소연아 너 괜찮아? 쓰러졌었다며?”


“응.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냐. 내가 뭘 했다고. 그... 소연아.”


“응?”


“너 학교에서 괜찮아?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아니야?”


“뭐가?”


“스트레스받으면 원래 몸이 먼저 안다잖아. 쓰러진 게 스트레스 때문인가 해서.”


“크게 없는 거 같은데.”


“요즘 희영이랑 애들은 너 귀찮게 안 굴어? 너 돌아온 날 얘기는 건너 들었어... 내가 진작 너 보러 갔어야 하는 건데...”


“아~ 희영이? 괜찮아. 걔네들 나 안 찾아와 이제.”


“아... 그래? 그럼 다행이다.”


“넌 어떻게 지내고 있어?”


“나? 나야 뭐... 하하. 너희 반이랑 우리 반이 너무 멀어서 학교에서 보기가 힘드네.”


“응. 그러게. 난 자율학습도 안 하니깐. 마주칠 일이 잘 없지 뭐.”


“나도 사실 자율학습 매일은 안 하고, 집 근처에 독서실 다니고 있어.”


“그렇구나. 아, 선하야!”


“응?”


“혹시 우리 엄마한테 무슨 얘기 했어?”


“아.. 뭐 그냥 학교에서 너 잘 지내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래서?”


“...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거라고. 나라면 더 힘들어했을 거라고.. 넌 강한 애니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랬어.”


“고마워. 엄마가 또 물어보면 나 잘 다니고 있다고 말해주라. 걱정되시나 봐.”


“으응..”


“아참, 너 영우랑 계속 사귀어?”


“아~ 응! 잘 지내고 있지.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히히.”


남자 친구 얘기가 나오자 선하는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우리는 남자와 연예인을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하다 나머지 이야기는 학교에서 하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


다음날 학교에서 선하는 정말 날 보러 우리 반에 와주었다. 선하는 아줌마 말대로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 것 같았다. 타고난 몸매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통통 하다와 날씬하다 둘 중에 고르라면 날씬한 쪽이었다.

예전 선하는 반대였다. 사실 중학교 때 따돌림에서 구해준 뚱녀라는 친구가 바로 선하다. 통통하다고 말하기 힘든 비만이라 아이들은 그런 선하를 긁어봤자 꽝인 복권이라고 꽝녀나 뚱녀라고 놀렸다. 유치원 때 이후로는 멀어져 중학생 때는 그리 친하게 지낸 건 아니었지만 엄마는 항상 ‘네가 선하 좀 챙겨줘’라는 말을 했었다. 그 영향도 없진 않았겠지만, 오빠가 죽은 뒤 나는 늘 예민한 상태였고 선하를 괴롭히는 몇 명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부터 나의 인기와 선하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살을 빼자 선하도 하나둘씩 친구가 생겼다. 원래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선하의 얼굴에 윤곽이 드러나자 연예인 유ㅇㅇ를 닮은 듯 예뻤다.

선하도 본인의 모습에 적잖이 만족하는 거 같았고 나에게는 늘 고마움을 표시했다. 자신은 끊은 과자나 젤리를 종종 나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같은 반도 아니었지만 선하는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예뻐진 선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고, 나는 민정이와 친해지면서 우리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런데 선하가 반에 들어오고 나서 좀 전까지 같이 수다를 떨던 민정이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엥? 선하야 민정이 못 봤어?”


“뭐?”


“민정이 좀 전까지 있었는데...”


“... 소연아...”


“응?”


“아, 아, 그... 내가 물리 숙제를 안 했었네. 다음에 올게.”


후다닥 나가는 선하의 표정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나 생각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 시계... 때문이다. 내 상처가 좀 섬뜩하긴 하지.

난 손목 상처 때문에 늘 밴드가 두꺼운 시계를 차고 다닌다. 그런데 오늘 시계를 깜박했던 거다.


난 민정이를 만날 때도 늘 손목을 의식적으로 가렸지만 민정이는 내가 그러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내 상처를 본 것 같기도 한데 왜 그런지 묻지도 않았다.


민정이와 나는 예전만큼 학교 뒷산에 자주 올라가지 않았다. 뒷산 대신 선택한 옥상도 퍽 괜찮았다. 담배를 피기엔 뒷산이 더 좋았지만 이제는 둘 다 담배도 피우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예전처럼 샹송을 듣긴 했지만 민정이는 예전만큼 샹송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도 상관없었다.

예전처럼 더 이상 브라질 원두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오지 않았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자판기 커피를 하나 더 뽑으면 될 일이었을 뿐.


“너 이제 단 거 싫다면서 자판기 커피는 잘 마시네.”


“아 응. 이거 한 잔 정도야.”


“우리 학교는 아직 신기하게 자판기 커피가 남아있단 말이야.”


“꼰대들 추억 때문이지 뭐.”


“근데 너 왜 이제 달달 구리 안 먹어? 다이어트?”


“비슷해.”


“비슷해?”


“자기 관리.”


“오~ 역시 우리 민정이는 멋있어. 그래도 너무 깍쟁이 같아지진 마. 난 너의 그 자유를 향한 갈망의 눈빛이 그립다고.”


“큭큭큭”


처음엔 달라진 민정이의 모습이 너무 혼란스럽고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게 상관없어졌다. 그래도 민정이 안에 살고 있던 시인이 사라진 건 좀 서운했다.


‘소연아 노을 마시러 가자.’

‘봄 같은 남자가 진짜 있다면 난 가을부터 기다릴 수 있어.’

‘동백꽃 같은 삶은 아름답지 않지만 부러워. 물론 꽃은 예쁘고.’


이런, 조금은 오글거리는 말들을 민정이는 더 이상 하지 않았고, 그건 이상하리만치 섭섭했다. 그리고 그 섭섭한 마음은 좀처럼 다른 것들로 매워지지 않았다.


민정이처럼 주스를 노을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고, 이상형이 봄이란 사람도 없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민정이와 같은 이유로 바다가 좋다는 사람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


그날도 우린 어김없이 산이라 부르기 애매한 뒷산에 올라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민정이는 담배를 피우고 난 브라질 핸드드립을 마시고 있었다.


-


“아, 소연아 진짜 바다 가고 싶다.”


“가면 되지. 가자.”


“다시 여름이 오기 전엔 안 돼.”


“여름 바다만 바다냐? 그리고 아직 초가을이야.”


“가을 바다도 낭만 있지. 근데 지금은 추워. 한여름이 돼야 밤바다도 따뜻할 거 같단 말이야. 그럼 난 파도 위에 누워서 별을 볼 거야. 별을 보고 있으면 파도처럼 내 몸도 쏴아아 하고 부서지는 거지. 어때? 죽이지?”


“크으- 너 시인해라.”


“(후-) 변호사 하래 엄마가.”


“그래. 너 같은 애가 변호사 안 하면 누가 하겠냐? 같이 노는데 왜 넌 성적이 안 떨어져?”


“그럼 시인은?”


“응?”


“시인은 어떤 사람이 하는 건데?”


“아 시인? 시인은 뭔가 좀 더 지저분하고, 머리도 막 이르케 응? 이르케 해서~”


“야!”


“미안. 아팠어?”


“싫어. 머리 푸는 거.”


“왜? 예쁠 거 같은데.”


“싫다고!!”


너무 정색하는 모습에 왜 그렇게 머리 만지는 걸, 머리 푸는 걸 싫어하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


“선생님 민정이에 대한 기억이 하나 더 떠올랐어요.”


“그래. 너의 사라진 기억 대부분은 그 민정이라는 친구니깐 그 아이를 중심으로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거야.”


“말해요?”


“그럼.”


“너무 사소한 건데...”


“괜찮아. 민정이는 너에게 중요한 트리거(trigger)니까. 생각나는 게 뭐든 말하렴.”


“네. 민정이는 머리를 항상 정갈하게 묶고 다녔거든요.”


“응.”


“저는 민정이가 그냥 단정한 걸 좋아하는 건 줄 알았는데 머리 푸는 걸 무지 싫어했어요. 하루는 제가 민정이 머리 끈을 잡아당기고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는데,”


“왜 그랬니?”


“네?”


“왜 남의 머리를 마음대로 헝클어뜨렸느냐고.”


“그... 그냥 장난친 건데요?”


“... 그래. 계속 말해봐라.”


“네... 민정이도 지금 선생님처럼 좀 정색했어요. 민정이는 머리를 묶는 게 좋은 게 아니라 머리 푸는 걸 이상하리만치 싫어했던 거예요. 그게 갑자기 기억이 났어요.”


“남의 머리를 함부로 망가뜨리는 건 무례한 행동이다.”


“그냥 장난이었다고요...”


“알았다. 그래서 싸웠니?”


“싸웠다기 보단 분위기가 좀 어색해졌는데, 민정이가 대뜸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거예요.”


“그 얘긴 처음인 거 같은데?”


“맞아요. 어제 민정이가 머리 푸는 걸 싫어한다는 게 떠오르면서 그때 즈음이 조금 생각났거든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겠니?”


“음. 자세히 기억나는 건 아닌데...”


“괜찮아.”


“민정이가 집이 빈다고 했어요. 그래서 놀러 오라고. 쥬시 팡팡에서 생과일주스를 사서 민정이 집에 들어간 것까지 기억이 나요.”


“집에서 한 대화나 집안의 모습들은 기억이 안 나?”


“네... 아직요.”


“그래. 애썼다. 오늘은 이만하자.”

선생님은 볼펜을 내려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 이거 브라질 원두 향 같은데...


“선생님 혹시 커피 뭐 드세요?”


“응?”


“아 제가 개코거든요. 혹시 그거 브라질 원두 아닌가요?”


“응 맞아. 오 네가 향을 잘 구분하는구나.”


브라질 핸드드립에 대한 민정이의 얘기를 하려다 관뒀다. 또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브라질 원두 향도 먹고 싶다는 마음보단 인상이 찌푸려졌다. 좋아했고 익숙했던 향들이 이제 모두 거북했다. 담배도 커피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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