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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Mar 23. 2017

개인의 신념은 타인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미스 슬로운 Miss Sloane>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정치적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2조를 끊임없이 거론하고, 미국의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성향이 총기규제법안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영국의 변호사 출신이 쓴 각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국의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미스 슬로운>은 로비스트인 슬로운을 통해 정치는 권력을 위해 싸우지만, 결국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라 말한다.
영화는 신념에 대한 극단적 생각을 담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한다. 대중을 상대로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에서 이러한 정치적 명료함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로 슬로운 역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이 제 74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것은 영화의 작품성과 그녀의 연기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비스트는 말 그대로 로비를 하는 사람이다. 특정 단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해 입법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의원들을 상대로 공작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로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국내 기업들은  보통 CR팀, 대회협력팀, 업무팀, 기획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대관업무라는 것을 한다. 미국의 로비가 변형되어 일컬어지는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로비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전개될 때 공감이나 이해가 쉽지 않아 국내 관객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슬로운이라는 사람에 집중해서 본다면 우리 사회와 개인의 신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패배한 적이 없는 최고의 로비스트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총기 규제 강화법안 '히든-해리스법' 을 둘러싼 정치권의 싸움에 뛰어든다.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녀의 방식은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에요.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한 후
대책을 강구해야 하죠.


이 대사는 슬로운이 로비스트라는 직업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핵심은 통찰력이라고 말하지만, 이 대사의 핵심은 예측과 대책이다. 슬로운은 냉정하게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리고 독불장군과 같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책을 강구한다. 냉철하고 독선적으로 흐르는 그녀의 업무방식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져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그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영화가 끝나서야 이해할 수 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을 때
그때 선을 넘은 거예요.


에스미(구구 바샤-로)는 슬로운에 의해서 강제로 미디어에 노출된다. 에스미는 인간적인 존중을 말하며, 신념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말한다.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슬로운은 자신의 팀원인 에스미를 이용한다. 슬로운은 총기규제 강화 법안 ‘히든-해리스 법’에 대한 토론 방송에 나와 에스미가 고교시절 교내 총기난사 사고의 생존자임을 생방송 도중에 공개했다. 사고의 피해자를 내세워 대중을 상대로 감정적 설득을 하기 위해서다. 이때 에스미는 슬로운의 승리,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상처가 이용된다고 생각해 큰 상처를 받는다.


슬로운은 이기기 위해 팀원의 상처를 들췄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다.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눴던 사적인 대화가 공적인 영역에 이용된 것이다. 이용을 한 이유는 슬로운 입장에서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총기규제 법안은 통과되어야 하니까. 목적을 위해 사람이 수단이 된 것이다. 이 글에서 총기규제 법안에 대한 찬반은 논하지 않는다. 정치적 논쟁과는 별개로 슬로운이라는 사람의 행위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옳은 일 혹은 옳은 신념은 타인의 인간적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가. 신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



너무나도 당당한 슬로운을 보고 있자면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어릴적부터 경험해온 바로, 한국 사회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승자독식 사회.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1년에 네 번씩 자신의 등수를 강제로 확인한다. 숫자가 적은 사람이 승리자고, 그것을 토대로 대학에 간다. 대학 또한 순위가 있어서 서열이 높은 대학을 가는 사람은 승리했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이후 취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중에는 연봉, 결혼, 자식, 노후까지 끊임없는 경쟁과 타인과의 비교로 승리하였다는 감정을 사회가 부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시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인간성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무게 중심을 둘 때 지켜지는 것이 인간적인 존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침해되면, 사람은 사회에서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사회


한 작가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을 위해서 집단을 위해서 사람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목적인 나라를 꿈꾸고 있다고.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사람을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영화는 총기규제 법안이라는 정치적으로 첨예한 갈등에서 찬성이라는 편 서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한다. 슬로운은 목적을 자신의 신념으로 두고 사람을 수단으로 봤다. 인간적인 존엄을 무시하자 그녀는 비난을 받는다.

내 임무는 이기는 거고,
난 어떤 수단이든 사용할 책임이 있어.
그걸 이용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없어.


이기기 위해 슬로운은 결국 자신마저 수단으로 이용한다. 영화의 결말이다. 범죄행위를 해서라도 신념을 지키려 한 것이다.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가지만, 법안은 통과시켰다. 결말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신념을 중요시했으며, 지키려 했는지 느낄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핵소 고지>가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던 것과는 다르다. <핵소 고지>의 전쟁에 참여한 도스 병사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타인의 생명을 구했다. 어떤 신념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사회가 개인의 신념에 대해 승리 혹은 우위를 정한다면 우리는 슬로운의 말을 따르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한 작가는 이런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옳다고 믿는 대로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다.



(사진출처 : 다음영화, http://static1.1.sqspcd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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