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는_#포스터

- 8화 -

by 구너

병원을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나고 방을 정리하다 장롱에 처박혀 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상사 속에는 민정이의 사진 몇 장과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섹시한 표정의 서양 여자 포스터가 들어있었다. 그 포스터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민정이가 머리 푸는 걸 왜 싫어했는지 기억났다. 그 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


“나 머리 푸는 거 싫어해.”


“미안. 그냥 난 예쁠 거 같아서.”


“예뻐지기도 싫어. 엿 같아.”


“왜? 예뻐지는 게 왜 엿 같아?”


“넌 이해 못 해.”


“이해할 수 있어.”


“예뻐지기 싫다는 내가 이해 안 되니까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어본 거잖아.”


“아냐. 음... 그냥 궁금할 뿐이야.”


“...”


“이야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리고 너 지금도 예뻐.”


“엄마 때문에.”


“엄마?”


“응.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지겨운데 예쁘기까지 하래. 자꾸 나보고 예뻐지래. 살도 빼래.”


“... 흠..”


“머리는 풍성하고 윤기 있게, 표정은 온화하게, 피부는 탱글 하게 관리하래. 요즘은 공부만 잘하거나 얼굴만 예뻐서는 좋은 남자 못 만난데. 둘 다 하래. 웃기지? 난 결혼 같은 거 하지도 않을 건데. 그래서 반항하는 거야. 머리도 납작하게 묶고 마스크 팩도 안 해. 가슴도 처지면 안 된다고 대학생 되면 바로 운동도 하라는데 너무 싫어. 너 내가 얼마나 몸치인지 알지?”


“풉. 알다 마다. 근데 아줌마도 너 다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 일거야.”


“나 잘되라고 하는 거 아니고, 히스테리야. 엄마도 엄청 관리하거든.”


“어쩐지 진짜 예쁘시더라. 뭔가 정말 우아한 느낌?”


“됐어 무슨 소용. (후-) 오늘 우리 집에 같이 갈래?”


“나야 좋지.”


“엄마, 아빠 안 계시거든.”


“아줌마 계실 때는 가면 안 돼?”


“응. 너 소개하면 바로 넌 반에서 몇 등 하냐고 물어볼걸?”


우리는 쥬시 팡팡에서 생과일주스와 마카롱을 사들고 민정이네 집으로 갔다. 민정이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크고 예뻤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은 고급스러워 보였고,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골드와 핑크로 포인트를 준, 어떤 여고생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인테리어였다.

소파 위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금태 액자에 걸려있었다. TV도 우리 집 TV의 세배는 되어 보였고, 집안 곳곳 꽃병엔 싱싱한 꽃이 꽂혀있었다.


“와 너희 집 쩐다.”


“별로.”


“오, 이 꽃 좀 봐! 이거 카네이션이지?”


“난 잘 몰라. 하도 자주 바뀌어서. 조금만 시들어도 엄마는 금방 버려버리거든.”


“우리 집도 이렇게 해두고 싶다. 꽃병도 너무 예뻐.”


“됐어. 어차피 죽은 애들인데 뭐.”


“죽긴 뭐가 죽어. 이렇게 싱싱한데.”


“죽은 거지. 뿌리가 잘렸잖아. 힘들게 활짝 피어서는 몇 주도 못 가서 시들어. 그럼 또 버려지고. 걔넨 곧 버려질지도 모른 채 예쁘게 피려고 노력하지.”


“와 난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 넌 진짜 좀 시인 같아.”


우린 거실과 반대편의 긴 복도를 지나 맨 끝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엄마 아빠도 안 계신 데 왜 묻을 닫냐고 하자 민정인 습관이라고 했다. 집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화이트톤에 분홍색으로 포인트를 준 것이었지만, 민정이의 방은 한 면 전체가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그 벽에는 프랑스 가수들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이 방은 하늘색이네.”


“응 어릴 때 아빠가 칠해줬어. 엄마는 분홍색, 나랑 아빠는 하늘색 좋아하거든.”


“우와, 혹시 얘네가 프랑스 가수?”


“응! 얘네는 비디오클럽이라는 듀오야. 얘는 엉젤. 그냥 엔젤이라고 해도 돼.”


“얘는 누구야?”


“클레르 라퓌”


“얘는?”


“플로리나. 요즘 내가 많이 듣는 va va vis 부른 애”


“아~”


꽃 이야기를 할 때와 달리 민정이의 눈은 반짝였다. 우린 민정이의 최애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침대에 엎드려 마카롱을 먹었다. 잠시 세상이 달콤하다고 느꼈던 거 같다.


“난 얘가 젤 매력적인 듯? 얘가 ‘클레어’라고?”


“클레르. claire laffut.”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나체 인지 탑을 입은 것인지 모를 여자 가수의 오묘한 눈빛이 내가 상상하는 프랑스와 가장 닮았다 생각했다.


“너 이 포스터 가질래?”

내가 계속 포스터를 빤히 보고 있자 민정이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진짜? 그래도 돼?”


“응. 너니까 주는 거야.”


“오. 메르시. 메르시.”


“큭큭. 자.”


정사각형 포스터를 떼어내자 그 안쪽에는 빛바랜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사진 속 꼬마숙녀가 부모님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어머! 이거 너지?”


“아.. 응.”


“너무 귀엽다. 크큭. 왜 사진을 가려놨어. 다른 사진도 있어?”


“그만 봐. 그냥 노래나 듣자.”


“야. 이거 봐. 아이스크림 여기 떨어뜨렸네. 아 웃겨. 나 이 사진도 주면 안 돼?”


“가져. 난 필요 없어.”


“아 귀여워. 이분은 아빠 맞지? 키가 크시다.”


“...”


“근데 오늘 아빠 엄마 어디 가신 거야?”


“...”


“엥? 너 왜 그래?”


민정이 표정이 굳어있었다.


“아빠는 잘 모르겠고 엄마는 온양온천. 기차표 봤거든. 한 자리 더라고.”


“왜? 싸우셨구나.”


“큭. 차라리 싸우지.”


“응?”


“우리 아빠 여자 친구랑 여행 간 거야.”


“... 뭐?”


“그것도 몇 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됐어. 엄마가 하도 공부해라, 살 빼라. 잔소리가 심해서 하루는 담배를 피기로 마음먹었거든. 엄마 출장 간 날, 아빠 주머니에서 담배를 몰래 꺼내는데 손에 뭐가 잡히는 거야. 정성스럽게 포장한 명품 상자 안에 귀걸이가 있더라? 우리 엄마 유일하게 안 하는 액세서리가 귀걸인데. 젊었을 때 멋 부린다고 스테인리스 귀걸이를 하고 다니다가 염증이 심해져서 그 뒤론 귀걸이는 일절 안 하시거든. 결혼식 때도 안 했고. 근데 귀걸이인 거야 하필.”


“...”


“엄마는 아빠를 증오하면서도 나한테는 아빠같은 의사랑 결혼하래. 변호사되면 의사랑 결혼하는 건 껌이래. 이미 의사랑 결혼한 엄마도 안 행복하면서.. 웃기지? 매번 히스테리 부리고 날 스트레스받게 하는 건 엄만데, 그런 엄마를 만든 게 아빠라서 난 아빠를 좋아하지도 못해. 원래 그러잖아 엄마한테 받은 스트레스 아빠한테 풀고, 또 그 반대로도 하고. 근데 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인데, 모든 히스테리를 다 나한테 쏟아붓는데, 내가 가득 차면 어떡해? 난 어디 비우지? 예전엔 부모님이 이혼할 까 봐 무서웠어. 근데 이젠 이혼이라도 했으면 좋겠어. 어느 쪽도 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 민정아... 난 몰랐어... 미안...”


“괜찮아. 아무 말 안 해도 돼. 너랑 친해지고선 숨통이 트였거든. 난 엄마가 불행한 게 너무 숨 막혀. 어쩔 땐 내가 엄마 대신 펑펑 울면서 아빠를 붙잡고 늘어지고 싶어. 근데 어차피 아빠한테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걸? 아빠는 나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내 말이 들리긴 하겠어? 성적 물어보는 거 외엔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없어. 내가 자기 주머니 담배 가져가는 것도 모르는데 뭐... 안 되겠다. 한 대 펴야겠다. 너도 해볼래?”


민정이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건넸고 그건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그 담배를 거절하면, 그 담배마저 거절한다면 민정이는 픽 하고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프랑스 가수들을 알게 된 날 난 담배를 배웠다.


-


그 날이 생각나자 요즘 민정이가 변해 버린 게 혹 민정이의 상황이 더 힘들어진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아재 개그를 하는 민정이가 억지로 밝은 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무서워졌다.


아무래도 내일 민정이를 좀 더 잘 살펴봐야겠다.


*


이제 슬슬 얇은 코트를 꺼내야 할 정도로 날씨가 쌀쌀해졌다. 엄마는 사과가 빨갛고 실하게 익었다고 한 박스를 사 와 아침마다 주스를 만들어주셨다. 엄마표 주스를 마시며 난 겉보기에 아무 문제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나에겐 고민이 생겼다.


민정이를 조심히 그리고 면밀히 살핀다고 살폈지만, 그리고 민정이네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 얘길 은근히 꺼내봤지만, 민정이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요즘 브라질 원두커피를 왜 가져오지 않는지 물어봐도 그냥 엄마가 바빠져서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내가 아는 민정이의 표정이 아니라서 나는 그 표정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나의 고민은 엄마나 의사 선생님에게나 털어놓기가 참 애매한 것이었다. 친구가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더 이상 주스와 마카롱을 사 먹지 않는다고, 이제는 더 이상 바다에 가고 싶지 않아 한다고, 그리고 그건 정말 큰일이 난 거라고 어른들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건 나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또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민정이는 나와 얘길 하고 있다가도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 사라지고 난 뒤에 잠수를 타는 일도 많았다. 난 오늘도 다음 날도 민정이를 찾았고, 연기처럼 감쪽같이 사라지고 난 뒤엔 민정이를 찾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민정이를 찾는 만큼 선하는 나를 찾았다. 난 늘 교실 안에서 자고 있거나 민정이를 찾으러 3반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선하가 날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점점 민정이 보다 선하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선하가 싫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친구다. 하지만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동안 썰물이 빠지는 걸 느끼는 사람은 없기에 두려웠다.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면 물은 아주 저 멀리 사라지고, 나는 맨발로 모래 위에 덩그러니 남은 거처럼. 민정이가 그렇게 멀어져서 아주 떠나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난 학교에서 민정이를 더 자주 찾았고, 더 자주 전화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민정이는 본인이 내킬 때만 나에게 얼굴을 비췄다. 전화는 아주 꺼버리는 일이 잦았다.


“선하야, 민정이 3반 맞지?”


“어?”


“3반 아니야?”


“맞아.”


“전 시간에 내가 종 치자마자 갔거든? 근데 또 없더라.”


“아, 아, 그게 오늘 민정이 학교 안 왔데.”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오전에 나랑 놀았어,”


“... 아니야.”


“뭐가 아니야. 나랑 2교시 마치고 놀았다니까?”


“오전 수업만 받고 갔나 보지.”


“네가 어떻게 알아?”


“...”


“너 민정이랑 안 친하잖아.”


“.. 친해졌어.”


선하는 민정이와 친해졌다고 말하면서 누군가와 친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혹은 걱정이거나.


“그래? 언제 친해졌데. 오늘은 왜 갔어? 아프데?”


“아. 그날이래 그날.”


“그래? 몰랐네. 둘이 진짜 친한가 보다. 너한테만 말하고.”


“소연아 그러지 말고, 오늘 나랑 시장 갈래? 꽈배기 사 먹자.”


“웬일? 너 풀만 먹더니.”


“헤헤 무슨~ 내가 염소냐? 풀만 먹게?”


“그럼 너 자율학습은?”


“오늘 안 하려고. 아픈 척해야지 뭐.”


“알았어. 가자.”


*


꽈배기는 선하가 다이어트 중에도 유일하게 끊지 못하는 선하의 마약이었고, 우린 맛있게 꽈배기를 사 먹었다. 시장 옆에 꽤 큰 천이 흘렀는데 어릴 때만 해도 오물로 가득했지만 이젠 꽤나 그럴듯한 동네 산책로로 바뀌었고 우린 꽈배기를 들고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소연아.”


“응?”


“맛있지?”


“응.”


“난 네가 나랑 오래오래 이 꽈배기 먹었으면 좋겠어.”


“참나. 나 안 죽어.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내 사주 봤었는데 나 명이 길데.”


“그래. 네가 죽긴 왜 죽어! 근데 아프지도 마.”


“큭. 걱정되냐?”


“당연하지.”


“고마워. 근데 걱정 안 해도 돼. 치료도 잘 받고 있고.”


“... 미안해.”


선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선 두 번째 꽈배기를 한 입 베어 물더니 그 뒤론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다는 건 때론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선하는 정말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없을 때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안다. 선생님이 왜 나 대신 오빠가 아프냐 중얼거렸을 때 그랬고, 장례식 장에서 내 뒷담화를 들었을 때 그랬다. 그럴 때면 어쩐지 입 밖으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 수많은 말들이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머리에서 뱅뱅 돌다가 그만 펑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선하의 말들도 펑하고 터졌는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이젠 입 안의 꽈배기가 다 보이게 엉엉 울고 있는 선하를 보며 왜 미안한지 묻는 대신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자 선하는 더 거세게 울었고 울음이 그치고도 한참 말이 없다가 이상한 말 한마디를 남긴 채 그만 집으로 가자고 했다.


“소연아 내가 꼭 갚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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