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극혐.'
그 말만으로도 차고 넘칠 텐데 사람들은 무엇에 그리 악에 받친 걸까.
싫어도 너무 싫은지 혐오를 강조해 극혐, 그걸 또 강조해 ‘개극혐’, ‘핵극혐’이라고 한다.
이 세상엔 혐오가 넘쳐난다. 꼰대도 싫어하고 문제아도 싫어하고, 전 애인도 싫어하고 뚱뚱한 사람도 싫어하고. 어디 사람뿐인가. 맛없는 것, 지저분한 것, 벌레, 비둘기, 정치 등… 세상에는 혐오의 대상이 넘쳐난다.
모두가 무언가를 쉽게 혐오하는 세상에서, 나는 나를 혐오한다.
가끔 억울하다. 본인들도 무언가를 극혐이라고 떠들어 대면서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만큼은 중대한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
이 세상은 자기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지라 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반대라서 내가 나를 싫어하는 걸 눈치 보고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좋은가.
엄마는 식당에, 아빠는 도장에 가시고 난 뒤 우리 집은 텅 비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평수인데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오빠가 사라졌던 그 날처럼.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가 만들어 둔 된장찌개를 데워먹었다.
식탁에 앉아 멍하니 가스 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구수한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내가 그렇게 찾기 힘든 꿈을 엄마는 가지고 있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 했다. 아, 요리사가 되고 싶어서 음식 솜씨가 좋아진 건가.
아무튼 엄마는 요리를 잘하고 엄마가 한 음식은 맛있었다. 엄마 딸이라서가 아니라 먹어본 사람 십중팔구가 맛있다고 칭찬 일색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난 집밥을 먹을 땐 잡생각을 하지 않고 ‘먹는다’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다.
동네 식당의 주방 이모님을 하고 있으니 요리사, 그러니까 셰프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룬 거나 다름없다. 그런데 왜 동네 식당에서 일하면 “네 셰프” 하지 않고 “알았어 이모”라고 하는 걸까? 모두가 엄마를 ‘이모’나 ‘어이’나 ‘아줌마’ 대신 ‘셰프님’이라고 불러주면 엄마는 좀 더 꿈을 이룬 사람처럼 반짝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모가 주는 친근한 이미지도 좋지만 ‘셰프’보단 ‘이모’를 함부로 대하는 인간이 많아서 난 ‘이모’라는 말이 싫다.
오늘 싫은 게 한 가지 더 늘었다. 긍정적으로 살기란 거참 어렵네. 그래도 이건 뭐… 혐오까진 아니라 해두자.
엄마는 셰프라 불리지 못하는 식당 이모 대신 사장님이라고 불릴 시간을 위해 몇 년 전부터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좀 더 모아서 올 가을엔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거라고 했었는데...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곧 엄마의 꿈을 짓밟게 되겠지?
오 이건 꽤나 혐오스럽다. 역시 난 내가 제일 극혐이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 보니 난 소파였고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 내가 했어야 하는데…
설거지는커녕 자그마치 된장찌개에 파김치를 먹고 이도 닦지 않고 잤다.
나의 더러움도 극혐. 추가.
“엄마. 미안”
물소리 때문에 안 들리는 건가.
“엄마?”
“어? 일어났니 우리 딸?”
설거지를 해놓지도 않고, 이에 큰 고춧가루가 꼈을지도 모르는, 머리는 51시간 즈음 감지 않아 고약한 냄새가 날 게 틀림없는 딸이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는 얼굴이지.
“응 엄마. 미안해. 너무 졸려서… 설거지 내가 했어야 하는데”
“어이구 효녀 납셨네. 푹 잤으면 됐지.”
“식당에서 설거지하다 왔을 텐데…”
“아냐~ 우리 설거지 이모 뽑았어. 엄마는 요리만 해~”
“진정한 셰프님이네”
“그래. 엄마 셰프야.”
다시 설거지를 하려고 돌린 엄마 등이 갑자기 커다랗게 느껴졌다. 카메라 줌인이 된 것처럼. 엄마 뒤로 가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크지 않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작다.
“어머 깜짝이야! 우리 소연이 엄마 안고 싶었어~?”
“응”
눈물을 간신히 참는다.
“이렇게 다 커서도 엄마 안아주고. 엄마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야”
“행복해?”
“그럼!”
“엄마 그럼... 가게 못 내도 행복해?”
“소연아. 엄마는 이미 셰프라니까~ 그러니까 엄마 꿈 얘기 그만하고 치료받을 맘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
“맨날 치료한다고… 엄마가 모아둔 돈… 맨날 그랬잖아. 오빠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소연아..”
“…으…흐흑… 엄마 나 오늘 오빠 생각이 났어”
“… 그래. 이리 와, 안아줄게.”
오빠는 엄마를 쏙 빼닮은 개그맨이었다. 어릴 적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실 바닥에서 뒹굴며 깔깔 대던 게 아직 생생하다. 하지만 죽기 전 오빠가 만든 이야기는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본인은 사실 '어린 왕자'고 어릴 때 왔던 지구가 그리워 잠시 다시 들른 거라고. 이제 영영 자기 별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지만 가족들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유치원생도 믿지 않을 소설을 썼다. 네 살 차이 나는 오빠가 꼭 내 나이었을 때, 그렇게 오빠는 우리를 떠났다.
그 날 난 처음으로 ‘혐오’라는 감정을 느꼈던 거 같다. 세상이 지독히도 싫었다. 더 이상 오빠가 없다는 사실도, 아파도 웃음을 잃지 않던 오빠도, 울고 있는 부모님도 싫었다. 착한 오빠를 빼앗은 하늘도, 오빠가 없어도 흘러가는 시간까지.
그런데 그 수많은 ‘싫은 것들’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파서 밥이 들어가는 내가 제일 별로였다.
장례식장에서 먹은 육개장은 맛있었고 밥까지 말아먹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나 보다 더 슬플 리 없는 사람들이 내가 그들 눈에 슬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먹이며 험담을 했다. 어렸지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견딜 수 없이 화가 나야 하는 건데, 내가 당신들보다 더 슬프다고 소릴 질러도 모자랄 판에 그날도 난 그냥 내가 싫었다. 생각해보니 오늘까지 난 하나도 바뀐 게 없구나.
카타르시스라고 했던가. 엄마랑 손을 잡고 펑펑 울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엄마… 나 치료받아볼게.”
“진짜?!”
엄마가 또 글썽인다.
“응. 치료해볼게.”
엄마는 참 복도 없다. 돈을 모으는 족족 모조리 자식들을 치료하는 데 쏟아 붙는 것 같다.
참 골고루도 아프다. 오빠는 몸이 난 마음이.
여러모로 마의 18세다.
결코, 여드름 따위만 조심하면 되는 나이가 아닌 거다.
*
하룻밤만 자고서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가봤자 예약 손님 한둘 이겠거니 하고 무방비 상태였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운이 나쁜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법. 심리치료센터 혹은 정신과라고 불리는 이 세계는 대부분 ‘예약 손님’이 많다고 했었는데 내가 간 날은 웬걸 무슨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난 겨우 세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만 했기 때문에, 시커멓고 커다란 장비들이 늘어선 로비를 기겁하고 빠져나왔다. 어린아이처럼 떨리는 손으로 엄마 팔을 꼭 붙든 채.
드라마 촬영을 허가한 그런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다닐 순 없었다. 대안들을 검색했고 조용하고 규모가 크지 않은 동네 병원을 선택했다. 오히려 집에서 더 가까웠다. 그리고 인테리어도 흰색이 아니었다.
정신병자들도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광고하고 싶진 않은 법이니깐 병원이 제발 흰색이 아니길 바랐다.
다행이다.
*
“소연 학생, 어떤 부분 때문에 오게 되었나요?”
결국 난 병원에 가보겠다 결심을 하고 일곱 밤이 지나고 나서야 의사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의사는 본인을 꽤 빨리 만난 거라고 격려해줬다. 병원에 다니겠다고 결심을 하고서도 이 자리에 앉기까지 평균적으로 몇 주 이상, 길게는 한 두 달도 더 걸린다고 했다.
“음. 사람들이… 무서워요.”
“언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말해 줄 수 있겠어요?”
“저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워요. 근데 그걸 피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답답하고요. 그런 생각이 들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잘 못 쉬겠어요.”
“그랬군요. 쳐다보는 건 누구나 부담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에요. 꼭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아 그런가요?”
“그래요.”
“그런데 진짜 그 사람이 쳐다보면 부담스럽겠지만 저는 사실 그 사람이 진짜로 절 쳐다보는지는 몰라요. 그냥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저를 볼 것 같은 거죠. 관종인가...”
“아니에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요. 누구나 자신을 볼 거 같은 느낌이 들면 불편하기 마련이니까. 혹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부터 말해주겠어요?”
“어떤 일 말씀이죠?”
“그냥 뭐 일상적인 생활에서 발생한 작은 에피소드나 학교생활도 좋고..”
“아 딱히 없어요. 학교를 안 다녀서…”
의사는 낯설었지만 다른 의사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체온을 재거나 차가운 기기들로 내 코나 입을 건드리지 않아서 일까? 혹은 아픈 곳이 어디냐고 콕 짚어 묻지 않아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간호사가 옆에 없어서?
“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서로 간의 믿음이 있어야 이 치료가 가능해요”
의사 선생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질문의 대답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먹고 자고 또 일어나서 먹는 돼지 같은 삶을 살고 있던 터라 최근에 있었던 일이 딱히 없다고 보충 설명하려다 그냥 “네”라고 짧게 답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의사 생각이 계속 났다. 뭐가 이상했지 하고 의사와의 대화를 되짚어 보다 순간 이상했던 건 옷이라는 걸 깨달았다. 의사라면 으레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늘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하늘색이라서 더 이상했다. 50대처럼 보이는 아저씨에게 어울리는 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사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것도 신기했다. 드라마 속에서 외과의사는 대게 늙은 남자가 나오고 그를 존경하는 예쁜 레지던트가 등장한다. 반면 정신과 의사는 인자한 인상의 나이 있는 여자가 많았기 때문에. 뭐 내가 본 드라마는 그랬다.
그래. 그 의사는 심지어 푸근한 인상이라기 보단 날카로워 보였어.
여름이 되면 하늘색 반팔을 입으려나?
*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라는 건 날마다 그 날 그 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기록이었지만 내 일기장은 조금 다르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나 끝낼 때 적혀있어 날짜가 듬성듬성했다. 그래서 가벼운 소설책 한 권 정도 두께의 내 일기장은 중학교 입학식부터 시작했지만 아직 한 권을 다 끝내지 못했다.
2016.3.2.
<입학>
중학생이 되었다. 엄마, 아빠, 오빠가 다 와서 축하해주는 입학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이해한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섭섭했지만 섭섭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빠가 꼭 나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졸업식 때는 우리 가족 다 같이 사진도 찍고 짜장면도 먹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파이팅★
그다음 장은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 몇 장을 더 넘기면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친 것, 또 몇 장 뒤엔 미술시간에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것, 그리고 첫 기말고사를 적기도 전에 오빠가 떠난 것이 적혀있었다. 오빠가 떠난 날은 날짜도 없었다. 오빠가 더 이상 없다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말도 없다고 그렇게 두 줄만이 남아있었다.
오빠가 떠난 뒤 몇 개월 만에 적힌 날짜는 작년이었다. 9월 20일이라는 날짜 부분만 남아있고 일기장이 몇 장 찢겨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난 초등학교 때 배우다 그만 둔 검도를 다시 시작했었다. 건강해지고 싶었던 거 같다. 다른 모든 것은 오빠를 닮더라도 몸이 아픈 것만은 닮고 싶지 않았다. 암이라는 건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을 수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 것이라 믿고 싶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운동과는 담을 쌓은, 말라비틀어져 ‘멸치’라 불리는 고1 수학선생님은 가까이 가면 쩐내를 풍기는 ‘골초’였지만 건강검진에서 폐 나이가 20대라 했고, 나는 검도를 그만두었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