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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n 02. 2019

그런 냄새로는 계단을 오를 수 없어요

2019년 영화 <기생충, PARASITE>, 봉준호 감독 작품

※스포일러 주의

기우(최우식)/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저기 보이는 저 산 중턱에 살아


손가락을 펴고 팔을 길게 뻗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위치에 산을 가리켰다. 친구들이 어디 사는지 물을 때마다 산 중턱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살던 곳은 정확하게 말하면 열 걸음만 더 가면 꼭대기인 위치였다. 중턱이라고 말한 것은 하찮은 자존심이었다. 그 산의 괴상한 특징 때문이다. 우리 집은 15평 남짓한 빌라였는데 그런 비슷하게 생긴 작은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위치에서 스무 걸음만 내려가면 전원주택들이 있었다. 마치 계층 분리가 된 것처럼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갈수록 집이 커졌다. 산 입구 부근에 위치한 전원주택은 친한 친구 집이었는데, 골프칠만큼 넓은 잔디밭 마당 있을 정도로 컸다.


최근에 그 친구 집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 때문이다. 영화에서 기우가 대저택의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이 뇌 속 기억 버튼을 눌렀다. 낯선 공간 속에 처음 들어갈 때의 긴장감과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뒤섞였다. 일종의 불안감이었는데 즐거운 불안이었다. <기생충>은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만들어 불안을 극대화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공간을 통해 인물을 설명하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봉 감독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번 작품에서 더욱 완성도 높게 구현되었다. 공간 연출뿐만 아니라 훌륭한 스토리텔링, 흠 없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완벽하게 설계된 건축물을 보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다.

배우 최우식(기우), 송강호(기택), 장혜진(충숙), 박소담(기정)/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기택(송강호)네 가족은 전원이 백수다. 장남 기우(최우식)는 수능을 네 번이나 봤지만 대학을 못 갔다. 어느 날, 명문대를 다니는 친구가 고액과외를 연결해준다. 기우는 동생 기정(박소담)이 위조해준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이선균)의 저택으로 향한다.


햇빛조차 차이가 나는 두 가족


<기생충>은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두 가족에 대한 대비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동네와 집, 태도와 사고방식, 인생의 '계획' 여부 등을 공간과 인물 배치, 대사를 통해 빈자와 부자의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박사장 저택은 빛이 거실 전체에 쏟아지지만 반지하인 기택네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반지하에서는 햇빛이 귀하다. 기택네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순간은 첫 장면에서 기우가 와이파이를 찾을 때다. 와이파이를 찾은 곳은 화장실 안에서 계단 위, 변기 옆이다. 기우가 와이파이를 찾았다며 변기 옆에 앉을 때 그의 머리에 햇빛이 든다. 박사장 저택에서 거실에 앉아만 있어도 쏟아지는 빛이 기택의 반지하에서는 가장 더러운 곳에 가야만 닿을 수 있는 것이다. 봉 감독은 "햇빛조차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나는 슬픈 느낌"이라며 "영화 시작만큼은 한 조각의 빛이 (반지하로 들어와) 기우 머리에 닿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빛의 차이는 공간에서 나온다. 봉준호의 세계에서 공간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특히 사회 계층을 구분하는 공간은 이전 작품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수직적 이미지'는 계층 구조를 표현하는 데에 많이 쓰인다. 영화 <괴물>이 대표적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들을 수직으로 배열하면, 가장 밑바닥은 아이들이 숨은 곳이다. 한강 부근 지하에 위치한 괴물의 은신처에서 가장 힘없는 아이들 현서(고아성), 세주(이동호)는 그 은신처에서도 밑바닥에 위치한 하수구에 숨는다. 그 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는 바로 위 한강 둔치가 있고,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을 상징하는 '에이전트 옐로우'는 높은 어느 곳에 매달려 있다.


남일(박해일)이 SK빌딩으로 올라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남일은 대기업에 다니는 운동권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거절당한다. 남일은 선배가 다니는 높은 회사 건물로 수직으로 올라갔다가 자신을 쫓는 자들에게 도망치려 밑으로 탈출한다. 그러다 점점 내려가 길바닥보다 더 밑에 있는 노숙자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다. 이 같은 장면들이 수직적 위계질서라 본다면 일종의 계층 구조를 시각화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봉 감독은 수직 동선을 사회계급적 맥락에 비유해 공간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진행해왔다.

수직 이미지는 <기생충>에서도 활용된다. 반지하와 전원주택의 대비도 그렇지만, 박사장 저택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살고 있는 곳은 기택네 반지하보다 더 내려가야 한다. 일말의 빛도 없고 소독차가 내뿜는 연기도 들어가지 않는다. 근세가 거실 계단에 있는 전등의 스위치를 박사장의 동선에 맞춰 지하에서 팔이 묶인 채로 머리로 켜는 장면은 계층 차이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수직 이미지에 더해 그가 "리스펙!"이라 외치는 모습은 그 차이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다. 그저 계단만 오르는 박사장에게 들리지도 않는 지하의 지하 밑바닥에서 소리를 지르는 근세의 모습은 본인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재벌을 보면서도 경제적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 섞여있다.


계단과 반지하의 영화


그렇다면 반지하는 지하인가 지상인가. 반지하 기택네는 상대적으로 근세가 사는 곳보다는 위다. 발 디딘 곳은 지하지만 허리만 펴면 시선은 지상에 닿는 묘한 위치다. 다시 말해, 지하지만 지상에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첫 장면에서는 기택네 집 안의 시선으로 창 밖 풍경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발과 종아리가 보이고, 자동차 바퀴가 지나간다. 그 창문은 초반엔 밖의 햇빛이 보이지만 나중에는 검은 구정물이 들어오는 곳이다. 화장실 변기의 위치는 어떤가. 내부에 계단이 있다. 봉 감독에 따르면 정화조의 압력 때문에 실제 그런 위치에 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이미지만으로 인물들의 배경을 보여주는 탁월한 공간 설정이다.

그 변기에 가기 위해선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계단은 <기생충>에서 중요한 이미지다. 봉 감독이 직접 "계단과 반지하의 영화"라고 부를 만큼 계단이 많이 나온다.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비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녀>에서 '계단'은 계층을 구분하는 경계이고 넘어서는 안될 선이다. <기생충>에서도 계단은 이 같은 역할을 한다. 박사장 저택은 초인종을 누르는 행위조차 계단에 올라서야 할 수 있는 곳이다. 저택에서 도망 나온 기택 가족이 반지하로 향할 때도 계단이 등장한다. 이때의 계단은 유독 길고 높다. 두 가족의 격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정이 고작 담배 한 개비를 피우기 위해 똥물이 솟는 변기에 앉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모순적이면서도 씁쓸하다.


아울러 모스부호는 또 다른 계층 간 경계다. 연교는 아들 다송이(정현준)가 1년 전 눈이 돌아갈 정도로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고 말한다. 연교는 다송이가 실제 무엇을 본 것인지 모르지만, 다송이는 밤중 몰래 지하에서 올라오던 근세를 발견했다. 이후 다송이는 수차례 근세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리지만, 연교는 그 그림이 다송이의 자화상이라 생각할 뿐이다. 스카우트에서 모스부호를 배운 다송이는 근세가 보내는 신호를 발견한다. 메모하고 해석하려 애쓰지만 하지 못한다. 후반부 기택이 보내는 편지를 기우가 금방 해석하는 모습과 상반된다.

이거 진짜 상징적이네


영화 내내 보이는 산수경석은 영화의 시작과 끝이다. 민혁(박서준)이 기택네 반지하에 찾아가 이 수석을 전해주는 것은 사건의 발단이다. 이때 을 받자마자 기우는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라고 말한다. 이후 그는 '상징적이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등장인물 스스로가 상징적이라고 말하는 게 재밌다. 제가 쓴 시나리오지만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대사 그대로 산수경석은 대놓고 상징이다. 이 돌이 어디에 있고, 누가 들고 있느냐를 따라가며 보는 재미가 있다.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마블 인피니티 스톤 같은 역할이다.


덕분에 기우는 박사장 저택의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고, 근세 역시 그 수석을 들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장면은 구정물이 가득 찬 반지하에서 기우 앞에 수석이 저절로 떠오를 때다. 이어 기우는 "얘가 저한테 달라붙어요"라며 돌을 껴안고 다음을 계획한다. 초반부 사건의 발단과 후반부의 대혼란은 모두 수석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건이 끝난 후 기우는 "돈을 벌겠습니다"라며 산수경석을 맑은 햇살 아래 흐르는 시냇물에 돌려둔다. 애초에 그 돌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냄새가 선을 넘어


상징은 또 있다. 바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느끼는 '냄새'다 . 박사장은 운전기사로 온 기택에 대해 "다 좋은데 냄새가 선을 넘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연교(조여정)는 기택이 손을 잡자마자 "손 씻으셨어요?"라고 말한다. 어린 다송이 마저 냄새를 느낀다. 냄새를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을 건드리는 것이다. 박사장은 자신의 차 열쇠가 근세 등 밑에 떨어지자 코를 막고 다가간다. 근세가 고기와 소시지를 굽던 꼬챙이에 찔려 죽어가고 있음에도 오로지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찡그린다.


그에게 근세는 함께 꽂혀있는 소시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이 영화 속 직종들이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서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이라며 "이 영화에서 쓰이지 않으면 이상할 법한 하나의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가 냄새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대사 중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계획'이다. 기우가 동생 기정이 위조한 재학증명서를 들고 집을 나서며 "상관없어요. 내년에 그 대학 갈 거니까"라고 말하자 기택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감탄한다. 저택에서 도망쳐 나온 기택은 "아빠가 다 계획이 있다"며 불안해하는 아들딸을 안심시킨다. 이후 기우는 기택에게 계획을 묻는다. 그러자 기택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라며 "계획이 없어야 잘못될 일이 없다"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기택의 인생이 담긴 대사다. 그는 치킨집, 발렛, 대만 카스테라 가게 등 수많은 계획들 중 성공한 것이 없다. 언제나 좌절된 그의 삶의 괴적들이 켜켜이 쌓여 나온 말이다. 기택은 팔로 눈을 가리고 입으로만 말한다. 삶에 아무런 희망도 없음을 아들에게 말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이 비참하기 때문일까. 봉 감독은 "눈을 가리고 입만 움직이게 송강호 배우에게 부탁했다. (그런 자세가) 눈앞이 막혀있는 느낌이라 더 슬프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기생충>은 그 장벽을 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무기력한 말을 내뱉고, 피가 낭자했던 집은 새로운 입주민으로 평화를 되찾고, 기우는 지하에 있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빈자와 부자를 가르는 기준이 '냄새'이고 그 사이에 '계단'이 있다고 할 때, 영화는 그런 냄새로는 계단을 오를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듯 냉정하다. <설국열차>와 <옥자>처럼 시스템에 대항하지 않는다. <설국열차>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꼬리칸에서 엔진칸까지 가고, <옥자>에서 미자(안서현)가 옥자를 구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뉴욕까지 가는 희망은 <기생충>에서 통하지 않는다.


너무 냉소적인가. <기생충>은 희망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현실을 조명할 뿐. 판타지에 가까운 극단적 대비를 영화에 집어넣고 관객들을 현실과 마주 앉도록 했다. 어릴 적 살던 집과 초등학교 친구집이 떠오른 이유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산의 하부에 위치한 주택들은 최근 모두 재개발되어 고급 아파트가 됐다. 반면 꼭대기 부근 작은 빌라들은 지어진지 30년째 그대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을 세 번이나 비웃은 셈이다. <기생충>은 냉정하게 보면 너무 현실적이라 웃음이 나고, 안타까운 현실에 분노가 치밀면서도 슬프다. 봉준호 감독은 "우리 주변 현실 이야기지 않나. 슬픔에 직면하더라도 솔직하게 끝내고 싶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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