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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Feb 12. 2021

예술가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

영화 <맹크> 리뷰(해석, 결말)

  이건 제가 만든 영화입니다


2013년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나리오를 썼다. 촬영 과정에서는 음향을 맡았다. 촬영 후에는 편집에 참여했다. 연출가는 따로 있었다. 연출가는 "제 영화입니다"라고 말했다. 뭔가 이상했다. 함께 작업한 모든 제작진들이 배제되는 느낌이었다. 음향과 편집은 차치하더라도 영화 속 이야기는 내가 만든 게 아닌가?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불린다. 의문이 생긴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보통 수백 명의 제작진이 참여한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의 예술이라고 불린다니. 영화 <맹크>는 이 지점에서 "정말 그래?"라고 의문을 던진다.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일컫는 영화 <시민 케인>은 감독인 오슨 웰스의 것인가?
누워있는 맹크(게리 올드먼), 이를 지켜보는 오슨 웰스(톰 버크)/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 스포일러 주의

1940년 캘리포니아 사막 빅터빌의 어느 목장, 맹크(게리 올드먼)는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누워있다.

영화 제작사 RKO 라디오 픽처스는 맹키위츠에게 시나리오를 청탁한다. 60일 안에 오슨 웰스(톰 버크)가 의뢰한 각본을 완성해달라고 의뢰한다.

업계에서 퇴출 직전인 맹크는 돈을 벌기 위해 집필을 받아들인다. 글을 쓰면서 점점 옛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글에 빠져들어간다.


영화 <맹크>는 데이비드 핀처가 6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다. 시나리오 작가 '허먼 J. 맹키위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맹크'라고 불리는 그는 1941년 영화 <시민 케인>의 각본을 썼다. <맹크>는 그의 <시민 케인> 시나리오 집필 과정을 재구성한다. <시민 케인>의 탄생 비화를 다루고 있지만, 감독이 아닌 맹크의 시점을 따라간다.

 

맹크(게리 올드먼)/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내가 같이 일하기 싫은 제작자가 반,
나와 일하기 싫은 제작자가 반


맹크는 베테랑 작가다. <8시 석찬>(1933), <오즈의 마법사>(1939) 등 수십 편을 썼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영화가 수두룩했다.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캔자스의 일상은 흑백으로 환상의 세계인 오즈는 컬러로 그린다. 이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의 아이디어는 바로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하지만 도박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평판이 좋지 않았다. 영화 <맹크>의 대사에도 나온다. 그는 "내가 같이 일하기 싫은 제작자가 반, 나와 일하기 싫은 제작자가 반"이라고 말한다. 당시 그는 그야말로 결함 투성이인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시민 케인>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맹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허스트(찰스 댄스)/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시민 케인> 다루는 인물은 미국의 신문 재벌 윌리엄 허스트다.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신문 업계의 풍운아였다. 언론을 이용해 상상을 초월하는 큰 부자가 됐다.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란 말은 그에게서 비롯된 말이다.


<시민 케인>이 영화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이라는 건 이견이 없다. 화려한 부와 권력 뒤의 허무함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울러 내러티브, 플롯, 촬영기법, 미장센 등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수많은 논문이 이를 증명한다.


(참조 - 시민 케인 종합 분석)

(참조 - 시민 케인, 촬영기법으로 탐구하는 현대인의 '본질')


찰스 포스터 케인(오슨 웰스)/사진=영화 <시민 케인> 스틸컷

 

<맹크>는 그 혁신적인 형식을 차용한다. 플롯을 보면, 플래시백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시민 케인>은 케인이 죽기 전 남긴 '로즈버드'라는 단어의 뜻을 탐구하기 위해 과거를 탐색하는 구조다. <맹크>는 1940년의 빅터빌 목장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짜내던 맹크는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1930년대를 수시로 회상한다.


상당 분량이 30년대의 기억 속에 머문다. 할리우드 스타인 매리언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와 가까워지는 과정, MGM 스튜디오 대표인 루이스 B. 메이어(알리스 하워드), 어빙 솔버그(퍼니낸드 킹즐리)와의 갈등, 미디어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와의 만남 등이 플래시백으로 그려진다.


매리언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연기도 그 시대를 따른다.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배우의 연기는 당시에 없었다. 1950년대 이후 배우들은 '매소드 연기'를 하고 있다. 매소드 연기는 배우가 배역에 깊게 몰입하여 리얼리즘을 극대화하는 연기다. 메소드 연기를 확산시킨 대표적인 예로 <대부> 속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의 연기를 꼽는다.


<맹크> 속 배우들은 이런 연기를 하지 않는다. '양식적인 연기'를 한다. '양식적 연기'의 핵심은 감정적인 몰입이 아닌 이야기 전달이다. 맹크 역의 게리 올드만이 현시대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라는 누구나 안다. 그가 2017년 <다키스트 아워>에서 보여준 메소드 연기는 <맹크>에 없다. 이는 <맹크>가 연기까지도 당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매리언 데이비스(아만다 사이프리드), 맹크(게리 올드먼)/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나라의 경제 위기로
우리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맹크>의 배경이 되는 당시 미국의 상황을 알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제 대공황, 2차 세계대전 참전 등으로 경기가 극도로 나쁜 상황이다. 정치판도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영화계는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나타났다. 곳곳에서 노조가 결성되기도 했다.


맹크가 쓴 <시민 케인>에는 권력자, 부자에 대한 조롱이 전반에 깔려있다. <맹크>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MGM의 루이스 B. 메이어 회장은 "나라의 경제 위기로 우리(MGM)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가족 여러분에게 임금 삭감이라는 힘든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돈 때문에 가족이 흩어져선 안 되겠죠"라고 말한다.


정작 본인은 그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는다. 맹크가 회상하는 1930년대는 미국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할리우드 황금기와 대공황이라는 경제의 암흑기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이중적 사회 군상이 드러나던 시기다. 메이어 회장의 대사와 태도는 그 모순적인 사회상을 보여준다.


맹크(게리 올드먼), 메이어(알리스 하워드), 조셉 맹키위츠(톰 펠프레이)/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구분 못 하나?


193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는 <맹크>에서 중요한 서브플롯이다. 메이어 회장을 비롯해 할리우드 주요 인물들은 공화당 지지자였다. 유럽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득세하던 시기다. 영화에서 이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이나 민주당 후보인 업튼 싱클레어 등을 조롱할 때 "무능력한 악당"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이름을 언급한다.


싱클레어는 '정의로운 사회주의 미국'을 꿈꾸는 소설가 출신의 이상주의자였다. 메이어 회장은 공개적으로 싱클레어 반대 기금을 모금한다. 하지만 맹크는 기금을 내지 않는다. 맹크는 싱클레어에게 마음이 가있다. 허스트도 참석한 술자리에서 그의 정치적 태도가 드러난다.


할리우드 인사들이 그 자리에서 싱클레어를 얼뜨기 공산주의자라며 낄낄거리자 맹크는 발끈한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구분 못 합니까? 사회주의는 부를 배분하고, 공산주의는 가난을 배분하잖아"라고 소리친다.


메이어(알리스 하워드), 허스트(찰스 댄스)/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영화에는 대형 제작사들에 의해 공화당을 지지하는 가짜 정치 광고를 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과 배우들이 이 작업에 동원됐다. 당시 싱클레어에 관한 '공산주의 프레임'은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그가 당선되면 개인의 재산권이 제한될 거라는 선동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결국 싱클레어는 낙선했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진보적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지금의 할리우드의 정치 지형은 1930년대 시작된 작은 눈덩이가 커진 것이다. 하지만 맹크의 정치적 지지는 결국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1940년대 맹크가 1930대를 회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맹크는 1930년대 점점 추락하는 사람이다. 업계에서는 밀려나고 있었고, 정치경제적으로도 내리막 길이었다. 1940년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추락한 그에게 오슨 웰스의 시나리오 의뢰는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영화 <시민 케인> 시나리오/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나를 엔딩 크레디트에 올려줘.
이건 내 최고의 작품이야


하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는다. 30년대 계속되는 추락 속에서 그는 허스트가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회상한다. 1937년 사람들이 다 나간 연회장에서 허스트는 맹크를 배웅하며 오르간 연주자의 원숭이 우화를 들려준다. 


오르간 연주자는 야생에서 잡아온 원숭이에게 좋은 옷을 입혀주고 공연을 다닌다. 그러다 보면 원숭이가 나중엔 오르간 연주가 아닌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맹크에게 주제 파악을 하라고 조롱한 것이다.


다시 40년대로 오면, 맹크는 오슨 웰스에게 <시민 케인>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말한다. 오슨 웰스는 분노하지만 결국 받아들인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계약 위반이자 상당히 역설적인 장면이다. 맹크에게 기회를 준 허스트와 오슨 웰스 모두의 뒤통수를 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맹크(게리 올드먼)/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허스트와 오슨 웰스의 관점에서 맹크는 나쁜 사람이다. 30년도에 맹크의 재능을 보고 픽업하여 작가로 써준 건 허스트였다. 40년도 이미 작가로서 추락한 맹크에게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오슨 웰스다. 맹크는 그들이 건네준 기회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할 것이 있던 걸까?


30년대 원숭이 이야기와 40년대 오슨 웰스와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는 걸 두고 다투는 장면은 교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맹크가 무엇이 달라졌고, 어디서부터 달라졌는지를 편집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사회적으로 추락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건 예술가로서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맹크(게리 올드먼), 데이비드 핀처 감독/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시민 케인>을 만든
진짜 예술적인 주인은 '맹크'다


이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시민 케인>의 뒷이야기를 다루면서 오슨 웰스가 아니라 맹크를 주인공으로 한 이유다. 70년대 비평가 폴린 카엘은 "<시민 케인>을 만든 진짜 예술적인 주인은 '맹크'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가설로 한 <맹크> 시나리오는 90년대에 완성됐다. 20년 넘게 제작되지 못한 이유는 감독의 고집 때문이다.


흑백영화는 상업영화 생태계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에게 앞서 이야기한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흑백이라는 요소가 너무 중요했다. 그래서 고집했다. 예술가로서 타협하지 않는 마지노선을 맹크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 역시 타협하지 않은 셈이다.


맹크(게리 올드먼)/사진=영화 <맹크> 스틸컷


그렇다고 <시민 케인>을 만든 사람이 '맹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감독만의 것이라는 말에 의문을 던질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2013년 독립영화를 만들 때를 회상했다. 나는 분명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연출자는 "내 영화"라고 말했다.


맹크는 <시민 케인>으로 194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오슨 웰스와 공동수상이다. 영화 <맹크>에서 맹크가 전하는 수상소감을 독립영화를 함께 찍은 연출자에게 전하고 싶다. 맹크는 "정말 기쁩니다. 이 상을 받을 때도 각본을 쓸 때와 같은 상황이라서요. 그때도, 지금도 오슨 웰스 없이 혼자네요"라고 말한다. 끝으로 "왜 오슨이 공동 각본가죠?"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영화의 신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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