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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Jul 13. 2020

몇 대 맞아야 훌륭해질까요?

정지우 감독 영화 <4등> 리뷰(해석, 결말), 넷플릭스 추천

가수 이효리/사진=JTBC <한끼줍쇼>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이효리의 어록 중 하나다. 2017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길거리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출연자가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말하자 바로 맞받아치며 던진 말이다. '훌륭하다'는 어른의 기준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냥 아무나 돼!"라는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의미와 함께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영화 <4등>은 아이가 '훌륭하길' 바라는 어른들의 강요와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는 그저 수영이 하고 싶다. 그런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의해 등수가 매겨지고 강요받고 폭력까지 당한다. 수영을 '그냥' 하고 싶었던 아이는 수영을 '잘'하는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훌륭한 것'이라 말하는 어른들 사이에 둘러싸인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훌륭하길' 바라는 마음은 강요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영화 <4등> 스틸컷
12살 준호(유재상)는 수영에 재능이 있지만 매번 4등만 한다. 엄마 정애(이항나)는 아들 준호를 1등으로 만들고자 국가대표 출신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를 어렵게 소개받는다.

광수의 교육법은 혹독했다. 광수는 지시한 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준호를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린다. 한 달 후 열린 대회에서 준호는 간발의 차로 2등을 차지한다. 정애는 아들이 '거의 1등'이라며 기뻐한다.

그날 준호네 집은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이때 신이 난 동생 기호(서환희)는 "맞고 하니까 잘하게 된 거야?"이라고 묻는다. 상황을 파악한 아빠 영훈(최무성)은 광수를 찾아가 따진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광수의 체벌에 준호는 더 이상 "맞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영화 <4등>은 해묵은 스포츠계 폭력의 대물림 문제를 다룬다. 광수는 대물림의 상징 같은 존재다. 광수의 어린 시절 모습과 16년 후 준호를 가르치는 광수의 모습은 폭력의 대물림을 선명하게 대비한다. 광수의 어린 시절은 초반 20분간 흑백장면으로 전개된다. 밤새 술을 마시고도 아시아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서른 번이 넘게 한 화투판을 기억해 복기할 수 있을 만큼 비상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이 묘사된다.


오늘 한국기록 넘었어요.


광수의 과거는 영화에서 가장 좋은 설정 중 하나다. 이유는 광수가 맞을 만한 아이라고 묘사하기 위해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능력은 있지만 맞을 만한 짓을 한 아이는 "100대 맞자"라고 말하는 코치의 체벌을 거부하고 떠난다. 노름, 담배, 술 등 때문에 선수촌을 무단이탈하며 자기 재능을 낭비하는 아이가 불구가 될 정도로 과한 체벌을 당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근원적 물음에서 영화가 시작하는 것이다.

광수는 훈련 시작부터 준호에게 폭력을 가한다. 준호는 서서히 광수의 폭력에 길들여진다. 사실 준호는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자신을 가르치지 않고 PC방에서 게임만 하는 광수에게 수영을 알려 달라며 발로 차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러던 준호는 어느 순간 "내가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고 말하며 광수가 가하는 폭력의 패턴에 갇히게 된다.


네가 미워서 때린게 아니야.


광수는 자신의 폭력이 '사랑의 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훈련에 필수적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수영장 직원이 체벌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줄 알면서 멈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 그 확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한다. 이러한 확신은 수영을 잘한다는 이유로 체벌하지 않은 과거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그때 선생님이 자신을 때려서 수영을 더 잘하게 했다면 꿈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서 기인했다.

이 이율배반적인 마음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체벌 후 마사지를 해주거나 아이가 좋아할 만한 떡볶이를 사주는 행동이 그렇다. 그러면서 광수는 "선생님은 네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거든"이라고 말한다. 거기에 더해 엄마 정애가 "나는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라고 말하는 섬뜩한 장면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반영한다.


내가 잘못해서 맞은 거야.


이미 폭력의 패턴 속에 들어간 준호는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다. 그 폭력이 애정이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착각에 갇힌 폭력의 패턴은 준호의 동생에게 대물림이 된다. 준호는 동생에게 "몇 대 맞을래"라고 물으며 자신의 물건을 말없이 쓴 동생을 엎드리게 한 뒤 폭력을 가한다. "몇 대 맞을래"는 광수의 언어였다. 폭력을 가할 때 광수가 했던 말이다.

광수의 폭력이 집 안까지 스며든 것이다. 교육의 폭력이 가정폭력이 되었다. 영화는 훈련을 충실히 해내지 못한 선수에 대한 체벌과 형의 물건을 몰래 만진 동생에 대한 체벌을 비교하면서 두 폭력이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폭력이 스포츠를 넘어 가정으로 퍼져나가고 그것을 방관하는 엄마의 태도를 보여주며 우리 사회에서의 체벌은 어떠한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4등>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준호가 수영하는 장면이다. 그중 광수의 체벌을 피해 깊이 잠영하다가 빛을 만지는 장면이 있다. 이후 새벽에 몰래 수영을 하는 장면에서도 광수는 빛을 만진다. 두 장면에서 준호는 수영장의 룰을 깨고 레인을 가로지르고 빛을 따라가며 수영한다. 준호의 깊은 잠영은 세상으로부터 기피하고 싶은 마음이고, 레인을 무시하고 가로로 수영하는 모습은 자유의 갈망이며, 빛을 만지는 모습은 꿈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다.


1등이 하고 싶어요.


준호는 1등이 되고 싶다고 한다. 코치의 폭력, 엄마의 강요는 여전히 싫다. 그런데 수영이 너무 좋다. 수영하기가 좋아서 수영을 시작했는데, 1등을 하지 못하면 수영을 계속할 수가 없다. 준호는 수영을 하기 위해 1등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준호가 코치, 엄마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준호에게 1등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다. 1등 자체가 목표인 코치, 엄마와 달리 수영이 목표이고 1등은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준호는 '아무나'되기 위해 '훌륭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만든 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라면서 1등이 하고 싶어졌다. 준호는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함께 지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하나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꿔서 말하면 하나의 학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보편적 학대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준호는 그 마을의 문화마저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 아닌가.

그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팀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족에 따르면 그는 생전에 복숭아 한 개를 먹었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체중 조절에 실패한 벌로 사흘간 밥을 굶었다. 회식 자리에서 탄산음료를 시켰다는 이유로 새벽 1시까지 빵 20만 원어치를 강제로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그는 여기저기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다. 이후 목숨을 끊었다. 그들의 마을에 폭력이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처음이 아니다. 불과 2년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는 코치로부터 수년 간 상습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외에도 많은 분야의 스포츠 선수들이 학대 당하고 있음이 속속 드러났지만, 우리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스포츠계 폭력은 구조화되어 있었고, 침묵의 카르텔이 뿌리 깊박혀있었다. 최 선수가 사망한 뒤 경주시청 소속 관계자들이 국회에 출석해 죄책감 없이 "사과할 것도 없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4등>에서 광수는 준호가 미워서 때리지 않았다. 때려야 훌륭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었다. 영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작품을 위해 수영, 양궁, 쇼트트랙 등 운동 분야 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계까지 취재하면서 다방면에서 체벌이 묵인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취재 중 만난 한 학부모는 "안 맞고 어떻게 운동해요"라고 했다고. '훌륭함'을 위해 선수들은 일상적으로 맞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나'되어야 한다. 그것은 준호의 꿈처럼 수영장의 레인을 가로로 달릴 자유를 뜻한다. '훌륭해'지고 싶다면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한 것이어야 한다. 도대체 몇 대나 맞아야 '훌륭해'진단 말인가. 정지우 감독은 영화 <4등>에 대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맞을 짓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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